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 대한 의료계 내부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법안 중재에 실패한 대한의사협회 대관 업무가 도마위에 올랐다.
법안의 치명적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국회 상임위를 그대로 통과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법 개정 환영'→'의료 분쟁 더 부추겨 우려' 입장 선회
25일 메디게이트뉴스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이번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 사태에 있어 우선 눈 여겨 볼 대목은 '의협의 입장 변화'다.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지난 11일 국회 복지위 법안소위를 통과하자 의협은 곧장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의협 김성근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개정안이 필수의료 분야의 사법리스크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된 부분에 대한 환영의 입장을 표명한다"며 "특히 의정협의체에서 실무적으로 논의를 진행하면서 의료계의 우려를 전달했고, 이런 내용이 정부안에 많이 반영돼 개정안이 진행되는 것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계 내부에서 개정안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의협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일부 입장 조정에 나섰다.
현재 의료계는 개정안이 ▲'중대한 과실이 있는 의료행위'를 12가지로 정의하는 부분이 실제 의료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거나 ▲'의료사고 설명의무' 법제화, ▲책임보험 의무가입,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신설 등이 독소조항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관련해 의협 박명하 상근부회장은 지난 18일 국회공청회에서 "국회에서 의료 현장을 살리기 위한 여러 개정 법률안들이 발의된 것은 무척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다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우려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다"며 "우선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은 자칫 진료의 결과에 대해 의료진 책임 소재를 먼저 따지게 만들어 의료 분쟁을 더 부추길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 부회장은 "중과실 여부를 엄격히 따져 형사처벌을 면제하겠다는 취지의 조항들은 현장에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온다. 자칫하면 의료진이 환자를 치료하는 매 순간, 처벌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방어하고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굴레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새롭게 신설하려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역시 걱정이 앞선다"고 전했다.
이에 의협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측에 12대 중과실을 6대로 줄이고, 의료사고심의위에 의사 위원을 5명에서 10명으로 늘리는 등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의 의협 수정안을 전달한 상태다.
'독조소항' 보다 '사법리스크 완화'에 기대…조항 문제 부각되자 해결 난항
일주일여 만에 의협의 입장은 왜 변한 것일까. 복수 관계자들에 따르면, 애초에 의협은 통과된 '의료분쟁조정법 정부 대안'을 두고 일부 우려는 있지만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은 것으로 평가했다.
개정안이 독소조항이 되기 보단 의료인의 형사처벌을 줄일 수 있는 '사법리스크 완화'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특히 일부 의료계 인사들이 법안의 문제를 직접 지적하자 의협 임원은 법안 통과 이후 시행령을 정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개선하면 된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계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의협 집행부가 의정협의체에서 보건복지부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내용에 합의한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최근 감춰진 법안의 문제들이 더욱 부각되며 의협 집행부가 해결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의협이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면서 복지위 여·야 의원들 중 누구도 최근 의료계 내부에서 부각되고 있는 문제점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 11일 진행된 복지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1소위에선 '통상적으로 수용되는 진료에서 현저히 벗어난 의료행위'라는 7번 중과실 의료행위 정의에서 "현저히라는 단어가 모호하다"는 취지 논의 정도만 이뤄졌다.
1소위원장인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정부 측에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 내용과 관련해 "전부 다 관계기관이나 단체 의견을 수렴했느냐"고 물었고 복지부 이형훈 2차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의협이 제때 법안 파악 못해 논의 시점 놓쳐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에 대한 여러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지난 18일 ''의료 민형사 소송 현황 비교분석 및 개선방안 모색 국회 공청회'도 의협 집행부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김택우 회장은 공청회에 참여하지 않았고 박명하 상근부회장도 인사말만 전한 이후 바로 퇴장했다.
반면 이날 공청회에선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공청회에 참석한 서울고법 신재호 판사는 "중과실이라고 판단하는 의료 행위를 법으로 선언해버리면 향후 법원에서 달리 볼 수 없고, 바꾸기도 어렵다. 법원에서 의사 책임 감면이나 과실 비율 조정도 어려워 진다"며 "중과실을 법으로 정의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법률로 바꿀 일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연세대학교 서종희 법학전문대학원 서종희 교수도 "중과실을 인정하는 사유를 법에 규정하게 되면, 입법자의 결단에 대해 사법부는 구속될 수밖에 없어서 사실상 규범적 판단을 통해서 중과실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는 경우에도 중과실이 인정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의협이 제때 법안의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해 법안 논의 시점을 놓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의협 법제 부회장이기도 한 서울시의사회 황규석 회장은 "원안이 총 20명 위원 중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전문가가 5인이고 시민단체가 5인이었다는 것이 아연실색할 일이다. 다만 수정안에서 전문가를 10인으로 늘린다 하더라도 과연 제대로 된 심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의협 법제 담당 부회장으로 지난 12월에 임명돼 매주 결제를 하고 있지만 해당 내용을 미리 파악하지 못해 송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