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외과학회 특임이사인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외과계의 몰락‘ 정책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대한외과학회, 대한흉부외과학회,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비뇨기과학회, 대한신경외과학회 등 외과계 5개 학회가 공동 주관했다. 또 공동 주최자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정춘숙, 최도자 의원과 국회 정무위원회 심상정 의원 등이 참석했으나 이들 모두 토론회 중간에 자리를 떴다. 학회 관계자들 외에 남아있던 사람은 보건복지부 이기일 보건의료정책관이 유일했다.
이 교수는 외과계 학회들의 정치력과 국회의원들의 태도를 아쉬워하며 5년간 1조원의 응급의료기금을 따낸 대한응급의학회 사례를 예로 들었다. 이 교수는 “응급의학과 교수들은 의원은 물론 개별 보좌관 하나하나에게 접촉하고 끊임없이 정책을 제안했다. 그래서 응급의료기금이 지정되고 복지부 응급의료과도 생겼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발표 자료는 의원들이 자리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만들었지만 발표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라며 “국회 복지위 의원들 역시 몇 시간만 투자하면 외과계 최고의 수장들로부터 정성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증외상센터는 정치권에서 많은 관심을 가졌어도 난맥상으로 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치권의 주목을 받더라도 의료현장에 돌아오는 혜택은 현실에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석해균 선장 사건 이후 2012년 정치권에서 외상센터의 필요성에 대해 발제를 할 때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과 나경원 의원, 민주당 주승용 의원 등은 400장 이상의 슬라이드 자료를 진정성 있게 지켜봤다. 이들은 외상센터 법을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 그렇게 해도 외상센터의 현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의료현장의 개선점을 주장했고, 앞으로도 주장해야 한다"라며 "우리나라 병원은 간호사 한명당 환자수가 1대 2 이상이다. 대한간호협회가 이런 현실에 대해 머리라도 깎으면서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화물연대가 파업하는 것을 보면 목소리를 높여야 조금이나마 주장이 받아들여 진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의사들이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라며 "의료계의 폐습은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태우거나 때리는 데 있다. 앞으로 내부에서만 싸울 것이 아니라 의료현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정치권과 국민에 주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 교수는 “외과의사들은 핏물을 뒤집어 쓰고 노동 현장에서 일한다. 외과의사들은 화이트칼라가 아니라 블루칼라다”라며 “노동자와 농민을 대변하는 정당에 소속된 심상정 의원 등이 외과계 의사들을 노동자로 인식해 대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교수는 중증 외상환자의 생존률 향상을 진심으로 원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병원 전단계에서 여러 진료과가 같이 환자를 이송할 수 있다. 하지만 외상센터는 실제 수술을 결정하고 이를 담당하는 게이트키퍼의 역할이 중요하다”라며 “전체 입원환자가 아니라 외상환자를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종 치료를 담당할 수술 의사들이 환자를 실어오는 최전선으로 나가야 한다. 외상환자의 최종 치료를 담당할 외과의사들이 현장에 가서 보고 직접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그렇게 해야 외상센터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맞출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미국과 영국은 물론 가까운 일본만 가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킨다. 외과의사들이 병원 전단계를 책임지고 있다. 1년에 어떤 일본의 외과의사는 1200건이 넘는 헬기 이송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외상센터의 연구용역을 제안했을 때는 6개 권역에 외상센터를 만들어 개별 센터당 800억원씩 집중해야 한다는 권고안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는 17개의 지정된 외상센터가 각 80억원씩 지원을 받는 구조로 바뀌었다. 이 교수는 “중증 외상센터 설립방안은 2004년에 미국에서 배웠던 것을 공식에 대입해서 만들었다. 이 때 복지부 용역 사업이 처음 나왔다”라며 “외상센터 10개가 설치됐지만, 10년 전과 비교해 외상환자 치료 수준이 달라진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당시 최소 40병상 이상의 중환자실을 갖추고 4곳의 대수술실, 2곳의 수술실 등 규모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윤정 전 민주당 전문위원은 응급의료기금을 외상센터에 지원해야 한다고 힘을 실어줬다”고 했다.
이 교수는 “외상센터는 지금처럼 쪼개질 것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통해 거점병원 형태로 가야 한다. 2010년 복지부 연구용역에서도 또 한번 전국 6개 권역을 선정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수없이 많은 공청회를 하고 연구용역도 많이 하고 제안도 많이 했다"라며 "6개 권역을 선정하고 한 센터에 800억원을 주기로 했지만, 현재 예산 규모는 정확히 10분의 1 토막이 났다. 80억원짜리 17개로 외상센터가 쪼개졌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중진 의원들이 앉아서 모든 발표를 들어도 정책이 안드로메다로 가기도 한다”라며 “하물며 이렇게 의원들이 전혀 참석하지 않고 의사들끼리 주장하면 전혀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갈 길이 너무 멀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일부 병원장은 장관이나 정치인들을 끌어들여 정부 사업예산을 따거나 의료 행정에 깊숙이 관여한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외상환자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아주대병원은 2012년 알 수 없는 이유로 외상센터 선정에서 탈락한 사례가 있다"라며 "외상센터 인건비 지원을 받아 다른 진료를 하는 등 악용하는 병원도 있다는 내용이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활성화된 외상센터는 병실이 부족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환자가 없다”라며 “정부가 환자가 많은 외상센터에 대해 확장형으로 만들고 지원을 해주기로 했는데, 이 역시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외과계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외과학회와 흉부외과학회를 통합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했다. 이 교수는 “미국 사례를 보면 외과학회과 흉부외과학회가 갈라져 있지 않다"라며 "미국 사례를 대입하다 보면 한국 실정과 맞지 않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맞추기 어렵게 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복지부는 흉부외과와 외과를 따로 지원해야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 이런 전례가 없는 만큼 통합을 할 필요가 있다"라며 "학회 자체의 덩치를 키우고 한 덩어리로 가서 정부를 상대로 이야기를 한다면 힘이 실릴 수도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의사들이 스스로 엄청난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국회 토론회를 하더라도 반향이 없을 수 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에서 의사들의 주장과 전혀 다른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등의 진정성이 없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위해 나아가려는 방향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일단 자꾸 발언할 기회를 만들고 정치권이나 정부 관계자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