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규칙 개정안 실행을 두고 의료계 내 반대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의료계 각 단체가 모여 전문간호사 관련 논의를 진행하던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 협의체’의 추후 일정은 잡히진 않은 상태지만 대한의사협회는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문구 수정 등 의견 전달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계가 이번 개정안에 반대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개정안이 기존 사법부 판례에 역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관련 자격을 취득한 전문간호사라고 할지라도 의사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의료행위를 자격증만으로 뛰어넘는 것은 월권이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도 관련 판례들을 근거로 마취전문간호사가 직접 마취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행정해석을 내리고 상황이다. 이에 최근 사법부의 전문간호사 마취행위 관련 법률 해석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관련 판결을 모아 살펴봤다.
전문간호사 척수마취 시행 후 환자 사망…징역 6개월 집유1년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간호사의 불법 마취와 관련한 판례는 2010년 3월 대법원에서 마취전문간호사의 무면허의료행위 등 의료법위반 사실을 인정하고 간호사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사건이다(2008도590).
당시 마취전문간호사 A씨는 집도의사의 지시 없이 직접 환자의 요추 4번과 5번 사이에 척수바늘주사기로 농도 10%의 포도당을 섞은 디카인 8mg의 마취액을 투여해 척수마취를 시행했다.
그러나 마취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환자가 수술 도중 고함을 치는 등 고통을 호소했다. 이에 A씨는 다시 국소마취제인 리도카인 수량 불상을 치핵 부근에 투약했지만 결국 환자는 혈압상승으로 인한 호흡저하와 무호흡으로 사망했다.
해당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전문간호사라 하더라도 의사가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직접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마취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마취전문간호사가 의사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의료행위를 직접 할 수 없는 것은 여타 간호사들과 마찬가지라는 게 사법부의 해석이다.
당시 대법원은 "마취액을 직접 주사해 척수마취를 시행하는 행위는 약제의 선택이나 용법, 투약 부위, 환자의 체질이나 투약 당시의 신체 상태,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처능력 등에 따라 환자의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은 "이는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요하는 것으로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이고 마취전문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진료 보조행위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전문간호사는 간호사로서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자격시험에 합격해 보건복지부 장관의 자격인정을 받아야 하지만 마취분야에 전문성을 가지는 간호사 자격을 인정받은 것뿐"이라며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나 위임을 받고 마취 행위를 하더라도 이는 의료법에서 금지하는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전신마취 위해 삽관시술 진행…간호사가 마취과장, 마취만 905건
비슷한 사건은 2010년 부산에서도 있었다. 마취전문간호사 B씨는 손가락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환자의 전신마취를 위해 삽관시술을 진행했다. 하지만 수술 후 환자가 의식불명상태에 빠지고 심장질환으로 사망하면서 B씨는 의료법위반 혐의로 입건됐다(2013구합53523).
당시 B씨는 마취전문간호사는 전신마취를 할 수 있을 뿐더러 의사가 자신에게 전신마취를 하도록 지도했기 때문에 해당 마취행위가 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5호에 규정된 '의료인에게 면허받은 사항 외의 의료행위를 하게 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당시 서울행정법원 제12부는 전문간호사라도 의료법에 규정된 간호사의 업무대로 '간호 또는 진료 보조 및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건활동'에 국한돼야 한다고 봤다.
즉 의사가 간호사에게 진료의 보조행위를 하도록 지시하거나 위임할 수는 있으나 마취 등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행위는 반드시 의사만이 행해야 하고 이를 하도록 지시하거나 위임하는 것 자체도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나 위임을 받고 마취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의료법 제27저 제1항에서 금지하는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인 삽관시술을 B씨가 한 것은 의사의 지시와 입회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무면허의료행위"라며 "B씨는 평소에도 환자의 마취를 위임받아 실시했고 이 사건에서도 혼자 환자의 전신마취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오롯이 B씨의 판단에 따라 마취제가 투여됐다"고 전했다.
2015년 부산지방법원도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놨다(2013고합 196·468·480·625·631(병합)). 당시 경상남도 김해에 위치한 병원에서 간호사 C씨는 아예 병원 마취과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업무를 진행, 수술과정에 필요한 모든 마취를 담당했다. 당시 C씨가 진행한 마취 횟수만 905회에 달했다.
부산지법은 "해당 병원에 마취과 전문의가 근무한 적이 없고 병원 개원 때부터 C씨가 마취과장이라는 직함으로 병원 마취를 전담했다"며 "의사는 마취약제의 종류나 전신마취, 척추마취 여부만 지시했을 뿐 개별 환자의 체질과 신체 상태 등에 따른 마취약제의 선택과 투약 용량 등 구체적인 지시 조차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대한마취통증의학회 김재환 이사장은 "마취전문간호사의 단독 마취는 물론 의사의 지도와 지시가 있더라도 해당 행위는 불법이라는 점이 법률과 행정적으로 이미 고시됐다"며 "의료법에 전문간호사는 전문적인 간호사의 업무만을 수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