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강제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자 특별 경찰이 한 사람에게 다리와 손에 총격을 가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마스크 쓴 동양인에게 경멸스럽게 인종차별 공격을 하던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아시나요? 'Refuses to Don Influenza Mask; Shot by Officer' 1918년 10월 27일 'The Bellingham Herald'의 뉴스의 실제 타이틀이다. 100년전 스페인 독감이 창궐하자 샌프란시스코는 'City of Mask'로 유명하게 됐다.
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스크 착용을 강제로 하는 법안까지 만들어졌나? 제1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해인 1918년 시작한 스페인 독감(H1N1 바이러스)은 약 2년간 지속되며 당시 세계인구의 약 3분의 1인 5억 명이 감염됐고 사망자는 5000만 명에 달했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 for Disease Control, CDC) 기록에 의하면 약 67만 명이 사망했으며 2200만 명이 감염됐다.
그 당시 미국의 여러 도시가 감염됐지만 서북쪽인 샌프란시스코의 스페인 독감 첫 발병은 9월 23일 시카고에서 돌아온 한 사람에게서 시작했다. 시의 질병관리본부 격인 보건국장 윌리엄 해슬러(William C. Hassler) 박사는 그를 병원에 강제 입원시키고 그의 집 주변을 소독했다. 그러나 10월 9일에 169명이 독감에 감염됐고 일주일 후에는 2000명으로 확산됐다. 스페인 독감으로 직격탄을 맞은 샌프란시스코는 10월 18일 공공 집회도 금지하고 교회도 모이지 않는 것을 권했다.
드디어 1918년 10월 24일, 시의회는 만장일치로 마스크 의무 착용 규제안을 미국에서 처음으로 통과시켰다. 미 적십자사도 "마스크를 쓰고 생명을 지킵시다. 마스크는 99% 감염률을 막아줍니다"(사진 2) 홍보하며 마스크 착용 캠페인을 벌였다. 당시와 오랫동안 '블루진(Blue Jean)'의 대명사였던 리바이스(Levis Straus & Company)가 직접 마스크를 만들어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에게 공급했다.
마스크 착용을 어기면 벌금 또는 구류였다. 경찰은 담배를 피우려고 마스크를 벗은 사람까지 체포했다. 심한 경우가 법을 어긴 사람에게 총을 쏜 사례까지 일어났다. 이런 엄격한 조치로 사망률이 억제됐다. 그러나 사회적인 거리 두기에 지친 시민들의 불만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결국 시 당국은 해금령을 내려 11월 21일 정오에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을 축하하며 마스크 벗어 던지기 행사도 진행했다. 공공 집회도 다시 허용했다. 극장과 영화관과 운동장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종전의 기쁨과 해방의 축제는 오래 가지 못했다. 12월 7일 해슬러 보건국장은 제임스 롤프(James Rolph) 시장에게 독감이 약간 다시 진행한다고 보고했다. 해슬러 박사는 새로운 독감은 외부에서 시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시작된다고 확신했기에 다시 상점 문을 닫는 것이나 공공 집회 금지를 고려하지 않았다.
해가 바뀌어 1919년 1월 10일 하루에 무려 600 케이스의 독감이 보고됐다. 그 당시 신문은 마스크 강제 착용은 독감이 번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래도 1월 17일부터 마스크 강제 착용을 다시 시작했다.
해슬러 박사는 샌프란시스코가 미국에서 스페인 독감에 안전한 곳이라고 여러 차례 말하고 다녔지만 시는 독감 파도 물결의 직격탄을 또 맞았다. 1918~1919년 사망률이 1000명 당 30명으로 미국 50개 도시 중 최상위권이었다. 최근 다시 집계된 보다 정확한 통계자료에 의해도 사망률이 10만 명 당 673명으로 상위권이었다.
미국 CDC 홈페이지 제목이 '1918 Pandemic Influenza: Three Waves'다. 1918년 3월부터 1919년 여름까지 미국에서 팬데믹(pandemic) 기간동안 세 개의 파도가 있었다(사진 3).
바이러스의 첫 발생은 1918년 3월에 캔사스 주 포트 라일리(Fort Riley)의 제1차 세계대전 때의 병영의 하나인 펀스턴캠프(Camp Funston)에서 일어났다. 100케이스가 보고됐다. 1918년 가을의 두 번째 파도가 가장 강하고 치명적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마스크 착용 역사도 이 기간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세 번째 파도는 1919년 겨울과 봄에 일어났고 여름에 결국 팬데믹이 종료됐다.
왜 질병관리본부장인 정은경 박사와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인 앤서니 파우치(Anthony Fauci) 박사는 한 목소리로 바이러스의 두 번째 파도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는가? 이런 팬데믹의 역사적인 경험을 전문가로서 많이 알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정 본부장은 서울 구로동 콜센터의 집단감염 케이스에 민감했다. 단 1명에 의하여 216명 직원 중에 94명(43.5%)을 감염시킨 밀집된 실내에서의 이런 케이스가 인구 밀집 서울이 대구에 이어 제2의 파도로 번지지 않나 염려됐다. 어제 초파일부터 시작된 하루 연차를 더하면 6일의 휴식 기간이 또 걱정거리다. 이제 끝났다고 전 국민이 오판하고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 2차 파도가 올까봐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4월 12일 부활절에 미국이 교회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낙관에 연이어 5월 초에 시장이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트럼프의 낙관론에 당당하게 제2차 파도가 올 것이라고 파우치 박사는 경고하고 있다.
다시 100년 전 역사로 돌아가면 현재의 상황을 예측할 수가 있다.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는 초반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잘 실천해 미국 도시 중에 상대적으로 낮은 치사율을 보여줬다. 그러나 초반 성공 때문에 공공집회 금지를 누그러뜨리자 치사율이 높게 변했다(그림 4).
왜 이런 역사가 교훈인가? 현재 싱가포르의 코로나19를 되짚어보면 답이 나온다. 싱가포르는 코로나19 초기에 강력한 입국 금지를 실행함으로써 중국 인접국으로 방역에 성공한 케이스였다. 이후 관리를 허술하게 하면서 현재 원인불명의 감염자들이 다수 발생, 싱가포르 전 지역감염이 다시 확산돼 1차보다 훨씬 큰 2차 파도를 맞고 있다. 싱가포르 보건당국은 아직도 중국에서 입국을 차단하고 있음에도 최근에 중국발 감염자가 다시 발생하기 시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감염자 51명에서 유래된 SARS-CoV-2 게놈 데이터가 그렇게 보여주고 있다.
100년전 세인트루이스의 역사적 상황이 현재 싱가포르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역사가 중요한 경종을 치기에 방역당국의 모범답안은 시종 일관된 강력한 대응이다.
필라델피아는 1918년 9월 17일 첫 환자가 발생해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시 당국이 공공 장소에서 기침, 침뱉기, 코풀기 등을 금지했다. 그러나 시 정부는 팬데믹이 코 앞에 왔는데도 열흘 후에 20만명이 모인 퍼레이드를 감행했다. 그 결과 필라델피아는 미국에서 사망률이 10만 명 당 748명으로 가장 높은 챔피언이 됐다.
반면 뉴욕시는 사망률이 올라가기 11일 전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일찍 시작했기에 사망률이 10만 명 당 452명으로 미국 동부의 큰 도시 중에 가장 낮은 도시가 됐다. 100년 전 그런 뉴욕시가 이번에 앤드류 쿠오모(Andrew Mark Cuomo) 주지사의 놀라운 대처에도 불구하고 가장 피해가 큰 지역이 됐다.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대처하는 전세계 질병관리 관료, 과학자, 역사가들은 지금까지 인류역사 상 가장 큰 피해를 줬던 '스페인 독감'을 재조명하고 있다. 왜 그런가? 이런 역사를 배우는 노력이 현재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100년전 사회적 거리 두기를 나중에 시작한 도시나 그 기간을 적게 가진 도시는 사망자의 스파이크가 높고 전체적인 사망률도 높다. 그러기에 6일간 휴일이 닥친 정은경 본부장이나 안이한 태도의 미국인들을 대하는 파우치 박사는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의 과학기술국장 빌 브라이언이 강의에서 "표백제는 5분 만에 바이러스를 죽이고, 이소프로필알코올은 30초 만에 죽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걸 체내로 주입하거나 해서 (체내의 바이러스를) 청소하듯 하는 뭐 그런 방법은 없습니까?"라며 굉장히 엉뚱한 질문을 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의 결정이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매우 아쉽다. 정치인보다는 과학자의 경험과 논리를 따르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비결일 것 같다. 정은경 박사, 파우치 박사 파이팅!!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