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법제처가 임신중지약물의 수입품목허가가 현행 모자보건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가운데, 산부인과계가 법 개정과 안전관리체계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와 건강한여성재단 인공임신중절위원회(임중위)는 25일 입장문을 통해 “법제처 해석의 법적 의미를 존중하되, 이것이 임신중지약물의 안전한 임상 사용 조건까지 확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앞서 법제처는 지난 19일 식품의약품안전처 질의에 대해 임신중지약물의 수입품목허가가 모자보건법에 위반되지 않으며, 약사법상 안전성∙유효성 요건을 갖춘 경우 식약처 허가는 재량이 아닌 기속행위에 해당한다고 회답했다.
임중위는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직선제)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가 참여하는 산부인과계 협의체다.
임중위는 그간 ▲형법∙모자보건법 개정 이후 의약품 도입 또는 법 개정과 의약품 도입의 동시 추진 ▲의사의 양심적 거부권 보장 ▲해당 약품의 의약분업 예외 지정과 산부인과 전문의 처방 ▲안전관리체계의 선행 구축 등 4가지 원칙을 요구해왔다.
임중위는 “이는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도입의 순서와 조건을 바로 세우자는 요구”라고 강조했다.
특히 임중위는 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 사용 과정에서 임신 주수 확인과 자궁외임신 배제, 투약 후 완전 배출 확인 등 의학적 평가와 사후∙응급진료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가 ‘의사의 수술’만을 임신중절 방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약물적 임신중지의 정의와 허용 주수, 처방기관 요건, 추적관찰 및 응급대응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임중위의 주장이다.
임중위는 “적절한 사전∙사후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량 출혈, 감염, 불완전 유산에 따른 응급수술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법 개정을 선행 과제로 요구하는 이유는 안전한 진료 접근성과 부작용 관리체계를 먼저 확보해야 여성의 건강권이 실질적으로 보호된다는 의학적 판단에 근거한다”고 했다.
2019년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품목허가 절차만 먼저 진행하는 데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임중위는 “입법적 정비 없이 품목허가 절차만 선행되는 것은 제도 미비의 부담을 의료 현장과 여성에게 전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국회와 정부가 대체입법 책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행정해석에 의존하여 도입을 진행하는 데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어 “임신중지는 허가만으로 완결되는 사안이 아니라 진단∙상담∙투약∙추적∙응급이송이 연결된 의료체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가 법 개정 이전에 품목허가를 추진할 경우에는 허가조건과 위해성관리계획(RMP)에 구체적인 안전장치를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처방자를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산부인과 전문의로 제한 ▲등록 의료기관 중심의 폐쇄형 공급망과 의약분업 예외 지정을 통한 원내 투약 ▲초음파로 확인한 임신 10주 미만 사용 원칙 및 자궁외임신 배제 의무화 ▲지역 응급의료기관∙상급의료기관과의 사전 연계 및 신속한 전원체계 마련 ▲임신주수∙합병증∙약물 부작용 보고 및 도입 3년 후 재평가 ▲허가 시행일과 안전관리 기준∙수가∙의료인 법적 보호 체계 시행일 일치 등을 제시했다.
기존 허가 신청 과정에서 제약사가 위해성관리계획과 관련해 산부인과계 의견을 조회하지 않았다는 점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임중위는 “전문가의 의견이 배제된 위해성관리계획으로는 약물 도입 후 여성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며 “전문가의 검증과 임상적 안전관리체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허가는 단순한 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건강과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와 함께 설명·동의 절차, 미성년자 기준, 배우자 동의 불필요 원칙, 불가항력적 부작용 보상, 의료과실 구분 기준 등을 정부 지침으로 명확히 하고, 진료지침을 준수한 의료인의 형사면책과 양심적 거부권은 법률로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임중위는 향후 한국형 약물적 임신중지 진료지침을 개발하고 시술의사∙시술기관 인증 및 교육과정 운영, 익명 등록∙부작용 보고체계 구축, 위험관리계획 협의 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임중위는 “여성의 건강과 안전이 모든 판단의 출발점”이라며 “국회와 정부는 조속히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정비하여 입법 공백을 종결해 주시기를 다시 한번 강력히 요청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