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미국 식품의약국(FDA) 고위 관계자들이 신약을 승인하기 위해 필요한 확증 임상시험을 최소 2개에서 1개로 줄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향후 실제 적용 기준이 어떻게 나올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는 단순한 완화 조치라기보다, 임상 설계의 과학적 타당성과 생물학적 개연성을 중심으로 허가 판단을 내리겠다는 구조적 전환으로 해석해야 하며, 공식화될 시 바이오 업계는 임상시험 '개수 전략'에서 '설계 경쟁력'으로 변화를 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FDA 마틴 마카리(Martin A. Makary) 국장과 생물의약품평가연구센터(CBER) 비나이 프라사드(Vinay Prasad) 센터장이 최근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에 기고문을 발표하고 '임상시험 2회 원칙'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FDA 승인을 위한 기본 요건으로 두 번의 임상시험이 아닌, 하나의 강력한 핵심 임상시험과 확증적 근거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단, FDA는 여전히 두 번의 연구를 요구할 수 있고, 이번 변경은 시판 후 데이터 수집 강화 계획과 함께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새로운 기준은 최근 제약사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는 가속 승인 모델을 기반으로 하며, 하나의 중추적 임상시험을 바탕으로 승인을 허용하고 이후에 확증적 근거를 생성하도록 허용한다.
승인 심사 시 임상 '개수' 대신 대조군, 평가지표, 효과 크기, 통계적 프로토콜에 더 중점
1997년부터 시행된 미국 법률에서는 확증적 근거가 뒷받침될 경우 적절하고 잘 통제된 단일 연구(adequate and well-controlled study)를 기반으로 승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FDA는 의약품의 안전성과 효능을 보장하기 위해 1960년대 설정된 기준인 두 차례의 중추적 임상시험 원칙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최근 많은 약물이 단일 핵심 임상시험만으로 신속하게 시장에 출시되면서 새로운 공식 기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마카리와 프라사드는 기고문에서 기술 발전으로 FDA와 제약사는 결과를 더 잘 평가할 수 있는 고품질의 단일 임상시험 설계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며, "FDA의 새로운 입장을 공식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생물의학 혁신을 촉진할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1960년대 우연히 성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개발 최종 단계에서 두 차례 임상시험을 수행하도록 기준을 마련했다. 이는 통계적으로 약물의 안전성과 유효성 확인 과정에서 오류 발생 가능성을 극적으로 낮췄다.
마카리와 프라사드는 "그러나 현대 의약품 개발은 통계적, 생물학적 추론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신뢰성을 확보한다"면서 "두 번의 임상시험은 임상적 신뢰성을 구성하는 여러 상호 연관된 요소 중 하나로만 인식돼야 한다. 2026년 현재 제품이 사람들의 수명 연장이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 제조사에 재시험을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대안적 방법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변경된 기본 요건 하에서 단일 중추적 임상시험(pivotal trial)은 확증적 근거(confirmatory evidence)와 함께 제출돼야 하며, 승인 과정은 대조군, 평가지표, 효과 크기, 통계적 프로토콜에 더 중점을 둘 예정이다. 제약사들은 확증적 근거로 제품이 가진 기전적, 생물학적 수준에서 작용함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제출할 수 있다. 관련 적응증, 동물 모델 또는 동일 계열 약물의 데이터 역시 보조적, 확증적 근거로 인정될 수 있으며, FDA는 리얼월드(real world) 근거도 고려할 방침이다.
중추적 임상시험에 드는 비용이 3000만~1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만큼, 이러한 조치가 의약품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크게 줄이고 시장 출시를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준 완화가 아닌 평가 방식 강화…후속 정책수립 동향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마카리와 프라사드는 FDA가 기준을 완화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FDA는 완벽한 적이 없으며, 기본적으로 두 번의 임상시험을 요구했음에도 이후 심각한 안전성 문제나 효능 부족이 발견된 수많은 제품을 승인해왔다"고 반박했다.
이어 "임상시험 설계의 다른 모든 측면이 결함이 있다면 임상시험의 수가 유효한 추론을 보장하지 못한다. 대조군이 부적합하거나, 평가지표가 의심스럽거나, 통계 게획이 사후에 수립되거나, 검정력이 불충분하거나, 또는 이 모든 문제가 동시에 발생할 경우, 두세 건 또는 네 건의 연구를 수행하더라도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면서 단일 연구에 집중함으로써 오히려 FDA 기준을 향상시키고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연구가 ▲모호하거나 다능성, 비특이적 작용 기전을 보이는 경우 ▲변동성이 크거나 단기적, 대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시험 자체에 근본적인 한계나 결함이 있는 경우 등에는 여전이 두 건의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확증 임상 개수가 2건에서 1건으로 축소되는 만큼 이번 FDA의 입장을 단순한 규제 완화로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하나 이는 '임상 설계 평가 강화'에 가깝다"면서 "FDA의 기본 입장은 임상시험의 '개수'가 아니라 '임상 설계의 완성도'를 중심으로 평가하겠다는 것이며 여기에는 동시대 대조군 사용, 최선의 치료 대비 여부, 효과 크기, 1차 평가변수 선택, 통계적 검정력, 생물학적 상관성, 무작위 배정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단일 확증 임상이 기본값이 되더라도 설계가 미흡하면 추가 시험을 요구할 수 있으며, 기전이 불분명하거나 중간 지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우에는 두 건 이상의 시험이 필요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준 완화라기보다 평가 방식 강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분석했다.
협회는 "이번 기고가 앞으로 공식화된다면 바이오업계는 임상 시험 '개수 전략'에서 '설계 경쟁력'으로 변화를 줘야 하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과거에는 '임상 2건 확보' 자체가 신뢰성 신호로 작용했으나, 앞으로는 단일 시험이라도 설계 완성도와 기전적 설득력이 핵심 경쟁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특히 정밀의학 기반 치료제, 명확한 타깃을 가진 항암제, 희귀질환 치료제 등은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반면 기전이 불명확하거나 대리평가지표 의존성이 높은 후보물질은 추가 시험 요구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임상 2상 단계에서 바이오마커 전략과 통계 설계 완성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질 전망이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아직 FDA의 공식 보도자료나 세부 가이드라인이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므로, 업계는 정책 방향성을 참고하되 실제 적용 기준은 앞으로 발표되는 내용과 승인 사례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면서 "올해 FDA에서 임상시험 요건에 대한 중요한 변화가 예상되고, 이럴 경우 임상시험 비용 및 기간 단축에 따른 큰 기회비용 효과가 예상되는 만큼 FDA의 후속 정책수립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