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는 21일 정부의 전화상담 및 처방 허용과 관련해 “의협은 보건복지부와 전혀 사전 논의 및 합의한 사실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발표했으며 일부 언론을 통해 마치 의료계와 논의를 거친 것처럼 알려진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유선을 이용한 상담과 처방은 의사와 환자 사이 대면진료의 원칙을 훼손하는 사실상의 원격의료로 현행법상 위법의 소지가 있다. 현재와 같은 코로나19 지역사회감염 확산 상황에서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 검사가 필요한 환자의 진단을 지연하거나 적절한 초기 치료의 기회를 놓치게 할 위험성이 있다”고 밝혔다.
의협은 “전화를 이용해 상담 후 처방을 하더라도 결과에 따라 다시 약국을 방문해 약을 조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시 약국을 방문한 다른 환자, 특히 기저질환이 있거나 고령의 고위험군 환자와 접촉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원내조제의 한시적 허용을 통한 의료기관의 직접 조제와 배송을 함께 허용하지 않는 이상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했다.
의협은 “현재 지역사회감염 확산으로 인해 경증의 호흡기 증상 환자이더라도 코로나19에 이미 감염돼 있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를 의료기관에 내원한 다른 환자들과 접촉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에 따라 의협이 진료기관 이원화 등을 통한 방안을 정부에 이미 권고한 바 있다”고 했다.
의협은 “의료계 역시 현실적으로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에 대한 즉각적인 분리와 검사를 준비하기 위한 방역시스템의 전환에는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협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건복지부의 일방적인 태도다. 전화상담과 처방은 법률검토, 책임소재, 진료의 범위와 의사 재량권, 조제방식과 보험청구 등 미리 검토, 상의해서 결정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 이런 것들에 대한 어떤 협의나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마치 당장 전화상담과 처방이 가능한 것처럼 발표하여 국민과 의료현장에 엄청난 혼란을 유발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당장 환자들은 전화로 처방을 요구하고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어찌 대응해야 할지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실무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합의한 적도 없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정작 그 당사자는 언론보도를 통해 듣게 됐다. 이런 삼류행정을 국가적 비상사태에서도 그대로 반복할 것인가”고 밝혔다.
의협은 “지난 한 달간 중국으로부터의 입국 제한을 통한 감염원 차단 등 의협의 6차례에 걸친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언제나 한발 늦게 따라가는 사례정의와 1339 및 보건소의 비협조, 여전히 불분명한 폐쇄와 보상기준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의사들은 국가로부터 마스크 한 장 공급받지 못하면서도 묵묵히 버텨왔다”고 했다.
의협은 “의업을 선택한 이상 눈앞의 위기를 극복하고 환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장의 불합리함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각자도생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또한번 확인했다. 의사의 희생과 헌신 뒤에 돌아오는 것은 역시나 정부의 불통이다”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정부는 오늘 일방적으로 발표한 전화 상담 및 처방 허용을 즉각 철회하고 사과하라. 국경 차단을 위해 의료를 멈추려 했던 홍콩 의료진들의 울부짖음이 이 땅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