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소아진료 공백을 없애도록 지시하면서 정부가 각종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을 내놨지만, 그 대책이 단순히 소아진료 '시설 확충'에만 집중돼 있어 실제로 근무할 소아과 의사를 어떻게 구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공의들이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는 근본 원인에 대한 대책 없이 임시방편에 치중한 현 정부 대책에 의사 없는 '어린이병원'이 나올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마저 나왔다. 소아 일차의료를 책임지는 소아청소년과 의원들은 '소아청소년과' 간판을 내리기 위한 준비까지 한다고 하소연했다.
대학병원 시설 확대 초점 맞춘 소아의료 대책…'소방관 없는 소방서' 대책
7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올해 초 발표한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이어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질적인 인력대책은 빠진 채 정부의 정책이 병원과 센터 등 시설 확충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지부는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를 현재 10개소에서 4개소를 추가 지정하고, 야간과 휴일에도 소아 외래진료가 가능한 달빛어린이병원을 현재 37곳에서 100곳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8개에서 12개로 확충하고 지역에 24시간 소아전문 상담센터 시범사업도 운영하기로 했다.
전공의들이 소아분야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정책도 일부 포함됐지만, 상급종합병원 등에 대한 소아 전문의 배치기준 강화 및 소아진료 보상 확대 등 피상적인 내용만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아동병원협회 박양동 회장은 "정부 정책을 살펴보면 대학병원 등 대형 시설 확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소아청소년과뿐 아니라 소아 외과, 소아 신경외과, 소아 정형외과, 소아 비뇨기의학과, 소아암, 신생아 중환자 등 소아와 관련된 인력이 모두 부족한데 그에 대한 대책은 없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전공의들이 소아진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정책은 없고 시설만 늘리다 보니 중소병원 인력이 대형병원으로 블랙홀처럼 빠져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동병원 평균 인적자원 5.5명인데 대학병원들이 입원전담 전문의를 구하면서 평균 인적자원이 5.1명으로 떨어졌다. 소아과에서 한 명만 빠져도 인력이 20%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면 야간진료를 못하게 되고, 환자들은 대형병원으로 몰리게 돼 환자 대기가 더 길어져 피해를 본다. 하지만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한 대책은 현재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인력 대책 없이 무작정 소아전문진료센터를 세우고 달빛어린이병원을 늘린다는 계획에 대해 "마치 소방관 없는 소방서를 늘리는 것"과 같다는 비유도 나왔다. 실제로 대전에 설립된 어린이재활병원은 소아 재활의학과 의사를 구하지 못해 개원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졌다.
또 정부가 확대하겠다고 야심 차게 밝힌 달빛어린이병원 37곳 중 공휴일 야간진료가 가능한 곳은 단 5곳으로 13.5%, 토요일 야간진료가 가능한 곳은 전국에 9곳으로 24.3%, 일요일 야간진료가 가능한 곳은 5곳으로 13.5%에 불과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최근 정부에 달빛어린이병원 정채개선 건의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소아응급기준 고열 발생환자의 80% 이상을 아동병원에서 치료하는 상황에서 무늬만 달빛어린이병원이 된 현실에서 사업 목적과 업무 수행 전면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동병원협회 이홍준 정책이사는 "지속적인 전문의 배출 없이는 입원전담 전문의 등 상급병원으로의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 휴일이나 야간시간때의 경우 어린이 환자를 진료할 소아청소년 의료기관의 폐업이 속출하면서 진료시스템 붕괴가 불 보듯 뻔하게 될 것"이라며 "진료체계 회복과 붕괴를 사전에 예방하려면 전공의 양성 계획을 조속히 세워 실천해 달라"고 주문했다.
동네 의원 죽이는 대책뿐, 소아과 전공의 지원 확대할 방법도 없어…백기 든 소아과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이 이처럼 대학병원 시설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지역에서 소아응급환자들을 돌보는 데 앞장서 온 동네의원, 일차의료기관들의 분노도 커지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이제 정부 정책에 어떠한 기대도 없다"며 "현재 정부가 구상하는 정책은 소아과를 죽이는 정책이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서울대병원에 가서 일반 재정을 동원해서라도 소아과를 살리라고 했는데, 복지부에서 발표한 대책은 일차 의료기관을 죽이는 대책뿐이었다"고 비판했다.
임 회장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정원을 유지할 가능성이 없다. 전공의들이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하려면 소아과 의사로서 살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그런 데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소청과는 10년 간 유일하게 진료비가 줄어든 과로 5년 간 동네 병의원 662곳이 폐업했다. 이에 소청과의사회는 오래 전부터 국가 재정을 투입해 진료비를 올려 일차의료기관을 살려야 한다고 요청해왔다.
임 회장은 "소청과 회원들과 의견 수렴을 통해 소청과 폐과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오는 3월 29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소청과 간판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며 "소청과 의사들이 먹고 살기 위해 대대적인 업종 전환을 하려 한다"며 예고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역시 현 정부 대책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학회는 성명서를 통해 "재정을 투입해 병원 내 전문의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고 처우를 개선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소아에 대한 호감과 사명감만으로 소청과 전공의로 지원해 힘든 수련 과정을 버티며 종합병원의 필수·중증의료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1차 진료의 안정성과 종합병원의 전문의 일자리 증가와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회는 "1차 진료의 회복을 위해 대량진료가 아닌 연령 가산과 관리, 중재, 상담료 산정을 통한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저평가된 1차 진료 수가의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계 관계자는 "지난해 가천대길병원이 의료인력 부족으로 입원진료를 일시 중단했다. 당시 정부는 인력 지원책이 아닌 상급종병 탈락이라는 패널티로 병원을 압박했고, 병원이 울며겨자먹기로 입원진료를 재개했다"며 "이러한 정부의 태도가 이번 소아의료 지원대책에도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운영되는 소아의료 체계가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근본 해결책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