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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데믹에 의사근로시간 규제로 일본 중환자 치료체계 변화 중"

    [필수의료 특별기획]③ 일본 집중치료의학회 시메 노부아키 부이사장 "정부 인정 집중치료과 전문의 육성∙팀 의료 강화"

    기사입력시간 2023-09-25 02:41
    최종업데이트 2023-09-27 13:45

    일본집중치료의학회 시메 노부아키 부이사장.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 세계 응급실·중환자실을 가다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대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병원들의 필수의료 중심인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어떤 모습이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요. 메디게이트뉴스는 일본과 미국 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두루 탐방한 다음 국내 필수의료 정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연속적인 기획 시리즈를 이어갑니다. 본 기사는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①응급·중환자 살리는 도쿄대병원의 ‘마지막 요새’
    ②도쿄대병원 간호사 1인당 환자 1명에 1인실 100% 

    ③팬데믹∙의사근로시간 규제로 변하는 일본 집중치료체계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집중치료과(중환자의학과)가 정부로부터 진료과로 인정받았다. 지난 7월에는 일본 전문의 기구가 하위 전문(Subspecialty) 영역  중 하나로 집중치료과를 인정해 관련 제도도 시작됐다.”
     
    지난 8월 말 일본 히로시마대학병원에서 메디게이트뉴스와 만난 일본집중치료의학회 시메 노부아키(志馬伸朗) 부이사장(히로시마대학병원 구급∙집중치료학과 교수)은 코로나19 팬데믹은 힘든 시기였지만 일본 정부가 집중치료과 전문의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는 계기이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日 정부, 코로나 계기로 '집중치료과' 진료과 인정…전문의 육성 발판 마련
     
    실제 일본집중치료의학회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021년 9월 ‘중환자 의료 제공 체계 강화를 위한 제언’이라는 입장문을 통해 집중치료과를 진료과로 인정해줄 것을 촉구했다. 국가 위기관리 차원에서 집중치료를 담당하는 의사의 분포와 정비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학회는 또, 평시보다 질 높은 의료 제공과 유사시 의료붕괴를 막기 위해 집중치료 전문의를 국가가 인정하는 전문의로서 계획적으로 양성해야 하며, 일종의 ‘예비군’으로서 평상시에는 타 진료과 의사로 일하면서도 유사시 일정 수준의 중증환자 관리를 실시할 수 있는 의사를 길러내기 위한 인정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학회의 제언을 받아들였다.
     
    시메 부이사장은 “코로나를 통해 정부는 중증환자를 ICU(중환자실)에서 치료해야 하고, 거기엔 집중치료과 전문의가 필요하다는 걸 인식하게 됐다”며 “최근 수년간 정부 수준에서 집중치료과와 집중치료과 전문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변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진료과 인정 등을 통해) 정부는 실제 ICU에서 일할 수 있는 의사가 전국에 몇 명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는 집중치료과 전문의들이 ICU에서 행하는 진료가 중환자들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는지에 대한 평가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회, 간호사∙임상공학기사 등 타 직종 인정 제도 운영…"집중치료는 팀 의료"

    하지만 학회는 의사들만의 힘으로 집중치료를 수행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2020년도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ICU 병상 수는 7000개로, 학회는 향후 ICU 병상 수가 9000개까지는 늘어나야 한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일본은 내년부터 ‘의사의 일하는 방식 개혁’으로 의사의 시간외근무에 대한 법적 제한이 이뤄진다. [관련 기사=어느 20대 의사의 자살…의사 '과로' 해결 꾀하는 일본]
     
    학회는 이 모든 요소를 감안했을 때 양질의 집중치료 제공을 위해서는 집중치료전문의가 7200명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2021년 4월 기준  일본의 집중치료과 전문의(학회 인정)는 2000여명 정도로 학회가 권고하는 수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학회는 여러 직종들과 함께 집중치료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간호사, 임상공학기사(의공기사), 이학요법사(물리치료사), 약제사(약사) 등 타 직종에 대한 학회 차원의 인정 제도를 수립해가는 한편 정부에는 해당 직종들의 ICU 배치 기준 강화와 그에 따른 진료수가 인상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 학회는 간호사, 임상공학기사에 대해서는 이미 인정 제도를 마련해 운영 중에 있으며, 올해부터 물리치료사, 내년부터는 약사 인정 제도를 시작할 예정이다.
     
    또 인력 배치 기준 강화와 관련해선, ICU 간호사 배치 기준(환자 2명에 간호사 최소 1명)을 서구 선진국처럼 1:1로 강화(감염병 중환자는 환자 1명에 간호사 2명 수준)하는 방안, 평시 전담 임상공학기사 배치 기준 마련과 관련 수가 책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시메 부이사장은 “집중치료는 팀 의료다. 학회는 팀 의료 추진의 필요성을 느껴 인정 제도를 만들게 됐다”며 “집중치료를 위해선 인정받은 의사 외에도 팀을 구성하는 간호사, 임상공학기사 등 타 직종의 사람들도 전문성을 갖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어 “의사의 일하는 방식 개혁이 적용되면 집중치료 수요와 공급 간 미스매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의사를 도울 수 있는 여러 직종들을 늘려가야 한다”며 “병원이 이들을 대거 고용할 수 있도록 진료 수가를 인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본 구급∙집중치료 의료진은 지금까지 개인적인 시간을 희생해가면서까지 과도하게 일해왔다”며 “앞으로는 거기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에 효율적인 의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법률과 벌칙 등을 통한 규제가 아니라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좋은 방법을 만들어 갈 수 있게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노부아키 시메 부이사장은 지난 4월 서울에서 열린 대한중환자의학회 학술대회에 참가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경험을 공유했다.

    EMR 등 IT기술 개선 필요…한국∙대만 등과 집중치료 '동아시아 모델' 만들고파
     
    연장선상에서 IT기술을 활용한 응급∙중환자 대응 및 분류 시스템,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의 개선도 강조했다.
     
    그는 “지역간 ICU 의료 인프라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원격ICU, 실시간 바이탈 사인 등의 데이터를 모아서 다른 병동에 있는 환자들을 ICU에서 관리하고, 환자 상태가 악화되면 빠르게 발견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한다”며 “이송 전 응급환자의 중증도를 판정해 적절한 병원으로 이송을 제안하는 시스템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에크모가 필요한 코로나 중증환자를 에크모 시설로 집중적으로 이송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어 “의사의 업무를 간편화하고 부담을 덜어주는 병원 IT시스템, 특히 EMR 시스템 등의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메 부이사장은 이 외에도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이 중환자가 급증하는 사태를 대비해 중환자와 집중치료 담당 의료진들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시스템을 미리 구축해둘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지난 팬데믹으로부터 배운 건 중증환자와 집중치료 담당 의료진을 한 데 모을 때 환자의 예후가 좋다는 것”이라며 “평시부터 한 데 모아두는 것과 유사 시에 모으는 것 두 가지 의견이 있을텐데, 개인적으로는 평소부터 어느정도 준비해두는 게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47개의 각 도도부현 내에 1~2개 정도의 핵심시설을 만들어 인력과 큰 ICU를 확보해 놓은 뒤, 팬데믹 등 유사 시에는 더 확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어떨까 한다”고 덧붙였다.
     
    시메 부이사장은 끝으로 한국을 비롯해 우수한 의료 수준을 자랑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각국 중환자 진료체계의 장점들을 공유하며 보다 나은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논의의 장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중환자의학회와 오랫동안 협업을 해왔고, 2년에 한 번씩 서울을 방문하고 있지만 ICU 시스템이나 의료진의 일하는 방식, 코로나 대응에 대한 논의는 많이 해오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우리는 한국, 대만, 태국 등과 함께 학회를 하고 있는데, 그런 자리에서 논의를 통해 집중치료 분야의 ‘동아시아 모델’같은 것을 만들어 나간다면 세계 최고의 시스템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