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수용하고 산업화하기 위한 규제 개혁을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위해 산업과 의학을 이해하는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FDA는 빅데이터와 개인유전체 정보가 임상시험까지 대체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규제가 혁신 성장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국내에도 시사점이 큰 것으로 보인다.
FDA, 인증받은 제조사에 한해 규제 전면 완화
“FDA는 기술이 규제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변화하고 있다. 한국의 규제 완화는 하나마나한 것들이 많아 규제가 혁신을 방해하고 있다.”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DHP) 최윤섭 대표는 29일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이 마련한 ‘제5차 의료기기소통포럼’에서 ‘미국 FDA의 디지털헬스이노베이션액션 플랜 제도 이해’ 주제 발표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최 대표는 “의료기기의 정의가 과거에는 하드웨어 기반이었지만 폭발적인 기술 발전으로 지금은 소프트웨어 기준으로 확대되고 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제품 허가심사 기준은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FDA는 올해 3월 의사 출신의 스콧 고틀리브(Scott Gottlieb) 국장이 합류한 뒤에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에게 안전하면서 효율적인 혁신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FDA는 7월 규제의 개념을 ‘기기’ 중심에서 인증을 받은 ‘기업(제조사)’ 중심으로 변화하는 ‘디지털 헬스 이노베이션 액션 플랜’을 내놨다.
최 대표는 “FDA는 기업을 기반으로 규제하겠다고 나서면서 규제의 패러다임의 큰 변화가 생겼다”라며 “개별 제품에 따라 규제가 적용받는 것이 아니라 자격(pre-certify)을 부여을 갖춘 기업은 인허가 과정이 면제가 되거나 간소화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FDA는 질병 위험도 예측, 열성 유전질환 검사 등 DTC(Direct-to-Customer, 개인 대상)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허용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혈압, 혈당, 피부 노화, 체질량 지수 등 12개의 건강관리(웰니스) 관련 항목 외에는 유전자 분석을 금지하고 있다.
그는 규제를 완화하면 환자도 신속하게 혁신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FDA의 변화는 혁신을 관리할 수 없지만 혁신이 꼭 필요할 때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을 보여준다”라며 “산업이 발전하려면 규제가 혁신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정부는 문재인 케어(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대책)에서 비급여의 급여화 외에도 새롭게 나오는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구상해야 한다”라며 “규제 때문에 시장 진입이 어려운 만큼 정부의 규제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최 대표는 “식약처에는 기술과 산업, 의학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더 늘어나야 한다”라며 “전문성이 있는 사람을 고위직에 배치하고 단순히 정치가가 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FDA, 빅데이터가 임상시험 대체 방안 구상
“개개인의 환경과 유전자가 다르고 환자 개인에게 맞는 약이나 의료기기가 다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통한 개인별 맞춤 리얼월드데이터(RWD)가 임상시험을 대체할 날이 온다.”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 황선빈 이사는 ‘미래 의료기기 규제 전망과 변화 예측‘ 발표를 통해 FDA의 임상시험 규제 변화의 흐름인 ’모델링앤시뮬레이션‘을 소개했다. 이는 현실과 비슷한 가상의 모델을 만들고 결과를 예측하는 것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이다.
FDA의 메디칼디바이스이노베이션컨소시엄(MDIC, Medical Device Innovation Consortium)에 따르면 컴퓨터와 가상의 환자를 통해 제품 개발이 가능하고 임상시험을 대체할 수도 있다. 황 이사는 “원하는 방향의 목적을 설정하고 특정 모델에 데이터를 넣는다”라며 “질병에 대한 지식, 개인의 건강정보, 유전자 정보, 라이프사이클(생체리듬) 자료 등 다양한 데이터를 투입해 각 요소의 상관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황 이사는 “시뮬레이션의 결과는 다시 데이터로 연결돼 끊임없이 보정 작업을 거친다”라며 “무한한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다 보면 모든 요인의 상관관계가 있는 분석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최근 리얼월드데이터(RWD)는 적응증 등의 사용 목적을 추가하거나 시판 후 데이터 분석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모델링앤시뮬레이션으로 RWD를 얻으면 직접 임상을 하지 않더라도 제품 개발로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황 이사는 “의료기기는 각종 센서를 이용해 사용자로부터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한다”라며 “웨어러블 기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센서,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 등이 수집되고 제품의 연구개발을 거쳐 다음 모델에 데이터로 다시 투입된다”고 밝혔다.
그는 향후 10년간 이런 빅데이터가 임상시험 자료를 보완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30년 이후에는 전통적인 방식의 임상시험이 더 이상의 가치를 갖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FDA는 기술의 발전이 환자에게 가장 큰 혜택을 준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환자를 참여시키고 있다. 황 이사는 “FDA는 환자네트워크(Patient Network)를 만들어 인허가 과정에서 환자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며 “정부는 산업계의 기술 속도에 대응하기 위해 유연하면서 효과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참석한 식약처 직원들도 규제 개선에 있어 애로사항을 밝혔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료 분야의 규제는 식약처 외에 보건복지부 등 부처별로 나눠진 것이 많아 규제 완화가 어렵다”라고 했다. 식약처의 다른 관계자도 “식약처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라며 “정부기관의 더 높은 자리에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소통포럼이 끝난 이후 만찬장에 참석한 청와대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은 “의료기기산업이 혁신 성장의 틀이라고 본다”라며 “앞으로 규제 개혁으로 의료기기산업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