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저장공간 부족을 이유로 과거 의료영상 데이터를 삭제하고, 삭제 기준과 데이터 표준화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실이 드러나며 국회의 질타를 받았다. 의료 AI 산업을 지원할 핵심 공공기관이 정작 원천데이터를 보존하고 활용 가능한 형태로 제공하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심평원 국정감사에서 심평원의 의료영상 등 비정형 데이터의 보존·관리와 산업계 활용 실적이 도마에 올랐다.
“갑자기 늘어난 게 아니라 과거 자료 삭제…기준도 없다니”
질의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요즘 AI 시대라고 말하지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데이터 싸움의 시대”라며 “심평원이야말로 의료영상 데이터를 제대로 수집하고 분류·저장할 수 있는 최적의 기관”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심평원에서 제출받은 의료영상 데이터 관리 현황을 확인한 결과 권 의원은 “깜짝 놀랐다”며 연도별 보유량 차이를 추궁했다.
질의에서 제시된 자료에 따르면 2021~2024년 의료영상 보유량은 연도별 약 500만~1300만건 수준이었지만, 2025년은 약 2억3000만건, 올해는 9월까지만 약 2억건에 달했다.
심평원장은 처음에는 촬영 건수 증가와 건강검진 데이터 활용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에 권 의원은 “갑자기 폭증한 게 아니다. 2024년도 이전에 있던 의료영상을 삭제해서 그렇다”고 반박했다.
이어 권 의원은 최근 연도와 과거의 수집 규모가 비슷했다고 가정하면 과거 자료의 약 90%를 삭제한 셈이라고 추산하며 “데이터 시대에 원천데이터를 삭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삭제 기준도 문제로 지목됐다. 권 의원은 “삭제할 때 어떤 기준으로 삭제하느냐고 물었더니 기준이 없다고 답이 왔다”며 심평원에 해명을 요구했다.
“표준화는 1~3%, 기업 활용은 0건…자료 갖고도 쓸 수 없게 해”
보유한 데이터를 실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비하는 작업 역시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권 의원은 "제시된 자료상 데이터 표준화 비율이 1~3%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데이터 표준화가 안 되면 사용하기가 어렵다. 사실 거의 사용을 못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감사원 감사 결과를 인용해 데이터 실증랩 구축 사업에 3년간 20억원을 투입했지만, 2021년 이후 외부 AI 개발 기업의 활용 실적과 2021~2025년 수요조사 실적이 모두 0건이라고 밝혔다.
의원은 “왜 심평원 자료를 기업들이 쓰지 않는지 원인 파악이 필요하다”며 “심평원은 자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표준화된 자료를 만들지 않았다. 매우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질타했다.
특히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의료데이터에 자유롭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병원마다 데이터 심의위원회와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운영 방식이 달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평원이 이런 불편을 해소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권 의원은 "개선책으로 저장공간 확대를 위한 예산 확보, 불가피한 삭제에 대비한 명확한 기준 마련, 데이터 표준화와 활용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기준이나 작업 지시가 제대로 없는 것 같다”며 “의료데이터 활용에 많은 불편과 민원이 있는 현실을 빨리 타파해야 한다. 그 선두에 심평원이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의 말미에는 “데이터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재산을 다 없앤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도 나왔다.
심평원장 “내부 기준 정비…AI 학습용 데이터 표준화하겠다”
홍승권 심평원장은 저장공간 문제와 내부 관리기준의 미비를 인정하며 개선하겠다고 답했다.
홍 원장은 “내부 기준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다시 정비하겠다”며 데이터 표준화 사업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이맘때 표준화 사업 진행 상황을 다시 보고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이어 “산업계에서 AI 학습에 쓸 수 있는 양질의 데이터를 표준화하겠다”며 내부 관리기준을 마련하고 데이터를 보존·활용할 수 있는 개방형 데이터로 정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