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17일 시작된 서울의대 교수 집단휴진과 더불어 18일 대한의사협회 휴진까지 가시화한 가운데, 향후 정부와 의료계의 휴진 사태 출구전략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8일 메디게이트뉴스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이번 집단휴진은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즉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점쳐진다는 뜻이다. 이는 정부가 당장 의료계 요구안을 전부 수용하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인데, 정부는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대화협의체 신설 등 중재안 마련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휴진 목적, 의협은 '의대증원 재논의'…의대교수는 '전공의 복귀'
우선 의협 입장에서 보면 이번 집단휴진은 사실상 배수의 진이다. 더 이상 돌아갈 길을 만들지 않고 정부와의 정면 승부를 자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사태의 핵심은 집단휴진 재검토와 관련한 의협의 대정부 요구안이 됐다.
이에 의협은 16일 요구안을 발표했는데 그동안 전공의들이 핵심으로 내세웠던 의대증원 재논의,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쟁점 사안 수정과 더불어 의대 교수들이 주장하고 있는 전공의와 의대생 행정명령 소급 취소, 총 세 가지가 내걸렸다. 요구안에 의대증원 재논의가 포함되면서 사실상 최대 수위의 강경한 기조로 발표된 셈이다.
이를 두고 강경한 기조의 요구안 발표가 의료계 내부 민심 다지기를 위한 의도가 숨어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공의를 포함해 의대증원 재논의라는 대전제가 흔들리면 안 된다는 강경 여론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앞서 요구안 발표 과정에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의협을 공개 저격하는 일도 있었다.
실제로 의료계는 정부와의 파워게임 이외 내부적으로도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이는 직능별로 휴진 목적이 다르기 때문인데 의협은 궁극적 목적이 '의대증원 재논의'인데 반해, 의대교수들은 '전공의 복귀'가 우선순위에 있다.
의협도 의대교수들 제안처럼 일부 타협하는 방향으로?
의협과 교수들의 입장이 엇갈리는 이유는 의대교수들이 무기한 집단휴진이 장기화될 경우 매우 부담스러운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수련병원에 소속돼 있는 신분이라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마냥 휴진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의대교수들이 밝힌 집단휴진 재검토 요구안엔 '의대증원 원점재논의'가 빠져있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 타협을 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4일 서울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전공의 행정처분 취소와 의정 상설협의체 구성이 휴진 재검토 요구 조건이라고 공식화했다. 17일 기자회견에선 '2025학년도 의대정원의 재조정과 2026학년도 이후 정원의 재논의'가 재차 포함되긴 했지만 의협 측 요구안과는 차이가 있다.
이 같은 상황들을 종합하면, 의협이 아무리 휴진 철회와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의대교수들과 별개 노선을 선택할 경우 휴진 파급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의대교수들이 제안한 현실적 노선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의대교수를 제외한 개원가 휴진만으론 참여율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입장은 또 다르다. 이들은 각각 유급과 수련 포기 등을 걸고 있는 상태라 의대증원 원점재논의라는 대정부 요구사항이 흔들리면 이번 집단휴진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견해가 많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난 13일 '대정부 요구안을 다시 논의해 발표하겠다'는 최안나 의협 대변인의 발언 이후 박단 위원장이 즉각 의협을 저격한 것이 납득 가능하다.
즉 의협은 의대증원 원점재논의가 반드시 수용돼야 한다는 강경론과 현실적 중재안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우선 강하게 대정부 요구안이 제시돼야 18일 휴진 이후 협상을 위한 중재안을 마련하는 등의 시나리오도 마련될 여지가 있는 것"이라며 "의협을 중심으로 한 집단휴진으로 의견이 모인 만큼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의협과 서울의대 교수비대위의 대정부 요구안의 우선순위가 달라 이 부분이 향후 어떻게 사태해결에 영향을 미칠 것인진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셈법 복잡, 수용 가능한 요구안부터 차례로 제시할까?
보건복지부도 셈법이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의료계 집단 휴진이 장기화될 경우 정부 입장에서도 갈등 해결을 조속히 하지 못했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18일 휴진 직후 곧바로 의협 측 요구안을 수용하는 것도 정부 입장에서 모양새가 좋지 않다. 자칫 의료계 휴진에 굴복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 내부적으로도 휴진 철회 조율 시기를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선 복지부가 의협이 제시한 요구사항 중 받아들이기 쉬운 '전공의 행정처분 취소'부터 시작해 의협과 '일대일 대화협의체'를 만드는 선에서 우선 휴진 철회를 요청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다만 자칫 요구안과 관련해 의정간 빠른 의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을 시 휴진 상황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협 관계자는 "정부가 태도변화를 보이는 제스처를 먼저 선행한 상태에서 대화협의체 신설 등을 제시해줘야 우리도 휴진 재검토를 받을 명분이 생긴다"며 "2025학년도 의대정원 조정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대화협의체 구성 등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놓고 출구전략을 만들기 위해 고심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