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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도 골머리 응급실 ‘뺑뺑이’…도쿄는 지역의료 책임지는 '도쿄 룰'로 대응

    [필수의료 특별기획]④ 지역구급의료센터∙소방청 코디네이터가 수용 병원 조정…환자에겐 적절한 응급의료 이용 협조 구해

    기사입력시간 2023-09-27 07:34
    최종업데이트 2023-09-27 13:45

    도쿄소방청 구급차.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 세계 응급실·중환자실을 가다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대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병원들의 필수의료 중심인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어떤 모습이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요. 메디게이트뉴스는 일본과 미국 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두루 탐방한 다음 국내 필수의료 정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연속적인 기획 시리즈를 이어갑니다. 본 기사는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①응급·중환자 살리는 도쿄대병원의 ‘마지막 요새’
    ②도쿄대병원 간호사 1인당 환자 1명에 1인실 100% 
    ③팬데믹∙의사근로시간 규제로 변하는 일본 집중치료체계 

    ④일본은 응급실 '뺑뺑이' 어떻게 대응하나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10여년 전 임산부가 도쿄도 내에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이를 계기로 도쿄도는 ‘도쿄 룰(東京ルール)’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최근 도쿄대병원에서 메디게이트뉴스와 만난 도이 켄토(土井研人) 교수(도쿄대병원 구급·집중치료과)에게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전하자 일본에도 같은 의미로 ‘타라이마와시’(たらい回し)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다며 일본의 사례를 소개했다. 

    10여년 전 임산부 사망으로 '타라이마와시(응급실 뺑뺑이)' 논란

    지난 2008년 10월 도쿄에 거주 중이던 30대의 임산부는 극심한 두통을 느껴 산부인과 의원을 찾았다. 해당 임산부를 진찰한 의사는 뇌출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환자를 큰 병원으로 보내려 했다.

    하지만 7곳의 의료기관에서 여러 이유를 들어 환자 수용을 거부했고, 이렇게 1시간여가 흐른 뒤에야 최초로 연락을 받았던 병원에서 환자를 받기로 했다. 환자는 병원에 도착한 후 제왕절개와 개두수술을 받았고,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아이의 엄마는 3일 후 사망하고 말았다. 

    이같은 극단적 사례까지는 아니더라도 응급환자가 받아줄 병원을 쉽게 찾지 못하는 경우는 일본에서도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도쿄도 보건의료국에 따르면 도쿄도내에서 발생하는 연간 약 60만건의 응급이송건 중 6%인 약 4만건이 이송처를 빠르게 찾지 못하는 ‘이송 곤란’ 사례다.

    일본집중치료의학회 시메 노부아키(志馬伸朗) 부이사장은 “응급실이나 병동에 수용 여력이 없는 것 외에도 환자 처치 중으로 대응 가능한 의사가 없다거나, 해당과 전문의가 없어서 환자 수용을 거부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말했다.

    수용 병원 못 찾으면 지역구급의료센터∙소방청 코디네이터가 조정

    응급실 뺑뺑이로 인한 산모의 사망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 도쿄도는 지역의 응급의료기관들이 응급환자를 신속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도쿄 룰을 만들었다. 

    도쿄 룰은 지역 응급의료기관들과 도쿄소방청의 협력·연계에 기반한 ‘응급환자의 신속한 이송과 치료’를 목표료 한다. 이를 위해 지역 내 응급환자 수용을 조정하는 지역구급의료센터, 지역간 응급환자 수용을 조정하는 도쿄소방청의 응급환자 수용 코디네이터가 핵심 역할을 맡는다. 

    도쿄도내 각 의료권역별로 지정되는 지역구급의료센터는 구급대와 소통하며 응급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조정하는 의료기관이다. 지역 상황에 따라 지역내 병원들이 순번제로 돌아가며 맡기도 하고 의료기관 한 곳이 계속해서 맡는 경우도 있다.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는 받아줄 병원을 찾지 못한 경우(5곳 이상 병원의 수용 거부 또는 수용 병원을 찾기 시작한 후 20분 경과 시) 일차적으로 지역구급의료센터에 환자를 수용할 병원을 조정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하지만 지역구급의료센터를 통한 조정도 여의치 않을 경우엔 응급환자 수용 코디네이터가 도쿄도 전역에서 받아줄 병원을 찾는다. 여기서도 받아줄 병원을 찾을 수 없는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지역응급의료센터가 환자를 받게 된다. 

    도이 교수는 “도쿄 룰과 관련해서는 도쿄도에서도 의료기관들에게 보조금을 통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도는 도민들에게 응급의료가 '한정된 사회자원'임을 알리며 적절한 이용을 당부하고 있다. 사진=도쿄보건의료국

    환자들에게도 '적절한 이용' 협력 당부…24시간 상담센터∙단골의사 제도로 완충

    도쿄 룰에서 눈에 띄는 대목 중 하나는 주요 규칙 중 하나로 ‘도민의 이해와 참가’를 명시해놨다는 점이다. 도쿄도는 구급차, 의사, 간호사 등의 응급의료는 자원이 한정돼 있는 ‘사회자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적절한 이용을 당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긴급도와 중중도에 따라 응급실에서 치료 순서가 바뀔 수도 있으며, 응급치료를 받은 병원에 남은 입원 병상이 없어 입원은 다른 병원으로 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내하고 있다.

    구급대와 의료기관에게만 모든 책임을 부과하는 대신 응급치료를 제공받거나 향후 제공받을 수 있는 도민에게도 협력을 구하고 있는 셈이다. 도쿄도는 도민들이 응급실을 찾기 전에 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도 함께 제시한다.

    일례로 도쿄소방청은 도민들이 언제든지 의학적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의사, 간호사, 구급대원 등으로 구성된 ‘도쿄소방청구급상담센터’를 24시간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상담센터에서는 상담 내용에 따라 병원 내원, 응급처치 방법 등을 조언하기도 하며, 긴급한 경우에는 직접 구급차를 불러주기도 한다. 

    또, 도쿄도는 집 근처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단골의사(かかりつけ医·주치의)’를 두는 것도 제안한다. 갑자기 몸 상태가 나빠졌을 때 언제든 상담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단골의사를 통해 응급실 내원을 줄여보자는 취지다.

    이처럼 24시간 상담센터 운영과 단골의사 갖기 등은 도민들이 응급실을 찾거나 구급차를 부르기에 앞서 시도해볼 수 있는 선택지를 마련해두고 있다.

    이같은 규칙으로 구성된 도쿄 룰은 도입 후 4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응급환자 수용 곤란 사례가 이전에 비해 3분의 1로 줄이는 등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일본내 다른 지역들은 각 지역별 상황에 맞게 도쿄와 유사한 방식 혹은 다른 방식을 활용해 응급실 뺑뺑이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도쿄의대 하시모토 히데키(橋本英樹) 교수는 “나라현 등에서는 현청을 중심으로 현내 의료기관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구급체제를 다시 세우기도 했다”며 “지금은 후생노동성으로 돌아간 당시 나라현 위생부장이 중심이 돼 해당 사업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대응에도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시메 부이사장은 “소방청에 의사가 상주하며 병원에 의뢰를 한다든가 각 지역별로 최후의 보루로 응급환자를 100% 수용할 병원을 정하는 방법 등이 있다”며 “특히 ‘구급차는 거절하지 않겠다’고 대대적으로 내세우는 사립병원이 있는 지역에서는 해결에 가까워지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