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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직하는 소아과 전공의 "떠나간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에 버텨왔다"

    "임신 중 과로로 배 속 아이에 죄책감도…의대증원으로 필수의료 문제 해결 안 돼" 피부미용 전향 심경 토로

    기사입력시간 2024-02-17 15:42
    최종업데이트 2024-02-17 18:58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50분의 심폐소생술 후 살아난 아이는 다음주 퇴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환아의 웃는 얼굴을 보니 오늘도 참 뿌듯했고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씁쓸함이 밀려옵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못다 한 꿈은 의료 봉사로 채워 보겠습니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A전공의는 올가을 전공의 수료를 앞두고 있던 4년 차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현재 임신 중인 임산부이기도 한 그는 17일 입장문을 통해 “파업이 아니라 정말로 사직할 것”이라면서도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어서 선택했고, 3년 5개월 동안 전공의 생활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해왔다.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소아과 의사를 선택하겠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해왔다”고 소아과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했다.
     
    다만 “세브란스병원은 전공의 부족으로 인한 소아과 의료 붕괴를 큰 병원 중 가장 먼저 경험하고 있으나 병원에서는 소아과가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과이므로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며 “입원전담의를 구하기도 어렵고 정부의 지원 역시 없어 교수와 강사들이 전공의의 빈 자리를 메꿔왔지만 이제는 모두가 지쳐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의대증원으로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해서는 “500명을 하든, 2000명을 하든 의대증원 정책으론 소아청소년과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며 열악한 소아과 전공의의 근무 환경을 털어놨다.
     
    그에 따르면 소아과는 인력부족으로 임산부 전공의도 정규 근무는 물론 임신 12주차 전, 분만 직전 12주를 제외하고는 기존 당직 근무에 그대로 임하고 있다. 김 전공의 역시 태교는커녕 잠과 끼니 챙길 시간도 없이 일해왔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일하면서 정작 뱃속의 본인 아이를 유산할까봐 죄책감을 느껴 울었던 적이 있다고도 했다.
     
    그는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대증원을 하겠다는 정부를 향해 “매년 5000명의 의사를 배출한들 그중에 한 명이라도 나처럼 살고 싶은 의사가 있을까. 수가 많아지면 소아과를 지원할 의사도 정말 많아질까”라고 의문을 표했다. 소아과 의사들에게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빅5 병원들도 10년 이내에 무너질 것이라며 전공의 기간만 버티면 돈을 많이 벌 거라는 것도 다른 과의 얘기라고 했다.
     
    그는 “돈 못 버는 호구 소리를 들어도 힘든 현실에서도 그만두지 않고 수련을 지속했던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내 앞에서 떠난 아이들의 마지막 눈빛 때문이었다”며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이 마음속 무겁게 자리해 꼭 제대로 된 실력 있는 소아과 의사가 돼야 한다고 오뚜기처럼 나를 세워 왔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이제는 사직서를 제출하고자 한다. 파업을 위한 사직이 아니고 정말 ‘개인 사직’을 위한 사직서”라며 “이번 파업을 하더라도 의대증원 수만 줄어들지, 소아과를 포함해 무너지고 있는 필수과를 위한 실질적 정책은 마련되지 않을 것 같다. 의사가 환자 목숨보다 자기 밥그릇을 중시한단 비난들은 더는 견디기 괴롭다”고 했다.
     
    그는 “소아과 의사의 밥그릇에 뭐가 담겨 있느냐. 소아과를 같이 하자고 후배들에게 더 이상 권할 수가 없다. 몇 개월만 수료하면 끝이라 속상하지만 이런 현실이라면 나는 소아과 전문의 면허가 있더라도 소아환자 진료를 보며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며 “의사 집안도 아니고 모아둔 돈도 없고, 이제는 세 아이의 엄마로서 생계 유지도 필요하고 아이들을 돌볼 시간도 필요하다. 엄마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소아과 의사를 포기하고 피부미용 일반의를 하며 살아가야겠다”고 했다.
     
    [전문] 

    안녕하십니까. 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000전공의입니다.

    저는 올해 가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수료를 앞둔 가을턴 4년차 전공의입니다. 타과를 지원하다가 떨어져서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한 것도 아니고, 소아청소년과가 3년제로 바뀌어서 지원한 것도 아닙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되고 싶어서 선택했고, 3년 5개월 동안 전공의 생활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해왔으며 작년 보릿고개 전부터 소아청소년과 의국장을 자원하여 일하고 있었으며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선택하겠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해왔습니다.

    저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현재 임신 중인 임산부입니다. 전공의 생활은 누구에게나 힘들지만, 저와 제 가족에게는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회사원인 제 신랑은 저 때문에 회사 진급을 포기하고 2년에 달하는 육아휴직을 감내했고, 신랑의 복직 후에는 양가 부모님들의 헌신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왔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은 대한민국 소위 빅5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중 올해 유일하게 전공의 티오가 차지 못한 곳입니다. 전공의 부족으로 인한 소아청소년과 의료 붕괴를 큰 병원 중 가장 먼저 경험하고 있으나 병원에서는 소아청소년과가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과이므로 지원을 해주지 않아 입원전담의를 구하기도 어렵고 정부의 지원 역시 없어 교수와 강사들이 전공의의 빈 자리를 메꾸며 이제는 정말 모두가 지쳐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필수 의료 붕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부는 의대 증원 2000명이라는 정책을 발표하였습니다. 500명을 하든, 2000명을 하든 의대 증원 정책은 소아청소년과의 붕괴를 막을 수 없습니다.

    소아청소년과는 인력부족이 극심하기 때문에 임산부 전공의도 정규 근무는 당연하고 임신 12주차 전, 분만 직전 12주 전을 제외하고는 기존 당직 근무에 그대로 임합니다. 그리고 저는 최고년차이기 때문에 당직도 일반 병동이 아닌 중환자실 당직만 섭니다. 태교는커녕 잠도 못 자고 컵라면도 제때 못 먹습니다. 전공의는 교대근무가 아니므로 당직이 끝나는 오전 7시부터 정규 근무에 바로 임합니다. 아파도 ‘병가’는 꿈도 못 꾸고 수액 달고 폴대를 끌어가며 근무에 임해왔습니다.

    이곳은 중증 소아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전공의로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소아코드블루를 경험하고 한 달에 한두 명 이상의 환아의 사망을 경험합니다. 지난달 당직 시간 응급실에서 심정지가 온 환아를 50분동안 심폐소생술한 적이 있는데 가슴 압박을 하면서 내 뱃속 아기가 유산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엄마이기 전에 나는 의사니까 지금은 처치에 집중하자고 다짐하며 임했습니다. 다행히 환아가 살아난 후 오랜 처치가 끝나고 당직실로 들어가서는 뱃속의 아기에게 엄마로서 죄책감이 들어 몇 시간을 울었고 걱정할까봐 가족들에겐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매년 5000명의 의사를 배출한 들 그 중에 한명이라도 저처럼 살고 싶은 의사가 있을까요? N수가 많아지면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할 의사도 정말 많아질까요?

    대한민국은 아이를 낳기도 키우기 어려운 나라이지만, 의사로서 아이를 치료하기도 어려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소아청소년과는 붕괴 중이고 이는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사가 5000명이 된 들 소청과를 3년제로 줄인 들 소청과 의사에게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지원자는 늘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현실이 이대로 간다면 세브란스병원 다음으로 다른 빅5 소아청소년과가 무너지는데 10년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전공의 기간만 버텨내면 이후에 돈 많이 벌텐데 왜 힘들다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다른 과 이야기입니다. 소청과 교수님들의 삶은 타과 교수님들의 삶과는 너무 달라 보입니다. 그래서 대학병원 교수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 로컬에 나간 선배님들 중 많은 분들이 소아환자진료가 아닌 피부미용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돈 못 버는 호구 소리 들어도 힘든 현실에서도 그만두지 않고 소청과 트레이닝을 지속했던 이유에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제껏 제 앞에서 떠난 아이들의 마지막 눈빛 때문이었습니다. 엄마들도 보지 못한 아이들의 last normal 모습 그리고 그 아이들의 마지막 말들은 제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소청과를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이 제 마음 속 무겁게 자리해 꼭 제대로 된 실력 있는 소아과 의사가 되어야 된다고 오뚜기처럼 저를 세워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직서를 제출하고자 합니다. 파업을 위한 사직이 아니고 정말 “개인사직”을 위한 사직서입니다. 금번 파업을 하더라도 의대증원수만 줄어들지 소아청소년과를 포함하여 무너지고 있는 필수의료과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은 마련되지 않을 것 같고 의사가 환자 목숨보다 자기 밥그릇을 중시한다는 비난들은 더는 견디기 괴롭습니다. 소청과 의사의 밥그릇에 뭐가 담겨 있나요? 소아청소년과를 같이 하자고 후배들에게 더 이상 권할 수가 없습니다.

    몇 개월만 수료하면 끝이라 속상하지만 이런 현실이라면 저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면허가 있더라도 소아환자진료를 보며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의사 집안도 아니고 모아둔 돈도 없고 이제는 세 아이의 엄마로서 생계 유지도 필요하고 아이들을 돌볼 시간도 필요합니다. 엄마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포기하고 피부미용 일반의를 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50분의 심폐소생술후 살아난 위 아이는 지금 일반병동에서 다음주 퇴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환아의 웃는 얼굴을 보니 오늘도 참 뿌듯했고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씁쓸함이 밀려옵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못다한 꿈은 의료봉사로 채워보겠습니다.

    병원 동료들 선후배님들 교수님들께 죄송하며 이때까지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