[메디게이트뉴스] 선진국에서의 ‘의사 단체’는 설립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존재하며 활동에 나선다. 다양한 색채를 띠고 있는 수많은 의사 단체들이 세계 각국에 존재해 각 단체별 역할에 대한 파악도 쉽지 않다.
이들 의사 단체는 지역과 의사가 종사하는 의료의 형태나 기관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단체의 틀을 갖추며 설립 배경과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활동을 벌인다.
국제화의 시대에서 한 나라를 넘어 지역별, 그리고 세계 규모의 단체도 존재해 일반인은 물론 심지어 의사들도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어떤 단체인지 선뜻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미국의 영향력이 비대해진 시대에서 미국제도의 모체가 된 영국식 표기 단체들은 미국 방식에 익숙한 우리에게 소위 ‘고유명사’가 품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어 단체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종종 어려움을 겪는다.
영국 등 선진 의사단체 의사 권익과 사회 공익 경계선 뚜렷, 우리나라 아직도 믹스 상태
영국은 의사들의 권익을 위한 대표적 단체인 영국의사회(British Medical Association)와 의사면허에 대한 자율규제 단체인 영국의사협회(General Medical Council)로 의사단체는 성격에 따라 ‘이익단체’와 ‘규제단체’로 크게 대별된다.
이런 전문직 단체의 기능에 따른 구분에 대한 이해는 소속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아 사회구성원은 특별한 교육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전문직 단체의 구별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전문직 단체의 발전에 대한 역사, 문화, 정치적 환경이 다른 우리나라에서는 사회 구성원 중 거의 대부분이 이러한 ‘단체의 이익’과 국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익’의 이원화된 전문직 단체의 성격을 잘 구분하여 이해하지 못한다.
구소련의 영향력을 받은 공산국가들이나 한, 중, 일 등 유교 문화권 국가들은 모두가 선진국에서의 전문직이 추구하는 ‘설립 목적에 따른 이원화 된 운영 체계’를 경험하지 못했다. 반대로 이들 국가의 국민들은 공익적 의사단체의 역할이야말로 정부기구가 마땅히 담당하여 수행해야 되는 사안이라고 여긴다.
우리나라에서 사회과학을 비롯하여 인문학과 법학 등 이 분야 전공자와 해당 연구진과 교수들, 그리고 법조인들은 변호사 단체가 갖고 있는 ‘자율규제권’에 대한 이해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듯 받아들이면서도 의료 등 타 분야의 자율규제권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거나, 또는 대상이 아니라는 식의 거의 무지상태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유럽의 전문직 발달의 역사에 따른 산물인 ‘공익적 의사단체’의 역할에 행정처분 기능이 부여돼 있다는 사실에 마치 법조인의 권리를 빼앗기거나 공익적 의사단체의 역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매우 거부감이 큰 회의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국회의원이나 공무원들도 이 같은 분위기와 크게 다를 바 없으며 예외는 아니다. “자기들끼리 다 해 먹겠다는 것 아니냐”면서 정제되지 않은 원색적인 감정을 서슴없이 내뱉기도 한다.
KMA 정체성 혼재 미분화상태 지속 정부 사회로부터 공익적 기능 강요 자율규제 요원
이런 사회적 전문직 단체의 미분화나 발달지체장애와 현재의 대한의사협회(KMA)의 모습도 궤를 같이 한다. 법으로 정해진 법정단체는 대개 공익 단체의 직능이다. 그러나 이렇다 할 별도의 이익단체의 발달이 별도로 진행되지 못한 우리의 사회 문화적인 발전과정에서 결국은 이익단체와 공익단체의 직능이 서로 뒤섞여 이도 저도 아닌 혼재된 상태를 보여준다.
현재의 대한의사협회와 과거의 대한의학협회의 복잡성이 협회 운영을 지극히 어렵게 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의 줄기이기도 하다. 이런 모순된 상황은 의료제도와 맞물려 같은 양상으로 체계적이고 일사 분란한 질서를 형성하지 못하고 혼돈의 모습으로 연출되거나 표출되어진다. 단일 국가의료보험과 요양시설 강제가입의 의료제도를 운영하는 국가에서 정부나 정치권의 권력에 대항하여 의사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대변하는 필수적인 이익 단체의 구조를 갖추지 못한 것에도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에 그대로 투영되어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의사회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면 첫 화면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영국의사회는 의사 노조(Trade Union)이며, 전문직 단체(Professional Association)”라고 표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사회는 특히 “사회적으로 공인된 노동조합으로써, 의사의 일상적인 업무와 의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고 표기하고 있다.
영국의사회는 의사 개인과 집단을 대표하는 공인된 기구로써 의사의 권익을 위해 전문직 수호를 위해 단결 투쟁해야 한다는 단체 구성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노조라는 특성에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고 ‘복수 노조’를 허용하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현재 영국 의사의 3 분의 2 이상인 15만9000명의 의사와 1만9000명의 의과대학생이 영국의사회의 회원으로 각각 등록돼 있다. 연간 의사 회원의 회비는 우리 돈으로 약 70만원이며, 영국의사회 전체 예산은 1600억 원에 육박한다.
영국의사회, 전문직 단체 노조 대외 표방 모든 의사 회원 근로자와 동일 법적 지위 확보
영국의 의료제도에서 의사는 국가의료시스템(National Health System)에 대부분 고용돼 있어서 개인 의사 회원은 법으로 타 분야의 근로자와 동일하게 직장에서 보호를 받는 한편, 영국의사회는 노동조합으로 모든 의사의 집단적 이익을 보호하고 장려한다. 영국 정부도 의사 급여 인상 문제 등 다양한 의료협상과 지역단위의 고용주에게 영국의사회를 국가차원의 단체교섭 대상으로 공식 인정하고 있다.
영국 의사가 노조인 영국의사회에 가입한 이상 법에 보장된 대로 노동조합원과 대표는 노동조합의 의무나 역할 수행을 위해 합법적으로 휴무할 권리가 있고 이러한 권리는 조합을 위한 서비스 소요시간에 관계없이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단체 교섭 및 관련 문제와 관련된 노조 업무에 대해서는 유급 근로 시간이 적용되는 방식이다.
영국의사회에서 선출직 의사는 특정 노동조합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기간만큼의 유급 휴무를 받을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다. 이런 연유인지 영국의사회 소속의 각종 지역 대표위원회, 의료형태별 위원회의 모든 회의는 연간 4~6회 정도 고정된 일자에 개최되고, 회의 시간은 대개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4~6시쯤 일과 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종료한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의사노조를 위한 활동에 자연스럽게 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상황에 비춰 표현한다면, 평일 근무시간에 노조활동을 위해 필요한 회의를 눈치 보지 않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권리와 환경을 부여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국의사회 회원인 의사가 처벌받게 될 경우 이들의 보호를 위해 노조 대표는 법적으로 합당한 유급 휴무의 권리도 지니고 있다.
의사가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같이 의사단체가 혼합된 직무수행에서 정부가 판단해서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의료법 상 보건복지부의 감사를 받아야 하는 법정단체로써의 약점이 없다는 것은 이익단체로써 의사단체의 자율권과 결정권 등 협회 운영에 필요한 대외적인 영향력과 지배력이 배가(倍加)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장점을 갖추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영국의사회 선출직 간부 평일 일과시간에 자유로운 노조활동 보장 의사단체 강한 파워 핵심
우리나라의 대의원 총회에 해당되는 연례 대표자 회의도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5시까지, 요일은 통상적으로 월요일에 개막해 목요일까지 보통 4일 동안 장시간 회의를 거듭하여 대표자 회의에 상정된 각종 주요 정책에 관한 사안들을 심도 있게 논의한다.
우리나라처럼 쫓기듯이 잡히는 짧은 시간의 회의나 심야 회의, 그리고 평일 진료시간을 피해 주말에 일정을 잡을 수밖에 없는 회의 일정들은 우리나라 의료계가 처해 있는 열악한 환경의 긴 그림자처럼 서글픈 여건을 대변하는듯하다. 전문직으로써 인정받지 못하는 오늘날의 위상이 몰락한 특정 계층의 근로자 수준 정도가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노예화’ 내지 과거 국가 권력에 귀속되어 있는 ‘공노비’에 가까운 형편없는 추락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는 것이 대한민국 의사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영국의사회는 입헌군주제를 바탕으로 내각제의 수상을 임명하는 국가 운영체계에 걸맞게 영국의사회 또한 가장 주된 실행위원회는 ‘Council’이다. 여기서 Council은 우리의 대의원 총회와는 다른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대의원총회는 영국의사회의 연례대표자회의(Annual Representative Meeting)와 비슷하다.
대통령제가 아니라서 그런지 영국의사회 회장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대외적으로 영국의사회를 대표하는 역할에 치중한다. 평의회 격인 ‘Council meeting’은 연간 6회 정도 개최되며 여기에는 회장, 대의원회 의장, 대의원회 부의장, 지역 대표 의장(스코틀랜드, 웰시, 북아일랜드 의장), 재정 책임자(Treasurer), 평의원회 의장을 비롯하여 투표권을 행사하는 대의원들이 참여한다. 협회 사무국을 위한 조직은 따로 ‘Board of Director’를 운용한다.
다양한 세대 직역 직종 갈등 유발 당연 170년 전통 노하우 축적 갈등 해소 행동원칙에 명기
영국의사회의 구조는 소속돼 있는 회원 모두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고안됐으며, 영국의 정치제도가 그대로 녹아 반영돼있다. 그러나 ‘공익단체’의 구조는 이와는 매우 다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영국의사회는 회원의 이익을 위한 단체로써 꾸준히 발전해 왔으며, 이런 구조는 미국의사회의 구조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미국의사회는 회장의 역할이 영국에 비해 더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익단체(Trade Association)인 미국의사회의 권한은 ‘House of Delegates’에 있고, 실행 구조인 ‘Board of Trustees’(이사회)는 회장, 전임 회장, 차기 회장, 대의원회 의장, 대의원회 부의장, 이사회 의장이 함께 참여하고 있어 우리나라와 차이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영국의사회는 회원의 명예를 존중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여기에는 회원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도 병행해 존재한다. 우리나라 대의원 총회에 참여하는 대의원의 행동윤리를 규정하는 행동수칙도 정하고 있다. 노조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다보면 직역 간, 지역 간, 직종 간 등 다양한 이유로 회원 간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오히려 갈등과 다양한 목소리 없이 같은 목소리만 내는 단결된 조직이라면 무언가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이런 이익단체의 특성에 회원이 지켜야할 상호 구성원간의 존중과 갈등해소 방안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약 170년의 오랜 경험과 전통에서 정착돼서 그런지는 몰라도 회원 간 의견의 갈등을 중재하는 행동원칙도 보다 명확하게 명시해 놓고 있다.
민초 의사에게 노조활동 보장 영국의사회 풀뿌리 노조원 단체 이익에 힘 모아 투입하는 구조
무엇보다도 영국의사회의 막강한 힘의 원천은 자신들이 노조라는 성격을 대외적으로 명확히 천명하고 가입한 모든 의사 회원들에게 법으로 보장된 노조활동의 시간을 보장하고 있어 우리나라 의사보다 많은 시간을 의사 개인과 단체적 이익을 위한 노력에 소신껏 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개원의가 상대적으로 많아진 현재의 대한의사협회는 아직도 대학교수가 많아 개원의가 더 늘어나야 된다는 주장과 협회가 너무 개원의 중심이라는 대학 교수들의 불만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직종의 의사 회원 수가 더 많든 간에 전체 의사회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의사들이 많아져야 된다는 사실인데, 정작 대학병원은 대학병원대로, 개원의는 개원의대로 날로 어려워지는 의료 환경에 자기시간을 쪼개서 ‘단체적 이익’에 투입할 수 있는 의사가 갈수록 제한적이라는 것이 우리 의료계가 마주하고 있는 딱한 여건인 것이다.
전문직은 통상 ‘자율’과 ‘전문가적 자유’가 일정 부분 보장된 직업이라는 표현을 놓고 볼 때, 도대체 자유는 어느 구석에 존재하고 있는지 우리 의료계에서만큼은 흔적 없이 증발한 것처럼 보인다.
대한의사협회가 지니는 ‘이익’과 ‘공익’의 ‘혼합적 직능’의 성격은 단체의 복잡성과 구조적 결함 속에서 협회 내부의 만성적인 의사소통 장애와 풀뿌리 민초 의사들의 사회적 역량의 취약성과 시너지 효과로 맞물리면서 협회 운영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의협 집행부가 출범하면 자신의 병원이 망하든 말든 자신의 건강이 망가지든 말든 일종의 뿌리치지 못하는 소명의식 때문인지, 소위 ‘몸을 던져 일하는’ 소신 그룹의 이사진과 회원을 대표하는 강직한 대의원들이 그나마 버티고 있다. 이들이 불가능한 과부화적 현안을 하나하나 매듭을 풀어 결국 단체적 역량과 성과의 한계로 승화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답답함은 의사단체가 대항해 싸워야 할 상대는 정부를 비롯한 건보공단, 심평원과 같은 ‘의료통제기구’ 등의 기관인데 정작 투쟁 대상을 자가 면역성 질환으로 만들어 의사협회 내부의 정치적 투쟁과 갈등 속에 전문직 스스로 자기궤멸을 부추기고 있다.
자신도 협회의 일원인 회원이나 임무가 더 많이 주어진 리더의 지위에서도 자신은 마치 협회의 일원이 아닌 듯 집행부를 협회로 간주하고 협회를 비난하는 일도 흔히 보는 일상 현상이 됐다. 자신이 이미 의사가 되어 속된 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의사임에 틀림이 없고, 이미 의사단체의 일원임에도 마치 자신은 단체의 일원이 아닌 듯이 발언하는 것을 보며 철학에서 논의되는 ‘facticity’를 연상케 한다.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행정부를 질타하며 마치 자신은 행정부의 수장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 이야기 하는 유체이탈의 현상은 단지 정치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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