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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톡스 이어 뇌파계도 넘어가나

    고법 "뇌파계 사용 한의사 면허정지 취소"

    기사입력시간 2016-08-26 06:43
    최종업데이트 2016-08-26 09:37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인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 치매 진단을 했다고 해서 면허정지처분을 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치과의사의 미용 보톡스 사용 합법 판결에 이어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에 대해 새로운 판결이 나오면서 의사의 고유 영역이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양상이다.

    N한의원을 운영중인 한의사 이모 씨는 2010년 9월부터 약 3개월간 현대의료기기인 뇌파계를 파킨슨병, 치매 진단에 사용했다.
     
    뇌파계는 환자의 두피에 두 개 이상의 전극을 부착, 뇌파를 증폭한 후 컴퓨터로 데이터 처리해 뇌의 전기적인 활동 신호를 기록하는 장치다.
     
    이 사건 뇌파계는 식약처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로서 위해도 2등급(사용중 고장이나 이상으로 인한 인체 위험성이 있지만 생명의 위험 또는 중대한 기능장애에 직면할 가능성이 적어 잠재적 위험성이 낮은 의료기기)을 받았다.
     
    모 경제지는 2010년 11월 '급증하는 40~50대 파킨슨병 환자…복진, 뇌파검사로 진단…한약으로 치료'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해당 기사에는 이 씨가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 여부를 확인하는 사진이 포함돼 있었다.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제1항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S보건소는 2011년 이 씨가 한의사에게 면허된 것 외의 의료행위를 했다며 한의원 업무정지 3개월, 의료광고 심의 없이 경제지에 기사를 게재했다는 이유로 경고처분을 했다.
     
    또 보건복지부는 2012년 4월 같은 사유로 3개월 한의사면허 자격정지처분과 함께 경고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이 씨는 복지부의 행정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 씨는 ▲해당 의료기기가 잠재적 위험성이 낮은 위해도 2등급에 속하는 점 ▲한방신경정신과 진료를 하면서 짧은 기간 보조적으로 뇌파계를 이용한 것에 불과하며 ▲한의학에서도 뇌파를 연구하고 있어 의료법 상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013년 이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1심 법원은 이 씨가 뇌파계를 사용한 것은 한의사에게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건복지부의 면허정지처분이 정당하다고 봤다.
     
    이와 달리 2심 재판부는 최근 이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의사 면허자격정지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서울고법은 "한의원에서 뇌파계를 파킨슨병, 치매 진단에 사용한 행위가 한의사로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의료기술의 계속적 발전과 함께 의료행위의 수단으로서 의료기기 사용 역시 보편화되는 추세에 있어 의료기기의 용도나 작동원리가 한의학적 원리와 접목해 있는 경우 등 한의학의 범위 안에 있는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서는 허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뇌파계의 개발 및 뇌파계를 이용한 의학적 진단 등이 현대의학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뇌파계를 사용한 것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며 기존 판례와 상이한 견해를 피력했다.
     
    법원은 "원고가 복진 또는 맥진이라는 전통적인 한의학적 진찰법을 통해 파킨슨병 등을 진단함에 있어 뇌파계를 병행 또는 보조적으로 사용한 것은 신체 표면을 만져서 진단하는 '절진'의 현대화된 방법 또는 기기를 이용한 망진이나 문진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법원은 한의대 교과과정에 뇌에 대한 교육이 있으며, 한의사 국가시험에 뇌파기기 항목이 2012년 1문제 출제되었으며, 해당 뇌파계의 위험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도 판결 이유로 꼽았다. 
     
    법원은 "이 사건 뇌파계는 측정결과가 상당한 수준으로 자동 추출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설령 검사 시행자가 추가로 판독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X-ray나 CT, MRI 또는 초음파와 같이 전적으로 의사의 판독에 의해서만 결과가 추출되는 것과 달리 상당한 수준의 자동 추출되는 측정 결과를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뇌파계의 사용에 특별한 임상경험이 요구되지 않고 위해도도 높지 않으며, 그 사용에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지식이나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점에 비춰 보면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가 없다는 점도 거론했다.
     
    이에 따라 2심 법원은 "이씨가 뇌파계를 파킨슨병 및 치매 진단에 사용한 행위가 한의사로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한의사 자격정지처분이 위법하다고 선고했다.

    지난 2013년 12월 헌법재판소는 한의사도 안압측정기와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 청력검사기 등 5개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 

    한의사들이 진료에 사용한 이들 의료기기는 측정결과가 자동으로 추출되는 기기들이며, 신체에 아무런 위해를 발생시키지 않고, 측정결과를 한의사가 판독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적인 식견을 필요로 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뿐만 아니라 최근 대법원은 치과의사가 미용 목적으로 안면부에 보톡스 시술을 한 행위를 의료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 취지의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대법원은 "의료행위의 개념은 의료기술의 발전과 시대 상황의 변화, 수요자의 인식과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의약품과 의료기술 등의 변화와 발전을 반영해 각 의료인에게 허용되는 새로운 의료행위 영역이 생겨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이런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처럼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둘러싼 새로운 판례가 나오면서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직역간 논란과 충돌이 앞으로 더 빈번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