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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 뒤에 숨은 구조적 전술'…정부는 어떻게 '의대증원' 정책을 정당화했나

    학계, 의정갈등 사태 단순한 정책 이견 아닌 정부 권위적 한국 사회 구조적 문제

    명분 창출→낙인과 사법화→영웅화→정당화→민주적 정당성 연출

    기사입력시간 2026-04-29 10:09
    최종업데이트 2026-04-29 12:29

    사진은 지난해 4월 20일 열린 대한의사협회 집회 모습.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의정사태가 마무리되고 반년 가량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와 의료계 갈등의 주요 원인과 의견 조율 과정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의료계 안팎에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다양한 문제점들을 개선하려는 시도를 통해 비슷한 갈등 양상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의정갈등, 전형적 행정폭력…의료계 반발 '기득권 저항'으로 프레이밍

    29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우선 학계는 이번 의정사태에 대해 단순한 정책 이견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깊이 연결된 복합적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인제의대 박종성 의학교육학교실 교수가 지난 2월 발표한 '의료와 권력: 한국의 의정갈등과 정치학' 논문에 따르면,  그는 '낮은 비용-높은 품질-우수한 접근성'이라는 불완전한 균형 위에 구축된 한국 의료시스템이 정부 포퓰리즘 언술과 의료 정치 부재가 중첩되며 위기에 직면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 내 여전히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권위주의 문화가 의정갈등의 뿌리에 자리하고 있다는 게 박 교수 주장의 골자다. 

    박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의 의정갈등은 전형적인 행정폭력의 결과물이다. 의료집단을 철저히 배제한 권위적인 정부의 일방적 의사결정이 국가와 의료를 단절하고 시민들과의 소통마저 임의 파기함으로써 제도신뢰의 기본과 정책의 미래를 닫아버렸다"며 "이 사태는 무의사결정의 대표 사례로 결정을 단행한 정권의 퇴진을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는 의료계의 반발을 ‘기득권의 저항’으로 규정하며 국민의 인식을 부정적으로 유도한다. 정부는 ‘공공의 이익’을 깃발에 새기고 의료계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프레임을 씌워 국가 기본의제를 국민들이 무의식적으로 동의하도록 정교하게 프로그래밍한다"고 강조했다. 

    위기 서사 중심으로 명분 창출…빠르게 '낙인'찍고 민주적 정당성 연출

    인제의대 노혜린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권위주의적 침묵 정당화 서사: 의정갈등에서 국가의 통치 전술과 위기 담론의 활용' 논문에서 국가가 어떻게 권위적으로 정책을 정당화하는지에 대한 전술 매커니즘을 소개했다. 

    노 교수에 따르면, 이번 의정갈등 당시 ▲명분 창출 ▲낙인과 사법화 ▲영웅화 ▲정당화 ▲민주적 정당성 연출이라는 5가지 전술이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노 교수는 "국가는 의정갈등에서 위기 서사를 중심으로 필수의료 붕괴, 응급의료 위기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침묵과 복종을 국민의 의무로 요구하며 정책 명분을 창출했다"며 "국가는 반대 집단을 사회적 해악으로 낙인 찍고, 그 목소리를 집단 이기주의나 불법 행위로 규정한다. 정치적 문제를 법적 문제로 전환해 비판을 처벌 대상으로 다룬다. 이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공간은 빠르게 줄어든다"고 전했다. 
     
    정부가 사용한 권위주의적 침묵 정당화 서사. 사진= '권위주의적 침묵 정당화 서사: 2024~2025 의정갈등에서 국가의 통치 전술과 위기 담론의 활용', 노혜린(2026).


    실제로 의정갈등 당시 정부는 의사 집단의 집단행동을 불법 행위로 규정하고 업무개시명령을 통해 사법적 통제를 가함으로써, 의사들이 정책 비판을 하는 목소리나 집단행동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노혜린 교수는 또 "국가는 과학성, 전문성, 합리성을 강조하며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이 전술은 정책 비판을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태도로 몰아간다. 의정갈등에서는 정부가 충분한 검토와 전문가 논의를 거쳤다고 반복하며 정책 비판의 목소리를 약화시켰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가는 참여, 논의, 협의체, 절차와 같은 민주적 형식을 강조하는 동시에 여론을 동원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정책 방향을 미리 정해뒀으면서도 자신의 정책을 국민의 의지로 보이게 만들고, 반대의 목소리를 국민과 대립하는 행동처럼 보이게 만든다. 의정갈등에서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와 같은 구조를 내세웠다"고 소개했다. 

    명령통제형 규제 보단 '인센티브 기반·자율규제' 중심돼야

    이 같은 정부 중심 명령통제형 규제에 대한 대안으론 '인센티브 기반 규제와 자율규제' 등이 거론된다. 통제형 규제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경북대 김성준 행정학과 교수는 올해 발표한  '의정갈등과 정부실패' 논문에서 "정부는 필수의료 공백을 시장실패로 규정하고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한 개입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분석에 따르면, 의료서비스는 경합적이고 배제적인 특성을 가지므로 공공재가 아니며, 필수의료 분야의 공급 부족은 의료수가제라는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통제에서 비롯된 정부실패에 해당한다"고 봤다. 

    김 교수는 "현재 의료서비스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은 명령통제형 규제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면허제, 의료수가제, 정원 통제 등 의무를 열거하는 방식은 신속하고 명료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정부가 모든 상황에 맞는 기준을 설정하기 어렵고 인센티브를 고려하지 않아 규제 순응 비용이 높아진다는 한계가 있다. 의정갈등 사태와 초저수가로 인한 필수의료 기피 현상은 명령통제형 규제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명령통제형의 대안으로는 인센티브 기반 규제와 자율규제를 고려할 수 있다. 필수의료를 제공하는 의료인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수가를 현실화하고, 수가 지정 과정에서 병의원 및 전문가 등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며 "일본의 사례는 이런 접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일본은 의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의사수급분과회’의 의견을 적극 존중하며, 점진적이고 유연한 인원 조정을 시행하고, 산식에 기반한 과학적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는 상대하기 더 부담…의료계 내부 갈등 문제 숙제

    윤석열 정권 이후 등장한 이재명 정부에 대해선 의정갈등을 '의료개혁'으로 개념 확장한 부분에서 의료계가 대응하기 더욱 까다로워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박종성 교수는 "이재명 정부는 의정갈등에 관한 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전 정권의 사단으로 치부하기도 편리하지만 이른바 의료개혁이라는 그물까지 장악하고 있는 양수겸장의 행정권력은 막강한 편"이라며 "지⋅필⋅공의 트라이앵글은 의대 입학 정원의 폭증으로 발화한 의정갈등의 관장 범위를 확장할 뿐 아니라 의료계가 대응 거점의 잠재적 복수화에 따른 부담까지 떠안도록 부추긴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무엇보다 정권 차원에서 선호하는 사회주의 정책기조는 의료에도 예외 없이 적용될 것이고 상징 권력의 전략적 활용은 권력 주변부의 지식인 집단이나 기획 차원의 아이디어로도 자연스럽다"고 평가했다. 

    한편 의료계 역시 내부 갈등으로 인해 의정사태 해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박 교수는 "의정갈등은 평소 의료집단 내 갈등이 독촉 변수로 기능해 온 게 사실이다. 의정갈등이 의의(醫醫)갈등으로 가려짐으로써 현상의 잠식은 물론 결과론적 침식마저 무릅쓰게 만든 탓이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상당 기간 이어진 의료집단 내부의 암묵적 갈등 중 하나인 의료사회주의 정책논리와 공공의료 기조에 대한 이론적 대안이 부재하다. 책임 있는 대응 주체로 대한의사협회 이상의 기관도 현재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의협이 의의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