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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공공의대·의약분업…의료시장에 정부 관여가 정말 필요한가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⑦ 김장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장·울산의대 교수

    기사입력시간 2021-12-05 09:15
    최종업데이트 2021-12-05 09:15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내년 3월 9일로 다가왔습니다. 각 후보캠프들이 여러 단체들로부터 정책 제안을 받아 대선 공약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대통령 후보라면 반드시 짚어야 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agenda)를 사전에 심도 있게 살펴보고 이를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의료계 전현직 리더들의 릴레이 칼럼을 게재합니다. 의료계가 각종 악법에 대한 방어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꼭 필요한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의료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①이철호 전 의협 의장 "일차의원과 중소병원 특별법·의료전달체계 정립·수가현실화"
    ②이로운 의협 홍보이사 "의료분쟁처리 특례법 제정"
    ③박상준 의협 부의장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응급의료시스템 정비"
    ④최운창 전남의사회장 "지역의료 살리기"
    ⑤안치석 전 충북의사회장 "서울과 지역 의료격차 최소화"
    ⑥주신구 병원의사협의회장 "보건의료 문제는 의사들과 먼저 협의"
    ⑦김장한 전국의대교수협의회장 "의료체계 정부 관여 줄이고 자유도 높이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2022년 대선에서 여야 후보자들은 복지 국가를 만들기 위한 공약을 할 것이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대선 후보들은 유권자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지금보다 더 많이, 그리고 저렴하게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할 것이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예산 추계를 제시하면서 공약 실천 가능성도 제시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하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거나, 보험료 인상을 하지 않고도 흑자 유지가 가능하다 등이다. 하지만 표를 얻기 위한 퍼주기식 공약과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정책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의료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복지 관련 공약은 관련 당사자들이 인정할만한 보편 원리에 기초하고 있어야 한다. 정의는 공평 배분이고, 그 전제는 유한한 자원이다. 인간의 욕망과 자원 제약은 저울의 양 끝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현재 보험 급여 항목이 아닌 비싼 의료 분야를 급여 항목에 넣어서 싸게 제공하겠다. 의료비를 낮추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넓히겠다’라는 공약은 한쪽 저울만을 가리키는 것이다. 

    공약은 유한한 자원 문제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보건의료체계에서 효율적 자원 분배를 막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먼저 진단하고, 그 문제에 대한 교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 다음에 의료 공급을 확대와 재정 확충 공약이 나와야 지속 가능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는 국민건강보험법으로 구성된 공적 보험제도로서 계약의 외형은 가지고 있지만, 의료기관은 당연히 건강보험 급여를 제공해야 하고(당연지정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질적으로 수가를 결정하고, 실사하고, 의료비를 지불하는 공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구조는 의료보험이 처음 시행되던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인데, 의료관리학자들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지탱하는 물러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1970년대 의료보험이 시작되던 시기 경상의료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이고 총액은 1000억원이었다. 못 사는 나라였고 의료비도 작았다. 하지만 현재는 어떠한가? 2020년 경상의료비는 GDP 대비 8.4%이고, 총액은 161조8000억원이다. 2020년에 사용한 요양급여비용은 87조원인데, 42개 상급종합병원이 15조 5000억원, 324개 종합병원이 14조 9000억원, 2만3246개 약국은 17조 8000억원, 3만1554개 의원은 16조 9000억원을 사용했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우선 약국보다도 영세한 의원급 의료기관 규모가 눈에 띄게 들어온다. 그리고 일차 의료기관과 상급 종합병원은 이미 대기업과 골목 상권만큼 차이가 있는 것이 보인다. 아마도 의료전달체계는 망가져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종합 병원들은 고가 검사를 통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내과계 의원은 고가의 검사 항목도 없고 약 조제 수입도 없다. 약국에는 조제료와 복약 지도비로 많은 의료비가 지급되지만, 그건 병원 앞 약국에 한정된 이야기이다, 골목 약국들은 다 없어졌고, 약값 리베이트는 아직도 성행한다. 산부인과 전문의는 분만을 포기하고, 비만, 미용 성형 분야로 몰려가고 있다. 

    2021 ‘공공의대’ 사건에서 의료계가 파업을 하고 의과대학생들이 휴학계를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은 말하기 쉽게 직역 이기심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일부분만을 본 것이다.

    의료에는 인기 전공과 비인기 전공이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 비인기 전공은 생명을 직접 다루는 그래서 정부의 수가 정책에 목을 매야 하는 필수 의료 분야이고, 인기 전공은 건강보험 급여 범위가 좁은 그래서 비급여 항목이 많은 전공이다. 그래서 무의촌이 생겨나는 것이다. 낙후된 지역 의료를 살리기는 것을 의료계가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의사가 그곳에 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의료계는 무의촌이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데, 정부는 낙후된 지역 의료 문제를 공공의대로 해결하겠다는 일차원 접근을 한다.

    경영난에 의원 또는 작은 병원들이 문을 닫으면서 만들어진 무의촌을 공공의대로 메우겠다는 정책을 내놓았고, 세상은 의료계 종사자들이 돈만 아는 사람들이라고 비난을 했다. 

    의료 시장은 지식이 편재된 불완전 시장이기 때문에, 의료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관여할 수 밖에 없다는 근거만으로 현재 의료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거대한 자원 배분 왜곡 현상을 막을 수 있을까? 이렇게 거대한 의료 시장을 몇 가지 이론과 제도로 운용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이런 상황이라면, 복지 국가로 가기 위한 정부의 의료제도 관여는 과연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까?

    2022년 대통령 선거에 대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의 어젠다는 “의료 체계의 자유도를 높여야 한다”이다. 50년에 걸쳐 만들어진 건강보험 제도의 물길을 바꾸는 작업을 공약 한 가지 아이템으로 완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자유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어 갈 것이라는 희망을 볼 수 있다면 또 시장 내 종사자들이 납득할 정도의 원리로 자리잡게 된다면, 미래에는 의료 체계의 왜곡을 최소화하면서 효율적으로 국민 의료 복지 수준을 올릴 수 있을 것이며 지속가능한 보건 복지 정책의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의료계는 의료기관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국민건강보험법), 의약분업(약사법)의 문제점을 꾸준하게 제기했다. 물론 헌법적으로 합헌이어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지만, 의료 시장의 자유도를 떨어트린 대표 제도로 본다. 당연지정제를 당장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적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지정제를 제한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떨까? 의원급 의료기관, 건강보험에 이미 10년 이상 봉사한 사람들에 대해 선택 지정제를 인정하는 것은 어떨까? 혹시 그들이 무의촌에 개업하는 경우에는 재정을 지원하면 더욱 효과가 있지 않을까? 기존 의과대학을 평가해 정원을 늘리는 것은 어떤가? 굳이 공공의대여야 하는가? 의약 분업을 선택적으로 바꾸고, 전문의약품의 의원내 조제를 여부를 환자의 선택에 맡기는 것은 어떤가? 이 역시 당장 전면적으로 하기 어려우니, 특정 분야 의약품, 만성 질환 등에 적용하는 것은 어떨까? 의약 분업을 도입하면서 달성하고자 했던 정책적 목표는 과연 달성됐는가? 너무나 많은 재정 비용을 지출했으나 얻은 것은 보잘것 없다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이제 의료 시장에 대한 정부 관여가 정말 필요한 것이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2022년 대선 의료 정책 어젠다의 키워드는 ‘의료와 자유’여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