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돼지 췌도를 이용한 국내 이종 췌도 이식 기술이 임상시험 단계 수준까지 개발되면서 난치병인 제1형 당뇨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관련 법규나 관리 감독할 부처가 지정되지 않는 등 국가 차원의 규제 마련이 늦어지면서 임상시험이 지연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이 29일 '당뇨병 치료를 위한 돼지 췌도이식 임상시험 공청회'를 열고 세계 최초로 국제기준을 준수하는 이종이식 임상시험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장기이식 대기자 수는 매년 증가하지만 공여장기 수는 비슷한 수준이거나 약간 증가하는 데 그치면서 장기밀매나 원정 장기이식 수술 등 여러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종장기이식은 이러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말기 장기부전 치료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종장기이식 연구를 위해 보건복지부가 10년 이상 5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해왔고, 제1형 당뇨병 완치를 위한 돼지 췌도 이식 임상시험을 눈앞에 두게 됐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박정규 단장(서울의대 교수)는 "사업단에서는 이종이식 임상적용 플랫폼을 구축했고, 플랫폼 하에서 당뇨병이 유도된 원숭이에 돼지췌도를 이식해 2년 10개월간 정상혈당 유지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세계 최장 기록으로 사람에서 거의 6년 정도 정상혈당을 유지한 것과 같은 결과다"고 사업 성과를 소개했다.
국제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기준을 만족시키는 전임상시험에 성공한 것은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이 최초다. 만약 임상시험이 진행된다면 국제 가이드라인에 맞춰 제대로 임상을 하는 것도 사업단이 처음이 된다.
사업단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공청회와 심의회에서 임상시험의 안전성과 유효성 논의를 거쳐 적정 여부를 판단하고, 올해 11월부터 사업단 연구 종료일인 2019년 5월까지 임상시험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임상시험을 위한 기관의학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승인을 받았고, 10월 15일 국제이종이식학회(IXA) 윤리위원회와 국내 관련부문전문가로 구성된 임상시험 국제전문가 심의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윤건호 교수는 "미국에서는 매 10초마다 1명이 당뇨병 합병증으로 사망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는 수준으로 혈당이 조절되는 당뇨병 환자는 30%에 불과하다"면서 당뇨병 치료법으로써의 췌도 이식에 대해 설명했다.
윤 교수는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Edmonton) 그룹이 이식할만큼 충분한 췌도만 있으면 제1형 당뇨병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이후 이식성적은 점점 개선됐지만 공여 췌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는 등의 문제로 이식 환자 수는 여전히 답보상태다"고 말했다.
길병원 내분비내과 김광원 교수는 "돼지와 사람의 췌장세포는 인슐린 분비양상과 정상혈당이 비슷하고, 사람의 인슐린과 비슷한 구조를 가져 과거 수십년간 돼지에서 추출한 인슐린으로 당뇨병을 치료해온 경험이 있다"면서 "공여동물로써 돼지는 많은 양의 세포가 필요한 췌장세포이식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종 췌장세포이식의 장점으로 ▲많은 양의 세포를 여러 번 이식 가능하고 ▲병원균이 없는 돼지를 이용하면 감염병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유전자 변형을 통해 면억억제제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돼지를 이용한 이종 췌장세포이식의 안전성과 관련해 윤 교수는 "몇몇 나라에서 임상시험이 시행된 적이 있고, 현재까지 생존해있는 사람도 있다. 지금까지 약 200명이 돼지 세포이식을 받아 추적되고 있고 아직까지 보고된 큰 위험성은 없다"고 전했다.
사업단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은 이종이식 법규가 마련돼 있어 이종이식 임상시험을 적절한 법제도 하에서 시행 가능하고, 중국은 정부에서 이종이식 기술 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종이식을 관리할 수 있는 규제가 마련돼 있지 않고, 관리 감독할 정부 부처가 정해지지 않아 이종이식 임상시험 진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박 단장은 "국제 가이드라인에 따른 안전성 데이터는 마련돼 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나 관련 부서에서 어떠한 것을 기준으로 안전성을 테스트하겠다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아 안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만약 최종 목표인 임상을 진행하지 못하고 끝낸다면 국가적으로도 굉장한 손실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관리 감독할 정부부처의 부재 관련 보건복지부 보건의료기술개발과 김국일 과장은 토론세션에서 "돼지 췌도세포 이식은 세포치료제의 일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임상시험에 들어가기 위한 자료만 확실하게 준비해 식약처에 제출하면 세포치료제 쪽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알고 있다"면서 "현행 제도 상으로는 학술 목적으로 하는 연구자주도임상 트랙으로 하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박 단장은 "식약처와 컨택했을 때 췌장세포는 이름은 세포지만 하나의 기관이고, 장기로 보면 췌도 자체도 장기로 구분되기 때문에 세포치료제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신문고를 통해 식약처에서 관련 부서를 할당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들어 식약처와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날 공청회에 초청했지만 참석하지 않았다.
박 단장은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의 연구 기간은 2019년 5월까지로 사업 종료 이전에 임상시험을 실시하지 않으면 이종이식 전문가풀과 노하우를 모두 잃게 돼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입는 것은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의 이종이식에 대한 선도적 지위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면서 "돼지췌도이식 임상시험이 성공하면 장기부족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재생의료 산업 고용창출 및 산업 선도 위치를 차지해 국가 경제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