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영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평가제도개선팀장은 지난 2일 페럼타워 3층 페럼홀에서 열린 ‘의약품 사후평가 기준 및 방법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통해 기등재 의약품의 사후평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평가 대상은 기등재 의약품 중 고가약에 해당하는 항암제, 희귀질환치료제, 임상적 유용성이 불확실한 약제 등이다. 평가 기준은 제외국 등재여부, 사용빈도·청구비중 등을 고려해 보다 세부적으로 구성됐다.
패널 토론에서 장기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제약바이오업계 측은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사후평가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국내외 문헌을 근거로 하는 ‘문헌 재평가’ 효과 분석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의약품 사후평가서 제외국 등재 여부·사용빈도 등 고려
우선 심평원이 공개한 의약품 사후평가 대상은 급여 의약품 중 고비용의약품에 해당하는 항암제, 희귀질환치료제, 임상적 유용성이 불확실한 약제 등이다.
구체적으로 ▲효과재평가를 통한 임상적 유용성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약 ▲인구구조·사용량 증가로 관리 필요성이 있는 약제 ▲약제사후평가 소위원회에서 사회적 영향·기타 보건의료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한 평가가 필요한 약제 등이 해당된다.
평가 대상 선정 이후에는 제외국 등재 여부, 사용빈도·청구비중, 의약학적 중요성, 사회적 관심의 정도 등을 고려할 방침이다. 여기서 제외국 등재 여부의 경우 급여 의약품 제외국 8개 국가 허가현황, 급여현황을 검토할 예정이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거친 의약품은 관련 교과서·가이드라인, HTA(Health Technology Assessment) 보고서, 임상문헌 등을 바탕으로 평가된다. 교과서·가이드라인은 관련 학회, 전문가 추천을 받아 목록을 작성할 예정이다. 교과서와 가이드라인을 검토할 때에는 근거중심성, 통용 범위, 전문성, 타당성 등을 고려할 방침이다.
다만, 검색 DB, 주요 교과서 등 기본 교과서 목록, 제외국 가이드라인 검색 DB를 포함한 기본 가이드라인 목록, HTA 보고서, 임상문헌의 세부 평가 기준은 검토 중이다. 이외에 진료상 필요성분, 대체 가능성, 약제의 특수성 등도 논의 중인 상황이다.
향후 심평원은 ‘재정기반 사후평가’(제외국 가격비교 약제 재평가·등재 년차 경과 약제 재평가)와 ‘성과기반 사후평가’(문헌 기반 약제 재평가·RWE 기반 약제 재평가) 추진을 검토할 예정이다.
제약바이오협회, 과정 중복·문헌 평가 기준·제외국 가격 비교 문제점 지적
패널 토론에 참여한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심평원이 공개한 의약품 사후평가 기준안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과정의 중복성, 문헌 평가 기준, 제외국 가격 비교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장우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는 “재정기반, 성과기반 사후평가를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하겠다는 것인데 모든 기업, 산업계가 긴장하고 공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시도”라며 “4개의 사후평가제도에 소위 트레이드오프(trade off) 등을 통해 만성질환 약품비를 중증질환에 투입하겠다는 큰그림이 있는 듯하다. 사회적 합의를 한 것인지, 보험원리에 적합한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장우순 상무는 “주 발표내용이 성과기반 사후평가에 문헌 기반 약제비 재평가로 보인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같은 기준을 갖고 이미 임상적 유용성 평가를 했다”며 “지금 와서 한 번 더 하겠다는 것이 무슨 취지인가”라고 언급했다.
장 상무는 “문헌평가 기준 등이 질환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가. 임상시험 측면에서의 차별점을 무시하고 일관된 기준으로 다시 확인하겠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며 “제외국 가격 비교도 상당히 위험한 시도”라고 밝혔다.
그는 “국민, 의료계, 산업계와 충분히 협의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진행돼야 한다”며 “문헌 재평가를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산업계 측면에서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사후평가 기준안이 나온 것에 큰 의의가 있지만 지나치게 세밀한 기준을 개선하고 절차적 투명성 보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안정훈 이화여자대학교 융합보건학과 교수는 “사후평가 필요성에 동의하고 중요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며 “불확실성을 사후평가에서 해결해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기준이 너무 세세해지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자세하게 특정하기보다는 원칙 수준에서 정리하고 평가과정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절차적 투명성도 중요하다. 절차의 투명성이 결정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김진현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는 “환자 안전, 환자가 지불하는 비용이 가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은 꼭 필요하고 체계적으로 추진됐으면 한다”며 “다만, 평가 기준이 많으면 모든 경우의 수를 포괄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불공평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가급적 단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평가 결과가 특정 회사에 따라 득실이 있을 수 있지만 시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옥석을 구별하는 과정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긍정적 영향이 클 것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