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가 인상이라는 ‘당근’을 제시하면서 의료계에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설득에 나섰지만 의료계의 정부 불신은 심각해 보인다. 앞서 정부는 2000년 의약분업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수가를 인상했다가 몇 차례에 걸쳐 수가를 내린 일이 있어서다.
2000년대 초반, 진찰료 인상했다 다시 인하
A원장이 떠올리는 2000년은 의약분업의 대가로 진찰료 수가를 초진 기준 9800원에서 1만2000원으로 인상한 일이 있었다. A원장은 2012년 한 매체에 기고한 글을 통해 “당시 의사들이 진찰료 인상으로 기뻐하는 사이에 정부는 갑자기 직권 명령으로 수가를 인하했다”고 밝혔다.
의약분업 이후 인상됐던 진찰료는 3년에 걸쳐 17.08% 인하됐다. A원장은 “정부는 2001년 초진 진찰료를 1만 1500원으로 내리고 2002년 또 다시 1만 1170원으로 인하했다”며 “2003년 1월 1만 500원으로 내리더니 3월에 또 한차례 9950원으로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들이 항의하자 정부가 다시 진찰료를 인상했지만 2000년 초진 진찰료 수준을 회복하는 데 10년 이상이 걸렸다”라며 “2000년에 1만2000원이던 초진 진찰료가 2010년에서야 겨우 1만2280원이었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물가 상승률은 37.64%였지만 초진 진찰료 인상률은 2.33%에 그쳤다.
의원 수익 급증...정부 재정 지출 통제 시작
정부는 의약분업 이후 의원의 수입이 늘면서 재정 절감을 위해 수가 인하 정책을 시작했다.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가 2004년 보건행정학회지에 발표한 '의약분업이 의원 및 약국 영업이익에 미친 영향' 논문에 따르면 의원은 1998년 1만6971개소에서 의약분업 이후인 2001년 2만1340개소로 25.7%늘었다.
의원 수입은 1998년 5조1000억원에서 2001년 7조2000억원으로 2조1000억원(증가율 42.2%)늘었다. 이중 외래 수입은 1998년 4억4000억원에서 2001년 6조1000억원으로 1조8000억원(40.3%) 늘었다. 입원 수입은 7000억원에서 1조1000억원으로 4000억원(53.5%)이 늘었다.
논문은 “의원의 수입 증가는 주로 기술료 보상에 따른 것이며 의원 대부분 순이익이 증가했다”라며 “그러나 2001년 이후에 추진된 정책 대부분은 ‘의료비의 억제 또는 보험 재정의 회복’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논문은 “2001년 7월부터 시행된 야간 가산율 시간 조정이나 차등수가제 등은 연간 2000억원 이상의 보험재정 절감을 가져온 것으로 밝혀졌다”라며 “이런 정책의 재정 절감 효과는 앞으로 시간을 두고 나타날 것이다”고 했다.
야간 가산율 적용은 야간 가산율이 적용되는 시간을 오후 6시에서 오후 8시로 바꾼 것을 말한다. 차등수가제는 의원에서 의사 1명이 하루 환자 75명 이상을 진찰하면 수가를 10~50% 깎는 제도다. 야간 가산율 적용은 2006년 원래 시간 오후 6시로 돌아왔고, 차등수가제는 2015년에서야 폐지됐다.
정부 못 믿는 의협, 협상 원하는 정부
의료계는 정부가 진찰료 등 수가 인상이라는 ‘당근’을 제시해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이동욱 사무총장은 “복지부가 연말까지 수가 인상안을 가져오겠다고 했다”라며 “모든 급여 항목의 수가 인상이 필요하며 단편적인 인상안은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수가 인상 계획이 분명히 있으며 의료계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비급여의 급여화를 하려면 의료계가 협상에 참여해서 어떤 부분이 급여화가 필요한지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라며 “이 과정에서 수가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분명히 보상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케어 자문단 관계자는 “의료계는 정책 시행 때마다 협상을 거부하거나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수가가 얼마나 낮은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라며 “정부 불신은 의료계 스스로가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코리아헬스케어콩그레스(KHC) 2017’에서 "예전에는 정부가 약속을 하고 지키지 않는 일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은 없다"라며 "의료계가 문재인 케어 정책을 무조건 반대하다 보면 정책을 수정할 기회를 놓치고, 정책이 그대로 시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