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이제 아픈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하죠? 정말로 갈 데가 없어질 텐데 너무 걱정됩니다.”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서 일하는 A교수는 최근 메디게이트뉴스와 통화에서 중부 지역의 소아응급 환자를 볼 수 있는 의료기관과 의사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지난 2016년 소아응급환자 전문의료진이 365일 24시간 상주하며 전문적인 응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갖고 전국 최초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7년여가 지난 지금 존폐의 기로에 서있다. 전문의 7명 중 1~2명을 제외한 대다수가 사직이 결정됐거나 휴직을 고려 중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소아환자 안 받는 병원 늘며 중환자 등 대거 몰려…의사 대상 소송∙형사처벌 경향도 부담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유독 구성원들간 단합이 잘됐다고 한다. 애초에 선후배 사이로 끈끈한 관계였던 이들은 결혼, 출산 등 개인 사정으로 팀원 중 일부가 장기간 자리를 비우게 될 때도 오히려 휴가에 들어가는 이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서로를 배려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격리에 들어가는 이들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은 이들은 대체 인력이 없는 와중에도 별다른 불평없이 센터에 실려오는 아이들을 묵묵히 진료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소아응급 업무를 서울에 거주 중인 전문의 전원이 장거리 출퇴근까지 감수해가면서도 해냈다. 그게 가능했던 건 마음이 맞는 팀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지며 이같은 시스템도 한계에 부닥쳤다. 전국적인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인력난의 영향이 컸다. 주변에 소아응급 환자를 받는 병원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중부 권역은 물론 타 지역의 환자들까지 대거 몰려들기 시작했다.
환자는 늘었지만 입원이 불가능한 경우도 잦아졌고, 전원 보낼 병원을 찾지 못해 전화를 30~40통씩 돌려야 하는 날도 많아졌다. 결정적으로 센터를 찾는 중환자 수가 증가하면서 부담이 크게 늘었다. 어느덧 매주 1~2번씩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게 일상이 돼버렸다.
“처음에는 중증환자일수록 ‘올 곳이 우리 병원밖에 없구나’ 하고 진료를 했어요. 그런데 매주 그런 일이 생기니 우리도 너무 무서워졌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병원에 도착한 이후에 잘못되면 아무리 가망이 없는 환자였다고 해도 기본이 소송인 분위기잖아요. 다들 가정까지 있는 입장에서 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가던 이들인 이제 정든 일터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우리가 이렇게 떠나면 중부 지방의 아픈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하지?”라고 걱정하면서 말이다.
중환자 받고 싶지만 배후 진료 여건 안 돼…경증환자 많은 것도 문제
순천향대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가 휘청이면서 같은 중부 지역에 위치한 세종충남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서정호 센터장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 해당 센터는 지난 4월 개소해 운영을 시작한 지 8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전문의 2명이 사직했다.
세종충남대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당초 전문의 6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한 때 4명까지 인원이 줄었지만 풀타임 1명, 파트타임 1명을 구해 현재 6명을 겨우 맞춰 놓은 상태다.
하지만 순천향대천안병원의 센터와 같은 이유로 경증환자를 비롯해 중환자들까지 몰리기 시작하면서 현재 인력들도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당장은 센터 운영을 축소할 계획은 없지만 사직 얘기를 하는 이들도 있어 언제 운영에 차질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실정이다. 인력난도 고민이지만, 중환자를 받더라도 배후 진료를 담당해 줄 의료진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중환자를 받고 싶어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받기 힘든 경우들이 많습니다. 가령 수술을 할 수 있는 소아외과 전문의가 없다거나 소아 영상을 보는 전문의가 없다거나 하는 식으로 배후 진료가 받쳐줄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그런 의사들은 현재 전국적으로도 몇 명 없습니다.”
몰려드는 경증환자들도 소아응급 의료진들로선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정작 촌각을 다투는 환자를 보기 힘들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경증 환자의 보호자들로부터 컴플레인도 감수해야 한다.
“물론 경증 환자들도 봐야하지만 센터의 1차적 목표는 응급한 환자를 보는 겁니다. 저도 아이를 기르는 입장에서 보호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아 보이면 응급한 상황이라 생각해 응급실로 오시는 거겠지만, 그런 환자들이 많이 모이면 정작 봐야하는 응급 중증환자들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응급한 환자들을 보느라 경증 환자들을 못보면 컴플레인도 많아지니 그것도 힘든 부분이고요.”
센터 의료진에 대한 재정 지원 필요…형사처벌 위험 완화하고 소아과 의원 살려야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의료진들이 사투를 벌이는 최전선이다. 그곳을 떠나려는 이들이 늘고, 한계라는 단어가 그들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상황을 더 이상 모르는 채 해선 안 되는 이유다.
서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에서는 의사 수에 맞춰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 지원금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의사 연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간호사나 다른 인력들에 대한 지원은 아예 없는 상황입니다. 수가도 올려야겠지만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기본적으로 적자가 계속 나는 곳이라 수가 인상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의사직 외에 다른 직역을 위한 지원이 늘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A 교수는 “이미 너무 늦긴했다”면서도 형사 처벌 면제와 함께 동네 소아청소년과 의원들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수가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가 일부러 아이들을 해하지는 않는단 걸 믿어줬으면 해요. 민사적으로는 다툼이 있을 수 있더라도 형사 소송으로 가서 법정 구속을 남발하고 징역형을 내리는 건 문제가 큽니다. 의사 1~2명이 근무하는 동네 소아과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소아 의료이용의 90% 이상은 경증이기 때문이에요. 소아과 의원들이 각 동네에 편의점처럼 있고, 환자들 중 중증인 아이들은 아동병원, 거기서도 안 되면 대학병원으로 보내면 이상적인 체계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