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신기술에 기반한 유전자치료법이 각광받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하반기 유전자 치료제 3개를 승인했고, 향후 몇 년 안에 난치성 질환 치료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고통받는 환자들이 유전자치료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도 고려하는 등 관련 규제 측면에서 앞서가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업계에서 연구 참여자의 안전성은 충분히 보장하면서도 유연성 있게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과학이 발전한 만큼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관점도 고통받는 환자와 그 가족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래의료인문사회과학회와 충남대학교 유전자의약 오픈이노베이션센터는 2일 연세대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 유일한홀에서 '유전자 치료의 미래와 대응'을 주제로 2018 춘계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지용 교수는 '유전자치료 법제 개선방안: 한국의 논의를 중심으로' 주제발표에서 유전자치료에 대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규율 태도와 개정 논의에 대해 설명했다.
박 교수는 "유전자 치료 및 그에 관한 연구에 대한 생명윤리법의 규제 수준이나 정도는 외국의 입법례에 비춰볼 때 비교적 높은 수준이다"면서 "질병 및 치료 방법 등의 요건을 부과해 제한된 범위의 연구만 허용하고 있는데, 이는 연구범위에 제한이 없거나 폭넓게 허용하는 외국의 입법태도와 대비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배아 등에 대한 유전자치료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대부분 국가와 마찬가지지만 생명윤리법은 연구 목적의 배아생성을 금지하고 연구대상도 잔여배아 연구로 한정해 착상만 금지하거나 연구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승인기구를 통해 절차적 통제를 시도하는 외국의 입법례보다 배아 유전자 치료에 대한 연구 범위도 좁은 편이다"고 덧붙였다.
반면 유전자치료 규제 분야에서 우리나라보다 앞선 미국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숙명여대 법대 박수헌 교수는 '유전자치료의 연구가이드라인과 품목허가 제도: 미국을 중심으로' 주제발표에서 "미국은 어떤 법령이나 가이드라인에도 유전자치료를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을 규정해 두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다르다"면서 "공중보건법(PHSA)에서 '유사한 제품(analogous product)'이라는 추상적인 용어를 사용해 생물의약품의 범위를 유연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환자에게 보다 신속하게 치료제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신속개발과 신속승인제도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한편, 생명윤리위원회(IRB)를 통한 충분한 정보에 의한 동의서 획득 심의와 기관바이오안전성위원회(IBC)를 통한 유전자치료 안전성 검토로 연구대상자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현 교수는 "질환별 치료나 현존 치료법과의 비교 등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유전자치료 연구가 허용되는 현행 생명윤리법에서 유전자치료제 품목허가 요건을 삭제하고, 환자의 유전자치료제 접근권 보장을 강화하도록 약사법이 필요하다"며 "IBC 설치를 통해 유전자치료 안전성 심의를 강화해 연구대상자를 보호하고 미국 재조합 DNA 자문위원회(RAC)와 같은 자문위원회를 설치해 대중의 의견제출 등 참여를 요구할 수 있도록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지용 교수도 "유전자치료에 관한 연구 범위를 법률에서 제한적으로 규정하는 방식보다 별도 위원회를 통해 개별적으료 연구의 허용 여부를 평가하는 절차적이고 합의제적인 방식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 미국의 RAC, IBC 등은 그 좋은 예다"며 "이와 함께 생명윤리적 쟁점 내지 사회적 수용성을 공론화할 수 있는 장이 제도화돼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현행 생명윤리법에는 이질적인 내용들이 하나의 법 안에 들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생명윤리법은 기본법, 절차법으로 원칙을 설명하는 성격을 갖고 유전자치료나 줄기세포치료 등 개별 치료법에 대한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어진 토론세션에서는 생명윤리법 개정 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두 발표연자가 제언한 유전자치료 허용범위 확장도 필요하지만 유전자치료 연구자나 개발자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법 조항을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 과제라는 목소리가 있었다.
예를들어 생명윤리법 2조에서는 유전자 치료를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를 목적으로 인체 내에서 유전적 변이를 일으키거나, 유전물질 또는 유전물질이 도입된 세포를 인체로 전달하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충남대 신약전문대학원 김연수 교수는 "유전자 편집 기술때문에 정의에 유전자 변이라는 표현을 넣은 것으로 해석되는데,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염색체 통합(chromosome integration)도 변이의 일종이다"면서 "또 법에서 말하는 유전자치료와 유전차치료에 관한 연구가 무엇인지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누가봐도 합리적이게 개정됐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코오롱생명과학 김수정 박사는 "인보사를 개발할 때 심각한 질병을 일으키는 질병을 대상으로 했고, 현재 이용 가능한 치료법이 없고, 다른 치료법보다 현저하게 우수할 것이라 예상돼 법을 준수하며 개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격하게 법을 바라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유전질환이나 암, 에이즈가 아니면 유전자치료 대상 질환이 아닐 수 있는 등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인체 내에서 변이를 일으키는 것은 하나가 아닌데 유전자치료가 도대체 무엇인지 생명윤리법은 이 법을 적용받는 사람들을 위해 좀 더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치료를 바라보는 대중의 공포(public fear)에 대한 대응방안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많았다.
바이로메드 유승신 박사는 "유전자치료제라고 하면 유전자 편집과 동일하게 생각해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유전자 편집은 최근에 나온 것이고 실제로 사람에 사용되기까지는 굉장히 많은 기술적 허들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유전자 편집에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안전성과 윤리가 계속 혼재돼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데 둘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유전자 치료 기술의 오남용 우려에 대해서도 "약의 오남용은 모든 분야에 존재하고, 이를 막기 위해 규제가 존재한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두려워 난치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좋은 목적으로까지 원천적으로 개발을 막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유전자가위(크리스퍼/캐스나인, CRISPR/CAS9) 기술을 쉽게 쓸 수 있다고 해도 임상과 승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사람에게 사용할 수 없다. 마구잡이로 기술이 쓰일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박수헌 교수는 "대국민 공론의 장으로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유전자치료제 퍼블릭 컨퍼런스(Gene Therapy Public Conference)와 같은 사례를 벤치마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부기관에서 공론을 장을 마련한다면 대국민 홍보나 교육에서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김연수 교수는 생명의 존엄성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 과학이 생명현상의 원리를 몰랐을 때 생명은 신의 영역이고 생명의 존엄성은 종교적 관점에서만 바라봤다"며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면서 생명현상의 원리를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절해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게 됐다. 생명의 존엄성은 환자의 고통과 삶의 질 관점으로 전환돼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연수 교수는 "물론 오남용은 막아야 하지만 과학적 근거가 있는 기술이 있고, 고통받는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가족을 해방시켜줄 방법이 있다면 생명의 존엄성은 이 사람들에게 적용해 바라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토론 세션의 좌장을 맡은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김현철 교수는 "규제는 역사와 상황의 산물이다. 2000년대 초에는 유전자치료제가 품목허가를 받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상황이 바꼈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러한 부분에서 정부의 행동은 유연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민사회에서 근거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