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적정수가 논의를 위한 의정협상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는 25일 의정협상에서 수가 정상화를 주제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협은 여기서 진찰료 인상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협 최대집 회장은 회원과의 간담회 등에서 진찰료 인상 방안으로 초·재진료 통합과 처방료 부활을 내세웠다. 그 다음 보건복지부에 수가 인상 5개년 계획을 세워줄 것을 주문했다.
진찰료는 의원급 의료기관 건강보험 급여비 비중의 절반 차지하는 중요한 항목이다. 진찰료의 건강보험 규모는 연간 약8조5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진찰료의 원가보전율은 75%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진찰료 개편을 위한 3차 상대가치점수 개편 준비작업도 시작됐다.
의원급 의료기관, 건강보험 급여비 중 진찰료 49%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진찰료는 의사의 시진, 촉진, 문진 등의 행위를 보상하는 비용이며 초진 진찰료와 재진 진찰료로 구분한다.
진찰료는 기본진찰료와 외래관리료로 구분돼 있다. 이 중 기본진찰료는 병원관리, 진찰권 발급 등을 말한다. 외래관리료는 외래환자 처방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의약분업이 시행된 이후에 원외처방료가 사라지면서 진찰료가 기본진찰료와 외래관리료로 이원화됐다. 이 과정에서 처방료가 외래관리료에 흡수됐다.
진찰료는 상대가치점수에 매년 유형별 수가계약을 통한 환산지수, 종별 가산율 등 세 가지 항목을 곱해서 환산한다. 현재 의원급 의료기관의 초진진찰료 상대가치점수는 188.11점(기본진찰료 155.57점, 외래관리료 32.54점)이고 재진진찰료 상대가치 점수는 134.47점(기본진찰료 98.03점, 외래관리료 36.44점)이다. 2018년 의원급 의료기관의 환산지수는 81.4점(2019년은 수가인상률 2.7%를 곱한 83.6점)이다. 여기에 의원급 종별가산율 15%를 곱하면 최종 금액이 나온다. 올해 초진진찰료는 1만5310원이고 재진진찰료는 1만950원이다.
심평원의 2017년 진료비 통계지표에 따르면, 의원의 건강보험 급여비 중 진찰료 비중은 49.09%를 차지했다. 반면 상급종합병원의 진찰료 비중은 9.65%, 종합병원 11.66%, 병원 7.67% 등으로 병원급 의료기관의 진찰료 비중은 10% 전후에 불과했다.
최대집 회장 "초진료와 재진료 통합, 처방료 부활"
의협 최대집 회장은 지난 5일 '서울시의사회원과의 대화'에서 “9월 27일 의정대화 합의문을 작성할 당시 정부와 수가 정상화를 위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라며 “구체적인 수가정상화 논의는 10월 25일 협상이나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시작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매년 유형별 환산지수 계약만으로는 수가 인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별도의 방법으로 진찰료 인상과 처방료 부활을 들었다.
그는 “초진료와 재진료를 초진료 수준으로 통합하면 소요 재원이 1조 7000억원이다. 이는 11%의 수가인상 효과가 있다”라며 “처방료를 부활하면 3일 처방 기준으로 3000원 정도의 처방료가 생길 수 있다. 처방료 예산도 1조 5000억원으로 추산됐다”고 했다. 두 가지를 현실화하면 사실상 3조 2000억원의 인상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최 회장은 수가 정상화의 3개년 계획, 5개년 계획 등을 세울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과거 2009년 초진료와 재진료 통합이 논의됐으나 진찰을 많이 하는 내과계 진료과와 그렇지 않은 외과계나 검사계열 진료과의 반대로 무산됐다.
또한 복지부는 2015년 프랑스와 독일 사례를 들어 초진료와 재진료 구분이 없는 통합시스템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화두를 제시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통합시스템을 바탕으로 하루 평균 30~40명의 환자를 평균 20분씩 진료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환자수에 따른 수익 변동이 크지 않으면서 일정 수익을 담보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외과계 의사회 관계자는 진찰료 인상에는 동의하지만 진료과 현실에 맞는 방안이 추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재진진찰료를 인상하면 단골 환자가 많고 약 처방을 많이 하는 내과계열에는 좋지만 외과계열에 큰 이득은 없다”라며 “진찰료 자체를 상향하고 외과계에서 이뤄지는 고도의 행위료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진찰료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추무진 집행부, 외래관리료 상향·진찰료 30% 인상 등 제시
진찰료 인상에 대한 논의는 의협 추무진 전 회장 집행부 때도 있었다. 저평가된 초진 외래관리료를 상향하고 진찰료 30%를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협 임익강 전 보험이사가 2015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에 펴낸 진찰료 적정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1단계 진찰료 인상방안으로 초진 외래관리료가 재진 외래관리료보다 낮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초진 환자가 재진 환자에 비해 의무기록의 작성과 검토 등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지만 현실은 반대(의원급 의료기관 기준 초진 외래관리료 32.54점, 재진 36.44점)이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의원급에 한정해 초진 외래관리료를 재진 수준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라며 “이 경우 의원의 초진 진찰료 상대가치점수는 2015년 기준 192.01점이 된다”고 했다.
의협 추무진 전 회장은 지난해 8월 9일 대통령의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발표가 나온 직후 진찰료 인상 방안으로 의원급 진찰료 30% 인상, 의원급 종별가산율 30%로 상향 조정할 것을 내세웠다. 종별 가산율은 40년 동안 상급종합병원 30%, 종합병원 25%, 병원 20%, 의원 15% 등으로 고정됐다.
한편, 이와 별도로 이달 17일 진찰료와 입원료를 중심으로 한 3차 상대가치점수 개편 논의가 시작됐다. 의료계와 정부로 구성된 제1차 상대가치운영기획단 회의가 열렸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의료계에 회계조사표 검토를 요청했다.
보사연은 “상대가치점수 개편은 현행 건강보험 수가체계에서 의료행위의 적정 상대가치점수를 산정하기 위해 실시한다”라며 “요양기관의 경영수지분석을 통해 상대가치 적정성을 재검토하고,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의협 연준흠 보험이사는 “2차 상대가치점수 개편 당시 표본자료가 부족해 적정수가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이번에는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도록 협조를 요청해왔다”고 했다.
진찰료, 일본은 2배 미국은 10배 등 선진국 수준으로 인상해야
의료계는 나아가 진찰료를 선진국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진찰료가 낮게 책정돼 '3분 진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진찰료는 우리나라의 2배, 미국은 10배 이상에 이른다.
지난해 의협 건강보험재정운영개선 특별위원회 보고서를 작성한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홍승봉 교수는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에서 진료한 경험을 예로 들었다. 당시 진찰 과정을 보면 환자와 보호자들을 앉게 한 후에 의사는 자기 의자에 앉는다. 환자가 어디서 왔는지와 환자와 함께 온 사람은 어떤 관계인지 묻는다. 이 병원을 찾아온 이유는 무엇인지도 확인한다.
의사는 환자, 보호자와 충분한 대화를 한 후에 기본적인 신체검사를 포함한 진찰을 상세하게 한다. 의사는 문진과 검사 결과를 차트에 정리한 후 환자에게 상세하게 설명하고 의심되는 질환을 말한다. 환자와 보호자는 의사에게 질환 외에도 주의해야 할 식사나 습관을 묻는다. 환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까지 의사와 대화를 나누며, 의사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더 이상 질문이 없을 때까지 물어본다.
이런 진찰을 반영한 결과 일본의 의원급 의료기관 진찰료는 2만 9596원, 미국은 5만 2173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의 진찰료는 10분에 5만 2173원, 20분 8만 9075원, 30분 12만 8951원, 45분 19만 6809원, 60분 24만 6862원 등으로 시간에 따라 달랐다.
보고서는 “한국에선 10분 진료할 때와 50분 진료할 때의 진찰료는 같다”라며 “우리나라도 진찰 시간이 길수록 진찰료를 높여야 진료의 질과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 관계자는 “진찰료 인상을 논의하기에 앞서 진료과별 이해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적정수가 방안과 이미 진찰료 개편을 포함한 상대가치점수 개편은 별도로 구분해서 논의해야 한다”라며 “의협이 정부에 수가 정상화 방안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할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