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키워드 순위

    메디게이트 뉴스

    농어촌에 ‘공공 종합의원’ 만들자…주치의·돌봄 잇는 일차의료 허브

    박건희 평창군보건의료원장 “예방·만성질환 관리해 중증·돌봄 진입 막아야”

    복지부 “일차의료 정책 우선순위 밀렸던 측면…지역별 다양한 모델 지원”

    기사입력시간 2026-09-08 12:56
    최종업데이트 2026-09-08 12:56

    평창군보건의료원 박건희 원장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을 통해 한국형 주치의 모델 도입에 나선 가운데, 농어촌에는 주민의 건강관리부터 진료와 돌봄까지 책임지는 ‘공공 종합의원’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공공 종합의원을 지역 일차의료의 허브로 두고 보건기관과 민간의원, 2·3차 의료기관, 돌봄기관을 연결하고, 주민이 중증질환이나 돌봄이 필요한 상태로 악화되지 않도록 예방 중심의 일차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농어촌 지역 의료·돌봄 현안 해법 모색 토론회’에서 평창군보건의료원 박건희 원장이 평창군의 일차의료 운영 경험을 토대로 이 같은 농어촌 의료체계 개편 방안을 제시했다.

    “건강할 때부터 책임지는 공공 종합의원 필요”

    박 원장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의 연간 의료비는 평균 약 50만원이지만 고혈압·당뇨가 발생하면 200만원을 넘고, 합병증이나 골절로 장애와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되면 의료비와 장기요양비를 합쳐 약 2000만원까지 늘어난다. 평창에서는 약 1만5000명이 연간 약 200만원이 필요한 단계에 있으며 이 가운데 매년 약 240명이 중증·돌봄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박 원장은 “현재는 주민의 상태가 악화되고 의료서비스 이용이 늘어야 의료기관과 장기요양기관의 수입이 증가한다”며 “의사가 나빠서가 아니라 사회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핵심은 돌봄서비스만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농어촌에는 의사와 간호사, 운동·영양 전문가 등이 팀을 이루고 보건기관과 민간의원, 2·3차 의료기관, 돌봄기관을 연결하는 ‘공공 종합의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여러 의사가 진료만 제공하는 대형 의원이 아니라 소규모 동네의원이 포괄적인 건강관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역 일차의료 허브다.

    평창군은 주민의 혈압·혈당을 원격으로 확인하고 관리가 어려운 고위험군을 다학제 진료로 연결하고 있다. 박 원장은 “2024년 다학제 진료 약 80건 가운데 2건을 제외하면 약물을 늘리지 않고도 2주 안에 혈압과 혈당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노쇠 예방사업에서는 주민 1명당 6개월간 약 100만원을 투입해 근력운동과 영양관리를 제공한 뒤 66개월간 추적한 결과, 의료·돌봄 관련 비용이 약 882만원 감소했다. 박 원장은 “예방으로 절감한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재정 일부를 의료기관과 지자체에 돌려줘야 한다”며 “주민의 합병증과 중증화를 막는 것이 의료기관에도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국에 단일한 모형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며 “보건의료원이나 사회서비스원,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민간의료기관, 지역의사회 등이 지역 사정에 맞는 다양한 공공 종합의원 모델을 실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사업 계속 만들어도 기존 정책 왜 안 돌아가는지 모르면 실패”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금창영 이사장은 새로운 제도와 예산을 만드는 것만으로 농어촌 의료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통합돌봄 관련 법과 조례가 마련됐지만 홍성의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지역 보건기관에 의사가 오는 횟수가 주 2회에서 주 1회로 줄었다는 설명이다.

    금 이사장은 “현장의 요구를 반영해 정책과 사업을 만들었지만 문제가 생기면 정부는 또다시 새로운 사업을 만들거나 기존 제도를 더 촘촘하게 설계한다”며 “그전에 만들어진 정책도 같은 과정을 거쳤을 텐데 기존 정책이 현장에서 왜 작동하지 않는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각종 지원사업 공문을 내려보내도 주민에게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문제도 제기했다. 이장에게 공문을 보내 마을방송으로 알리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어, 제도가 있어도 주민이 알지 못해 신청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는 “복지예산으로 150조원을 쓰는 나라에서 이를 300조원으로 늘리면 수가가 현실화되고 지역필수의료가 작동하며 농촌에 의사가 몰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하다”며 “새로운 제도나 사업을 얘기하기 전에 기존의 잘 만들어진 정책이 현장에서 왜 작동하지 않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어촌 지역 의료·돌봄 현안 해법 모색 토론회’ 전경

    복지부 “일차의료·돌봄,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측면”

    보건복지부도 지역·필수의료 정책이 응급·소아·분만과 병원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일차의료와 돌봄이 상대적으로 뒤로 밀렸던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보건복지부 강민구 지역의료정책과장은 “지역·필수의료 정책에서 응급과 소아, 분만 등은 논의가 많이 진행되고 가시적인 부분도 있지만 일차의료와 돌봄은 기본적인 영역임에도 정책의 앞부분을 차지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강 과장은 통합돌봄을 하나의 신규 사업이 아니라 의료·돌봄 전달체계 전체를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으로 규정했다. 다만 부서별로 나뉜 기존 관료제의 업무방식을 부처와 사업을 가로지르는 협업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관련 법이 시행되고 여러 사업과 재정 투입이 이뤄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가 아직 크지 않다는 지점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중앙정부가 사업을 세부적으로 설계하고 지방정부가 집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중앙정부는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고, 지방정부가 지역 여건에 맞는 의료모델을 주도적으로 설계하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강 과장은 “지역마다 인구와 보유한 의료자원, 주민 수요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모델이 필요하다”며 “박 원장이 제시한 모형처럼 각 지역이 자율적으로 모델을 시험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의료기관이 떠나고 공중보건의사 배치까지 감소하면서 새로운 개념의 무의촌이 생기고 있다”며 “보건소와 보건지소, 보건진료소가 현재 상황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능 개편을 추진하고, 주민에게 필요한 의료·돌봄서비스가 끊김 없이 연결되는 체계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