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의료기사법 개정안의 국회 법안소위 처리가 불발된 배경에는 단순한 직역 간 이해충돌을 넘어, ‘처방’이라는 용어를 의료기사 업무수행 기준에 넣는 것이 현행 의료법 체계와 맞는지에 대한 법리적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 밖 의료기사 업무 수행의 근거로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을 제시하면서도, 이를 기존 ‘지도’ 개념의 하위 유형으로 설명해 야당 의원들로부터 “그럼 왜 굳이 처방이라는 표현을 넣느냐”는 비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복지부는 의료기사법 개정이 방문재활 등 통합돌봄 서비스 확대와 맞물려 있으며, 관련 통합돌봄 법안 심의를 위해서도 의료기사법 개정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공개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 5월 19일 열린 법안소위에서는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심사가 진행됐지만 최종 의결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날 논의된 법안은 남인순·최보윤 의원안과 한지아 의원안이다. 남인순·최보윤 의원안은 의료기사 정의 규정의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도 아래’를 ‘지도 또는 처방·의뢰에 따라’로 바꾸는 내용을 담았다. 한지아 의원안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원격지도 근거를 마련해 의료기사가 의료기관 밖에서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복지부는 두 법안을 토대로 정부 수정대안을 제시했다. 수정안은 의료기사 정의 조항에서는 기존 ‘지도’ 문구를 유지하되, 업무 수행 조항에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다’는 내용을 넣는 방식이었다.
또한 의료기사는 원칙적으로 소속 의료기관 안에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면서도, ‘다른 법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의료기관 밖 업무 수행을 허용하도록 했다. 이 경우에도 소속 의료기관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을 따르도록 하고, 처방한 의사 또는 치과의사는 유무선 통신·화상통신·컴퓨터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업무 수행 적정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복지부는 환자 안전 우려를 고려해 의사 또는 치과의사가 처방할 때 환자를 대면 진찰해야 하며, 의료기관 밖에서 지속적 치료·관리 필요성을 판단하도록 했다. 의료기사에게는 업무 내용 기록·보존, 환자 상태 변화나 이상반응 발생 시 의사에게 보고, 위급 상황 발생 또는 우려 시 응급의료기관 이송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하는 준수사항도 부과했다.
복지부 “처방도 지도 방식”…김미애 의원 “하위 개념이면 왜 처방 넣나”
그러나 법안소위에서는 이 같은 수정안이 오히려 ‘지도’와 ‘처방’의 관계를 더 불명확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김미애 법안소위원장은 복지부가 ‘처방’을 ‘지도의 하위 개념’으로 설명한 점을 문제 삼았다. 김 위원장은 복지부에 “지도의 하위 개념으로 처방을 넣는다고 설명했다”며 “하위 개념이면 지도 또는 처방이라고 해도 되지 않느냐. 구태여 이견이 많은데 왜 처방의 개념을 넣느냐”고 지적했다.
이는 복지부 수정안의 핵심 논리를 정면으로 되묻는 대목이다. 복지부는 의료계 반발을 고려해 정의 조항에서는 ‘처방·의뢰’를 제외하고 ‘지도’를 유지했지만, 실제 업무 수행 조항에는 ‘처방’을 남겼다. 그러나 야당 위원들은 이 같은 절충안이 ‘지도’와 ‘처방’의 개념상 차이를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법 체계상 혼란을 키운다고 본 것이다.
김 위원장은 또 “처방할 때 환자를 대면해 진찰해야 한다고 했는데, 말로만 처방하느냐. 처방전을 교부할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이형훈 복지부 2차관은 “대상자 환자의 진료기록부에 처방을 하고, 그에 따라 슬립 또는 지시서에 따라 의료기사가 환자를 방문해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이에 “그러니까 무슨 법을 그렇게 만들어야 되느냐”고 재차 반박했다. 의료기관 내에서 이미 의사가 진료기록부에 치료 내용을 남기고, 의료기사에게는 지시서나 슬립 형태로 전달되는 구조가 있는데, 이를 굳이 ‘처방’이라는 표현으로 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느냐는 취지다.
“처방은 환자에게, 지도는 의료기사에게”…의료현장 구조와도 충돌
서명옥 의원도 의료기관 밖 의료기사 업무 수행 근거를 ‘처방’으로 규정하는 것은 현행 의료현장의 업무 구조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처방은 의사가 환자에게 내리는 것”이라며 “의사가 의료기사에게 내리는 게 처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료기관 내에서는 의사가 환자를 진찰한 뒤 진료기록부에 물리치료 내용을 기재하고, 이 내용이 물리치료사에게 지시서나 슬립 형태로 전달된다. 즉 처방은 환자에게 내려지는 의학적 판단이고, 의료기사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의사의 지시·지도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책임 소재 문제도 법안 처리의 또 다른 걸림돌이 됐다. 안상훈 의원은 의료기관 밖에서 의료기사가 업무를 수행하다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의사는 ‘환자 상태를 몰랐다’, 의료기사는 ‘처방대로 했고 이상 상황인 줄 몰랐다’고 주장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서 의원은 의료기관 밖에서 업무가 이뤄지더라도 이 같은 기본 체계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봤다. 복지부가 원외 업무 수행을 위해 반드시 ‘처방’ 개념을 법에 넣어야 하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의사의 진료기록과 의료기사에 대한 지시·감독 체계로도 업무 수행 구조를 설명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의사·의료기사 책임소재 우려도 제기…여당은 “원외 수행 미룰 수 없는 과제”
책임 소재 문제도 법안 처리의 또 다른 걸림돌이 됐다. 의료기관 밖에서 의료기사가 업무를 수행하다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의사와 의료기사 간 책임이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안상훈 의원은 의료사고 발생 상황을 가정하며, 의사는 “환자 상태를 몰랐다”고 하고 의료기사는 “처방대로 시행했고 이상 상황인 줄 몰랐다”고 주장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기존 의료체계에서는 의사가 포괄적으로 지도·감독 책임을 지는 구조였지만, 정부 수정안처럼 ‘처방’을 중심으로 의료기관 밖 업무를 허용할 경우 환자 입장에서는 책임 주체가 불명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의료기사에게 업무 내용 기록·보존, 환자 상태 변화나 이상반응 발생 시 의사 보고, 위급 상황 발생 또는 우려 시 응급의료기관 이송 등 준수사항을 부과해 환자 안전과 책임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안 의원은 이 같은 장치만으로는 의사의 지도·감독 책임이 명확히 담보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여당 의원들은 통합돌봄과 방문재활 수요를 고려하면 의료기관 밖 의료기사 업무 수행 근거 마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남인순 의원은 정부 수정안이 의료계의 단독개원 우려와 환자 안전 우려를 상당 부분 반영했다고 평가했다. 김선민 의원도 이번 법안이 기존에 제공되던 서비스를 더 위험하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만 제공되지 못했던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특히 ‘처방’은 의료기사 업무 내용을 객관화하고 구체화하는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김윤 의원은 의료기관 내에서도 의사가 모든 의료기사 업무를 직접 옆에서 감독하는 것은 아니며, 일반적 지도·감독과 구체적 지시가 병존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의료기관 밖에서도 처방에 따른 일반적 지도·감독과 필요 시 원격 확인이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복지부 “의료기사법 개정돼야 통합돌봄법 심의 원활”
그러나 야당 위원들은 정부가 통합돌봄 서비스 확대 필요성을 앞세워 의료기사법의 법 체계 정합성 문제를 충분히 정리하지 못한 채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봤다.
실제 회의에서 남인순 의원이 정부 수정안의 ‘다른 법령으로 정하는 경우’가 방문재활을 가능하게 하는 통합돌봄법 개정안을 의미하는지 묻자, 이형훈 2차관은 “그렇다. 이개호 의원이 발의한 법이 있다”고 답했다.
이어 남 의원이 의료기사법 개정과 통합돌봄법 개정이 연계돼야 가능한 것으로 해석하면 되는지 묻자, 이 차관은 “의료기사법의 개정이 있어야 그 법의 심의가 더 원활하고 전제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이 법이 먼저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의료기사법 개정안은 단순히 의료기사 업무 수행 기준을 현실화하는 법안이라기보다, 통합돌봄 체계 안에서 방문재활 등 의료기관 밖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선행 입법 성격을 가진 셈이다.
문제는 통합돌봄 확대라는 정책적 필요성과 별개로, 의료기사법 안에서 ‘처방’이라는 용어를 어떤 법적 의미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정리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처방의 상대방은 환자인지, 의료기사인지, 처방은 지도의 하위 개념인지, 아니면 별개의 업무 수행 근거인지에 대한 해석이 소위 논의 과정에서도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특히 복지부는 의료계와 충분히 협의했다고 설명했지만, 회의 막판 김미애 위원장은 “직역 간 조정이 어느 정도 된 것으로 알고 법안 심사를 했는데, 막상 보니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여당 의원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고, 의료기사법 개정안은 결국 계속심사로 남게 됐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논의가 통합돌봄이라는 정책 목표를 이유로 기존 의료법 체계의 핵심 개념인 ‘지도·감독’과 ‘처방’의 경계를 흐릴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통합돌봄 추진 측에서는 의료기관 밖 재활·돌봄 수요가 이미 커지고 있는 만큼, 의료기사의 방문서비스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향후 재논의에서는 단순히 ‘처방’ 표현을 유지할지 삭제할지를 넘어, 의료기관 밖 의료기사 업무 수행 시 의사의 지도·감독 책임을 어떤 방식으로 법에 남길 것인지, 처방과 지시·지도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통합돌봄법과 의료기사법의 연계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