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서 핵심 이슈 중 하나였던 초진∙재진 허용 여부가 재진부터 허용으로 가닥히 잡힌 가운데 의료계 및 플랫폼 업계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약 배송 허용부터 비대면 진료 수가와 의료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소재 등 제도화 과정에서 정리가 필요한 사안들이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13일 의료계∙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비대면 진료 대상을 재진 중심으로 한정하기로 잠정 합의하면서, 향후 제도화 과정에서 다뤄질 다른 이슈들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플랫폼 업계 ‘약 배송’ 허용 여부 촉각…약사회 반대 관건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약 배송 허용 여부다. 이용자들이 언제 어디서든 비대면 진료를 통해 편리하게 약을 배달받을 수 있단 점은 지금껏 산업계가 주요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왔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산업계는 비대면 진료의 중요한 축인 약 배달을 막아버릴 경우엔 비대면 진료의 효용이 크게 감소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용자들이 약을 수령하기 위해 집을 나서야 한다면 굳이 비대면 진료를 활용할 유인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21년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비대면 진료에 대해 긍정적(66.1%), 비대면 진료 이용 의향이 있다(68.4%)고 답한 비율보다 약 배송에 대해 긍정적(72.9%), 약 배송을 이용할 의향이 있다(79.3%)고 답한 비율이 더 높았다.
문제는 약 배송이 의료계보다는 대한약사회가 줄곧 반대해 온 사안이라는 점이다. 약사회는 그간 복약 지도 불가, 배달 과정에서 의약품 변질 및 오배달 가능성, 마약류 오남용 유발 등을 이유로 약 배송 불가 입장을 고수해왔다. 약 배송이 허용되면 대형 온라인 약국이 등장해 동네 약국이 타격을 입는 등 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란 점도 우려하고 있다.
이처럼 타 직역이 얽힌 문제인 만큼 약 배송은 의료현안협의체에선 다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약사회는 약사회와 복지부가 별도로 약정협의체를 열고 약 배송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는데, 약사회의 약 배송 반대 기조에 변화가 없는 경우 약 배송을 제외한 비대면 진료가 현실화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비대면 진료 플랫폼 A사 대표는 “약 배송이 없으면 비대면 진료 의미가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며 “실제 앱 이용자 중 약을 약국에 방문해서 수령하는 비율은 15%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대면진료 대비 높은 수가 가능할까…의료계는 1.5배 이상 주장
비대면 진료 수가가 어떻게 책정 될 것인지도 관심사다. 의료계는 비대면 진료가 대면 진료 대비 난이도가 높으며, 추가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면 진료보다 수가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왔다. 지난해 메디게이트뉴스가 메디게이트 의사 회원 10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비대면 진료 수용 시 의협이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적정수가 책정(30%)’이 꼽혔다.
실제로 정부는 이 같은 의료계의 의견을 반영해 팬데믹 기간 동안 전화 상담∙처방에 대해 의원급 의료기관은 기존 진찰료 외에 전화 상담 관리료 30%를 별도 수가로 산정해왔다. 이 같은 수가 가산은 실제 의료기관들이 비대면 진료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유인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적정 수가 수준에 대해서도 의료계에선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열린 의협 대의원 정기총회에서는 비대면 진료 수가가 최소 대면 진료 수가의 1.5배는 돼야한다는 데에 의료계의 의견이 모인 바 있다.
정부도 수가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검토를 진행중인 상황이다. 지난 1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장태영 서기관은 “(비대면 진료) 수가는 의료계의 관심 사안이자 제도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요소”라며 “다만 전체 건보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진료시간이나 난이도 등 부가적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다른 행위나 제도 등과 연계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법적 책임 소재도 관심사…제약 많은 비대면 진료 특성 고려해야
의료사고 발생시 법적 책임 소재 여부도 향후 세부 논의 과정에서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다. 의료계는 대면 진료와 달리 장비 제조업자, 관리업자 등 다수의 책임 주체가 발생하는 비대면 진료의 특성상 의료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을 온전히 의사에게 지우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실제 정부가 발표한 현행 ‘한시적 비대면 진료 허용방안’에서는 비대면 진료를 의사의 판단에 따라 안전성 확보가 가능한 경우에 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의사에게 책임을 온전히 넘기는 것으로 향후 비대면 진료 활성화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비대면 진료 필수 조건 연구’에서 “비대면 진료 시행 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위험 발생 원인에 따라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특히 의료가 아닌 정보통신기술 혹은 환자 불응 등으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은 의사에게 없다는 내용이 명확히 적시된 의료법 개정 및 정보통신 관련 법 개정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비대면 진료 법안들은 이 같은 의료계의 의견을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공통적으로 ▲통신 오류로 인한 경우 ▲환자 이용 장비에 결함이 생긴 경우 ▲의사의 문진에도 환자가 ‘고의∙중과실’로 진료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치 않은 경우 ▲그 밖에 의료인의 과실을 인정할 만한 명백한 근거가 없는 경우 등을 의사 책임 면제 사유로 명시했다.
비대면진료연구회 관계자는 “최근 정부와 의료계의 합의는 큰 틀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약 배송, 수가, 의료사고 발생시 책임 소재 등 아직까지 논의해야 할 사안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