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기 병원, 재활병원 등의 부족은 해결해야 할 과제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일본 보건의료 전문가가 본 한국 의료의 과제는 서울의 '빅5병원' 편중으로 인한 서울과 지방의 의료 격차 해소에 있었다. 급성기 병원은 눈부실 정도로 발전했지만 만성기 병원이나 재활병원 등은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의료의 장점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이 꼽혔다. 다빈치 수술로봇 등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도입하고 의료관광이나 병원의 해외 진출도 적극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일본 긴조대 후쿠나가 하지메 교수(병원경영)는 6일 한양대 건강과 사회연구소가 마련한 ‘일본 의료의 병원 현황, 그리고 한국의 병원 ’ 간담회에서 이같은 내용의 ‘한국의 병원 견학 감상’을 발표했다.
후쿠나가 교수는 세계 42개국 병원을 둘러봤으며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한국은 42번째 방문국이었다. 그는 2014년 10월 처음 한국에 들러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대형병원부터 노인전문 요양원을 두루 견학했다. 지난해 2월에는 한양대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적십자병원 등을 둘러봤다. 이번 한국 방문으로 메디플렉스 세종병원과 녹색병원, 한양대국제병원 등을 방문했다.
병원의 대형화, 세계 병상수 상위 병원 12개 중 4개
후쿠나가 교수는 세계에서 병상수가 가장 많은 병원을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도 공개했다. 상위 12개 병원 중에서 중국 병원이 1, 2위를 차지한 가운데 한국 병원도 무려 4개나 들어있었다. 5위 서울아산병원(2818병상), 8위 삼성서울병원, 9위 세브란스병원에 이어 11위 서울대병원 등이 12위권 안에 들었다.
후쿠나가 교수는 “한국은 병상수가 굉장히 많은 병원을 여러개 가지고 있다”라며 “한국도 이제 (병상수와 관련해)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빅5병원'에 너무 환자가 쏠리는 것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됐다. 그는 “빅5병원 이외 병원에는 환자가 감소해 경영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며 “또 서울과 지방의 의료격차가 심한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일본은 전국 의료수준이 같은 의료 균일성(均一性)을 기본 이념으로 삼고 있다”라며 “한국도 서울에 대형병원 집중 양상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할 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의료비의 본인부담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은 전국민 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도 일본에 비해 본인부담률이 3배 가량 높고 건강보험 지원은 4분의 1수준으로 적었다. 그는 “일본은 재원이 모자란 데도 건강보험에서 의료비의 상당 부분을 부담해 문제가 발생했다”라며 “고령자의 의료비는 젊은 세대가 담당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들의 재정 부담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요양병원 등에서 병실을 8인실에서 6인실로 줄이는데 따른 결과가 궁금하다고 했다. 또한 그는 “간병인 부담의 문제가 있는데 간호사가 간병까지 맡고 있다고 들었다”라며 “이렇게 되면 의료비가 올라가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후쿠나가 교수는 한국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의 활용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표현했다. 2014년 5월 처음 한국 병원을 둘러봤을 때 병원 내에서 환자 정보를 정보통신기술(ICT)로 활용하는 장면은 인상깊었다.
그는 “일본은 이제 막 EMR을 도입하려고 하는데 한국은 스마트폰을 통해 환자 정보를 볼 수 있다”라며 “서울아산병원은 의료정보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 입원실, 수술실 현황을 한눈에 알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전날 방문했던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은 인공지능(AI)을 병원의 미래로 보고 병원의 모든 데이터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빈치 수술로봇을 이용한 외과수술도 주목했다. 그는 “다빈치 수술은 2008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처음으로 시작했다”라며 “미국에 2000여대의 다빈치가 있지만, 일본은 미국이 아닌 연세대를 통해 다빈치 수술기법을 배워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후쿠나가 교수는 ‘의료관광(Medical Tourism)’과 병원의 해외 수출 분야에서도 한국이 앞서간다고 봤다. 그는 “한국이 의료관광이라는 개념을 발명하고 이를 발전시킨 것이라고 본다”라며 “일본은 한국의 사례를 본 다음 몇 년전부터 의료관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은 병원 수출은 생각하지 못했고 의료기기나 의약품 수출에서 그치고 있었다”라며 “한국은 중동 지역까지 의료시스템을 수출하고 있고, 민간 병원이 해외 진출에 적극적인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은 사회보장제도를 관할하는 기관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일원화돼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그는 “전국에 건강보험과 관련한 여러 기관을 만들어야 하는 어려운 점이 있다”라며 “한국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온라인상에서 건강보험 청구를 가능하게 한 것도 장점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국 급성기 대형병원, 일본의 20년 뒤 미래 병원
일본은 고대에 한반도와 중국으로부터 의학을 많이 배웠다. 에도 시대에는 네덜란드로부터 의학을 배웠고 메이지시대 이후에는 독일로부터 전수받았다. 태평양 전쟁 이후에는 미국에서 많은 의학 지식을 배웠다. 현재 일본이 의학을 많이 배우는 나라 중 하나는 한국이다.
후쿠나가 교수는 “현재 일본은 한국을 통해 새로운 의학기술 등을 많이 배우고 있다”라며 “급성기 대형병원을 보면서 일본의 20년 뒤의 미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병원들은 이런 현실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라며 “다만 그렇다고 거만해질 필요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후쿠나가 교수는 “한국의 급성기 병원은 일본의 미래로 보이지만 반대로 재활병원, 만성기병원에서는 노력할 부분이 있어 보인다”라며 “일본이 먼저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는데, 한국은 일본이 겪었던 길을 보면서 잘 헤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정이 불안정한 일본이 고령화를 대비해 어떻게 의료시스템을 만들어왔는지 살펴보길 바란다”라며 “일본에서 실패한 사례를 토대로 한국 스스로 미래 의료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의료 분야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결단이 빠른 반면 일본은 딱딱한 문화로 변화가 늦다고 해석했다. 후쿠나가 교수는 “일본은 뛰어난 공업 기술을 갖고 있지만 이를 의료기술까지 연결하기에는 제한이 많다”라며 “노동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직업을 잃게 될 수 있는 등의 사회적인 당면 과제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