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어린이날 연휴 고열에 시달리던 5세 소아가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해 끝내 사망한 사건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폐과를 선언하며 소아의료체계가 사실상 붕괴했다는 섬뜩한 경고를 했던 것이 이번 사건으로 사실로 드러나면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인력이 다시 진료 현장에 돌아올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료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정부에 강도 높은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에서 소아 환자 병실 없어 입원 못 해…소청과의사회 "정부 무성의한 대책 때문"
17일 SBS 보도에 따르면 어린이날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6일 밤, 서울 군자동에 사는 5살 소아가 고열이 발생해 119를 불렀으나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병상이 없어 입원조차 못해보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소아는 119 구급대가 전화를 건 5번째 병원에서 겨우 '급성 폐쇄성 후두염' 진단을 받아 치료됐으나 입원실이 없어 다음 날 새벽 귀가했다. 하지만 귀가 후에도 소아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재차 119에 탑승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해당 소아는 병원 도착 40여분 만에 사망했다.
매체는 입원·진료를 거부했던 4개의 병원 중 국내 최대 소아과 응급병상을 갖춘 A 병원은 대기 환자가 많았고, 소아 응급실이 따로 없는 B·C 병원은 성인 환자로 침상이 없었으며, D 병원은 야간 소아 응급환자를 진료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 소아청소년 의료 인프라가 그 근본부터 붕괴 중임을 알리며 눈물의 폐과 선언을 감행했던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그 책임을 보건복지부에 물었다.
폐과 선언 당시 소청과의사회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의대만 나온 의사보다도 수입이 적은 현실을 알리며, 소아청소년 진료로는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며 소아과 진료 포기를 선언하고 노키즈존 진료 업무로 탈출하겠다고 밝혔다.
소청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폐과 선언을 진행하며 "누누이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해 왔지만, 복지부는 기존의 정책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탁상공론 같은 정책만을 되풀이 했다"며 "소아 의료체계 붕괴로 아이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의사 전문가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정부에게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소아 사망 사건에 대해 임현택 회장은 "이른바 고위 공무원들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제발 아이들만 진료하고도 병의원을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목 놓아 외쳐도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묵살하고 일방적인 정책을 강행했다"며 "소청과가 아무리 눈물을 흘리며 현실을 외쳐도 무성의한 대책으로 일관해 왔다"고 비판했다.
임 회장은 "소아청소년과전문의 자격을 가지고도 소아청소년과가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소아청소년과전문의가 20%에 달한다"며 "또 해결책은 의대정원 늘리거라고 잠꼬대를 할것인가? 소아를 비대면 진료도 가능하게 한다는 정신나간 소릴 할겐가? 당신들의 대책대로 달빛어린이병원을 백개로 늘리면 '급성폐쇄성후두염'환자를 살릴 수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결국 소아환자를 진료할 소청과 전문의를 의료현장으로 복귀시킬 수 있는 대책이 없이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질타다.
정부 소아의료 대책, 소청과 전문진료에 대한 '보상' 없어…의사가 소청과 떠나지 않을 대책 마련해야
복지부는 소아진료 공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월 22일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복지부의 소아의료 개선대책은 크게 ▲중증소아의료체계 확충 ▲소아진료 사각지대 해소 ▲적정 보상 등을 통한 의료인력 확보 등으로 나뉜다.
문제는 복지부의 대책이 소아진료를 하는 교수, 전공의, 개원의 등 '의사'에 대한 보상이 아닌 시설 및 인프라 확충 또는 의대 증원 등 기존 소청과 의사들을 궁지로 모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사후보상 제도의 경우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에서 일하는 의료진에 대한 보상이 아닌 병원에 대한 보상이 초점이며,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8곳에서 12곳으로 확충하는 대책도 의사에 대한 보상 방안은 없었다.
달빛어린이병원을 늘리는 정책도 내놨지만, 달빛어린이병원은 지난 6년간 소청과 의사 부족으로 소아 진료 경험이 많은 타과 의사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사실상 실패한 정책으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이번 소아의료 개선대책에는 의료인력에 대한 보상 확대 방안도 있다. 소아 입원진료 가산 확대가 그중 하나인데 기존에 8세 미만 30% 가산에서 1세 미만 50% 상향, 만1~8세 현행 유지하는 것이 골자다.
문제는 저출산으로 1세 미만 인구 자체가 상당히 적어 의료 현장에서 가산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기에는 무리가 있어 사실상 생색내기용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현택 회장은 "지금도 소청과 전문의가 부족해서 의사들이 소청과를 기피하는게 아니라 전세계 꼴찌 수준의 대우를 하다보니 병‧의원을 유지할 수가 없어서 소청과 의사들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미 기존의 소청과 전문의 중 이들이 간판을 내리고 요양병원에 취직 하거나, 통증 클리닉을 차리고 피부 미용으로 선회했다. 이번 정부의 태도로 이러한 추세는 가속화 될 것이며 소청과 의사가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설명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학회 보험이사인 노원을지대병원 은병욱 소아청소년과 교수 역시 현 정부의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의 방향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은 교수는 "우리나라는 결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부족하지 않다. 소청과 전문의는 많다"며 "문제는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소청과 전문의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개원가로 나가 소아 환자를 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결국 의료인력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 당장 종합병원에서 중증 응급 소아환자를 볼 소청과 전문의들을 붙들어 놓기 위해서는 경제적 유인만큼 강력한 것이 없는데 정부는 돈을 적게 쓰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만을 찾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은 교수는 "현재 소청과 병실이 적은 이유도 결국은 경제 논리다. 소아 환자 진료에 드는 비용과 시간은 성인 환자보다 더 많이 들지만, 수가가 낮아 병원 경영자 입장에서 소청과 병실은 늘리면 오히려 손해다. 그렇다 보니 병원마다 소청과 입원실을 줄이는 추세"라며 "소청과 환자가 발생해도 입원할 병상이 없고, 찬밥 취급을 받는 소청과 전문의가 없는 게 문제"라며 소청과 소생을 위해서는 결국 직접적인 투자가 중요함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