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대한의사협회가 최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과 관련, 재발 방지를 위해선 의사수 증원이 아닌 열악한 기피과들의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8일 입장문을 통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에 대한 입장을 표했다. 해당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지난달 31일 이후 8일만이다.
일각에선 간호협회와 시민단체 등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사수 증원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의협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었다.
이에 대해 의협은 “고인과 유가족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존중하고 애도해야 하는 시기에 어지럽게 확산되는 논란을 심화시키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이번 사건의 본질보다는 고인을 정치적 이해관계나 특정 단체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행태를 배제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협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사건을 건전치 못한 의도로 왜곡하며 변질된 주장을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입장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개선 방향을 제안한다”고 했다.
문제 핵심은 필수과 전문의 부족...의사수 증원은 '오답'
의협은 문제의 핵심은 전체 의사 수 부족이 아니라 필수분야, 필수과 전문의 부족이라며 의사 수 증원은 오답이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무작정 의사수를 증원하더라도 왜곡된 환경에서는 그만큼 미용분야 등 비급여∙저위험 분야의 의사와 해당 의료기관만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며 “반면 필수 진료과목 전공의 정원 미달 사태는 매년 반복되고 있고, 그마저도 전문의 취득 후 타과로 진료과를 변경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증 진료과의 열악한 여건에서도 뇌졸중∙위암 등 급성기 질환 사망률은 OECD 평균보다 크게 밑돈다. 낮은 의료비에도 시계 최고 수준 의료 지표를 유지 중”이라며 “중증 질환 분야 전문의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이런 성과를 낸 것은 우리나라 의료진의 실력과 헌신을 반증하는 것이지 당연한 결과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의협은 이 같은 특정과 기피현상을 해결 하기 위해 ▲획기적 처우개선책 통한 기피과 인식 개선 및 동기 부여 ▲의료분쟁특례법, 분쟁비용 국고 지원 및 필수의료지원 특별법 제정 ▲뇌혈관 수술 등 해당 진료수가 현실화 ▲필수의료 인력 수련비용 국가 보장 ▲신경외과 전공의 우선 배정 등 중증 진료 분야 인력 확보 ▲권역, 지역별 민간병원과 연계한 필수의료 민관협력 ▲중증 필수 의료 분야 지원 위한 재원 마련 ▲중증 필수의료 국가책임제 ▲지역 필수의료 육성 ▲필수의료 우선순위, 수가정상화 등 독립 협의체 운영 등 10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획기적 처우 개선과 의료분쟁 특례법 제정...뇌혈관 수술 수가 현실화
의협은 먼저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제도 개선을 통해 필수의료 분야에 적정한 수가개선과 진료 여건을 제공함으로써 향후 전공의들이 지원할 수 있는 유인 요소와 기전을 마련해야 한다”며 “필수의료 분야 의사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보상체계 형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의료행위에 근본적으로 내포된 사고 발생 가능성과,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나는 의료사고에 대해 일정 부분의 면책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환자진료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의료분쟁 특례법이 마련돼야 한다. 아울러 필수의료 국가책임제 시행과 함께 필수의료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협은 또 “현자 뇌혈관 수술에 대한 비용은 응급, 난이도, 위험도를 고려하면 낮게 책정돼 있어 우선 이 분야에 대한 수가 조정이 시급하다”며 “실제 우리나라 의료수가는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뇌질환 관련 수술비용은 일본에 비해 대부분 20% 내외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동맥 박리수술도 미국6335만9385원에 비해 우리나라는 896만8140원으로 14.1%에 불과하다”고 했다.
필수의료 인력양성 정부 지원...권역∙지역별 필수의료 민관협력
의협은 필수의료 인력 양성과 관련해서는 “정부 재원의 지원을 통해 공익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단기적으론 정부와 수련병원이 절반씩 부담하는 것으로 시작해 장기적으론 정부가 100% 부담해야 한다. 실제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캐나다 등도 의사양성 비용을 국가와 사회가 분담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사건으로 열악한 현실이 조명된 신경외과에 대해선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 당 신경외과 의사수는 4.7명으로 OECD 평균 1.3명에 비해 높지만, 개두술 등 뇌혈관외과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는 소수”라며 “정원에 미달된 과목의 전공의 정원이 발생할 경우, 신경외과 등 필수 진료과 분야에 미달된 정원만큼의 전공의를 우선 배정해야 한다”고 했다.
의협은 또 “국공립, 민간병원을 권역별로 네트워킹해 관련 전문의와 종사자를 그룹별로 분류하고, 권역∙지역별로 야간 응급진료와 온콜제도를 체계적으로 운영해 온콜의 빈도의 대기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어 “권역∙지역별로 필수의료에 대한 처치와 진료를 담당하는 전담의료기관을 지정하고, 필수의료전달체계 민관합동 구축과 환자 이송체계 개편에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증필수의료 국가책임제 시행...필수의료 독립 협의체 신설
의협은 중증 필수의료 분야 지원을 위한 재원 마련과 국가책임제 시행 필요성도 주장했다.
의협은 “건보재정은 상대가치 개편이나 보험수가 등 범위가 제한되고 영역의 한계가 있다”며 “별도 기금 및 특별예산 편성 등 건강보험 영역 외에 다양한 예산과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필수의료는 적절한 처치가 지연될 경우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영향이 크고, 균형적 공급이 어려워 국가가 직접 개입해야 할 필요성이 큰 의료영역”이라며 “권역∙지역별 응급의료시스템과 같이 중증필수 의료기관을 지정, 국공립 의료기관의 기능을 이에 맞게 개편 운영하고, 치매국가책임제처럼 중증필수의료 국가책임제를 시행하고 국고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의협은 또 “뇌, 심혈관계 응급치료의 경우 골든타임이 중요하므로 지역 필수의료 육성이 기본적으로 선결돼야 한다”며 “응급의료기관의 환자 및 보호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본인 요구에 의한 경우 본인부담 인상, 급여 제한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필수의료 우선순위, 수가정상화 등 독립된 협의체가 필요하다”며 “의료 전문가가 50% 이상 참여하는 독립된 협의체를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의협은 끝으로 “정부와 국회는 이런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다급하게 각종 회의, 정책간담회, 토론회 등을 열었지만 대부분이 일시적 미봉책을 발표하는 정도로 그쳤다”며 “의협이 제안한 의제들이 즉시 시행되고 증장기 과제로 별도 추진해야 할 부분은 중간 동력을 잃지 않게 정부와 국회, 의료계가 모두 굳은 의지를 발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