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지난해 12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식품의약국 현대화법 2.0(FDA Modernization Act 2.0)에 서명하면서, 동물실험 자료가 없어도 의약품 허가신청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미국은 1938년 연방 식품의약품화장품법(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Act)에 따라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 확인을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수행하기 전 반드시 동물실험을 통과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었다. 현대화법은 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법이다.
그동안 동물실험은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품질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으로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점점 많이 제시되고,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동물의 고통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동물대체시험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화장품의 경우 과거 제품 개발 과정에서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동물실험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이 잔인하고 불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면서 2013년 유럽연합에서 화장품에 대한 동물실험과 동물실험 화장품의 판매 금지 규정이 발효됐고, 이후 한국과 스위스, 대만, 영국, 호주, 멕시코 등 42개 국가에서 화장품 동물실험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동시에 화장품 동물실험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높아지며 기업들은 비동물 실험에 투자하고 개발하고 있다.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umane Society International, HSI)에 따르면 이미 50개에 가까운 비동물실험이 사용되고 있으며, 최신 비동물실험은 동물실험에 비해 사람이 화장품 성분과 제품에 반응하는 방식을 더 가깝게 모방할 수 있고, 효율성과 비용 측면에서도 더 효과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화장품을 넘어 건강기능식품, 나아가 의약품과 의료기기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중항체나 RNA 치료제, 세포·유전자 치료제 등과 같은 첨단 플랫폼 개발이 활발해지면 동물실험의 한계가 더 많아질 수 있다. 이에 의약품 개발 분야에서 동물대체시험법의 활성화는 동물 복지를 실현하는 것뿐 아니라 누가 신약 개발의 주도권을 가지고 가냐는 큰 틀에서의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오가노이드사이언스 유종만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의 현대화법 개정의 의의는 무엇이고, 동물대체시험법의 잠재성은 어떠하며, 향후 신약 개발 분야에서 동물대체시험법이 자리잡기 위해 어떤 논의가 필요한지 알아봤다. 유 대표는 2015년 차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로 근무하며 오가노이드 연구를 시작했고, 2018년 말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난치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인 오가노이드사이언스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
- 최근 미국에서 동물실험 없이도 의약품 허가신청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화제가 됐다. 법 개정의 의의는 무엇이라 보는가?
표면적으로는 동물실험을 필수하는 것이 아닌 대체하는 방향으로 가는 흐름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대체시험법에 대한 주도권 측면에서 미국이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다는 의미도 읽을 수 있다. 신약 개발은 허들이 높고 비용이 많이 드는 시장이다. 그런데 동물실험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된다면, 이러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국가, 회사만이 신약 개발을 선도해나갈 수 있는 또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신약 개발은 다른 국가에 비해 뒤떨어져 있는 분야 중 하나다. 만약 동물실험 대체 영역을 잘 활용한다면 기존에 뒤처진 것을 극복하고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이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면 임상도 하기 힘들고 자체적으로 비임상도 하기 힘들 수 있다. 지금은 동물대체시험법이 필수가 아닌 수준에서 법이 만들어졌으나, 시간이 흐르면 화장품처럼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화장품과 달리 의약품은 규제가 까다롭기 때문에 어떤 실험법으로 하라는 것이 명시될 것이고, 그 기술을 가진 곳이 승자가 될 것이다. 시기가 언제냐의 문제이지, 동물대체시험법 기술을 가지고 있는 국가나 기업이 신약개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동물복지 실현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신약개발이라는 큰 틀에서 변화의 서두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 국내에서도 동물대체시험법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있다. 미국 외 지역에서는 현재 어느 정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가?
유럽은 2030년부터 동물실험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현재도 유럽은 동물실험을 하기 더 까다로운 지역으로, 명확하게 허가를 받아야 하고, 웬만하면 다른 실험을 하도록 돼 있다. 동물실험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온다면 유럽은 선도적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수요 조사 결과나 다른 업체들과 이야기 나눈 결과를 보면, 기업 입장에서 아직 독성 검사에서는 대체시험법을 사용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낀다. 나중에는 독성 검사가 더 큰 시장이 될 수 있으나, 아직까지는 검증되지 않았고, 사람을 대상으로 얼마나 예측 가능한지도 연구 중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수요자 입장에서는 독성 보다 효능 분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염증성장질환(IBD)은 동물 모델을 만들기 힘들고, 병리기전이 사람과 많이 다른데다 동물 간 변동이 심해 테스트하기 쉽지 않다. 비알코올지방간(NASH)도 동물모델을 만들기 어렵고, 종양도 마찬가지로 효능 검사에서 동물실험으로 구현 못하는 것이 많다. 또한 동물실험은 스케일이 크고 투약하는 양도 많아야 하는데, 인비트로(in vitro)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도 동물대체시험법에 관심이 많다.
-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 확인을 위한 동물실험은 80년 이상 진행돼 왔으나 동물대체시험법은 아직 초기 단계다. 기존 방법 대비 얼마나 명확하게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고, 규제기관에서 동물실험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독성의 경우 중대한 문제가 생기면 안되기 때문에 실제 허가 관점에서 대체시험법을 허용하기 쉽지 않다고 본다. 아직은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야 한다. 각각의 대체시험법이 실제 임상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동물실험과 비교했을 때 어떤 것이 임상과 가장 일치도가 높고 빠트리는 것이 없는지, 얼마나 동등하고 우월한지 객관적이고 통계적으로 입증돼야 가능한 영역이다. 만약 오가노이드로 독성시험을 수행하려면 재현성이 있어야 하고, 전신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장기를 봐야한다는 점에서 아직은 어렵다. 이를 감안했을 때, 동물실험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최소 5년에서 10년 이상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효능에서는 어떤 자료를 필수로 해야 한다 정해진 것이 없고, 허가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융통성이 있다. 동물실험에서 어려운 부분이 있고, 논리적으로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 개발사가 동물실험이 불필요하다 판단한 이유, 대체시험법이 더 우월하다는 근거를 제출한다면 수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적절한 모델이 셋업되면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받는 사례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 반대로 새로운 기술이 동물실험으로는 할 수 없었던, 또는 알 수 없었던 부분을 가능하게 하는 점이 있다면?
면역항암제와 같이 면역계에 대한 실험은 동물실험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항체 의약품은 보통 사람 단백질을 인지하는 항체를 이용하는데, 마우스 단백질을 인지 못하면 마우스 모델을 쓸 수 없다. 특히 면역계는 인간화된 모델을 쓰는데 이도 쉽지 않다. 종양을 사람 것으로 이식하더도 면역계가 사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의 혈액세포를 넣고 인간화시켜도 완전히 맞지 않고 변동성이 너무 크다. 때문에 인비트로에서 사람의 면역계와 사람의 암세포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면 논리적으로 더 맞아떨어질 것이다.
첨단 치료제 개발 시 동물실험은 디자인이나 모델링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예를들어 siRNA 치료제는 특정 시퀀스에 부터 발현하지 못하게 하는데, 동물과 사람은 시퀀스가 다르다. 원래 약에서 나온 시퀀스로 한다면 동물실험은 성공할 수 없고, 사람세포로 된 모델을 써야 한다. 또한 질병은 사람에서 나타나는 병리생태가 동물에서 재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정신질환은 상당수가 구현이 어렵다. 이처럼 기존 동물실험으로 보지 못했거나 구현하기 어려웠던 것들에 대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며, 이를 통해 약물 개발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 비임상 시험의 예시로 오가노이드 외에도 장기칩, 컴퓨터 모델링, 바이오프린팅 등 여러가지가 제시되고 있다. 이 가운데 오가노이드를 이용하는 방법이 가지는 장단점이 있다면?
오가노이드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인체 시스템과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을 인위적으로 모양만 같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장을 만드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인체조직을 인체 외에서 만드는 것이다. 장기칩은 안에 들어가는 세포를 연결해 결과적으로 흐름을 만들어주지만 세포에 대한 조직 모사도가 높지 않다. 3D프린팅은 모양은 사람 장기와 더 유사할 수 있으나, 자연적인 분화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층층이 쌓은 것이기 때문에 재현도 등에서 한계가 있다. 인공지능(AI)이나 시뮬레이션은 초기 단계로 아직 사람 세포나 오가노이드 수준을 따라잡기 어렵다. 그러나 각각 장단점이 있어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
장기칩은 실제 사람의 약이 입으로 들어가 장을 통해 간으로 가는 흐름을 모사 할 수 있고, 3D프린팅으로 인체와 더 유사한 사이즈로 프린팅할 수 있다. 여기서 나오는 각각의 정보를 실제 사람에서 나오는 것으로 트랜스레이션하기 위해 여러 시뮬레이션 기법이 필요하다. 결국 하나로 합해져야 최종적으로 대체 가능한 영역이 될 것이다.
- 오가노이드사이언스에서도 신약 효능 검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동물대체시험법 분야에서 중장기 계획이 있다면?
현재 화장품에서는 동물실험이 금지되고 있고, 이는 의약품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 중간 단계로 더 먼저 금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가 건강기능식품이다. 오가노이드사이언스는 이를 모두 망라하는 시험법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결과적으로는 우리 회사에서만 다 할 수 없고, 여러 연구자와 기업에서 만든 것을 종합해야 한다. 이를 전반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허브로 기능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또한 동물대체시험법이 널리 활용되려면 계속해서 표준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지금 우리가 가진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 개발한 것을 표준화시키고 서비스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 앞으로 동물대체시험법이 정착하기 위해 어떤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보는가?
규제기관과 신약 개발사, 시험법 개발사, 임상시험수탁기관(CRO)와 같은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어떤 시험법을 사용할 수 있을지, 어떤 질환에 적용할 수 있을지 등을 논의하는 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단순히 시험법 개발을 넘어 신약 개발의 큰 틀에서 우리나라가 앞서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좋은 시험법을 사용하면 신약 개발사도 약물 개발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같은 규제기관에서 선도적으로 이를 알리고 제도를 마련한다면 동물대체시험법에 대한 수요가 훨씬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