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병원, 환자 본인 건강보험증 자격 확인 의무화법
병원에 있다 보면 접수를 할 때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고 내원하는 환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지갑도 잘 들고 다니지 않는 요즘 사회 분위기에 그 빈도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아파서 병원에 온 환자 특성상 무작정 진료를 요구하면 서로 난감해진다. 환자는 주민등록번호를 적어 내며 본인이 맞다고 주장하고 언성을 높이기 일쑤다.
그럼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를 배려해 접수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아파서 겨우 병원에 왔다는데 돌려보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병원이 그렇게 환자 진료를 하고 진료비의 일부를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지급을 받았는데, 그가 ‘명의 도용자’로 부정수급을 받았다면 이 부정수급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명의를 도용한 사람이 잘못일까. 그를 진료해준 병원의 책임일까.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병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것을 병원의 책임으로 명확하게 규정했다. 그는 지난 10월 13일 발의한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통해 ‘병원은 건강보험증 등을 통해 본인 여부 및 자격을 확인할 의무를 명시하고, 이를 위반하면 과태료 및 징수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 어처구니없는 법안에 대해 의료계는 크게 반발했다. 보험이라는 계약 특성상 보험의 가입자의 자격관리와 확인은 건강보험공단의 고유 업무다. 그런데 이 책임을 병원에 전가하는 것도 모자라 과태료와 징수금까지 부과하겠다는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지 의문이다.
병원이 이런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 병원이 환자에게 명의 도용을 종용하거나 눈 감아줘서 얻는 이득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그래야 부당 이득에 대한 책임과 리스크를 짊어질 수 있다. 그런데 유령 환자를 진료했다가 진료비를 환수당하고 시간과 경제적 손해를 보는 병원 입장에서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결국 이런 애꿎은 '책임 떠넘기기' 때문에 환자와 병원, 그리고 건보공단간의 갈등만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이 법보다 훨씬 더 명쾌한 법이 있다. ‘건강보험증이나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으면 병원 출입을 금지하는 법’이다. 책임 소재를 따질 일도 없고 건보공단도 부정수급자 때문에 골치를 썩을 일이 없을 것이다. 다만 급하게 건강보험증을 챙기지 못한 환자들은 병원 문 앞에서 쓰러져 갈 것이다. 이렇게 행정 편의주의가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