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 논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3월에는 아프면 안돼."
이 말은 대학병원에서만 전설처럼 내려오는 말인데, 다 이유가 있다. 대학병원은 정상적으로 실력을 갖춘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수련병원’이기 때문이다. 3월에는 갓 의사가 된 인턴뿐만 아니라, 전공의도 모두 신입이다. 좌충우돌, 우당탕탕 실수가 연발되기 일쑤다.
인턴과 레지던트를 포함한 전공의들은 전문의가 되는 과정에서 해마다 각자에게 필요한 것들을 배운다. 그리고 그걸 직접 환자에게 시행해본다. 인턴은 간단한 시술을, 전공의 1년차는 환자를 담당하고 처방하는 방법을, 전공의 3년차는 수술 방법을 배우는 식이다. 책으로 보거나 영상으로 봤던 것을 내 눈으로 보고, 스승의 지도하에 내 손으로 직접 해봐야 내 것이 되고, 내 손에 빨리 익숙해져야 환자들을 제대로 검사하고 치료할 수 있다. 이건 한 국가의 의료체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이번에 통과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에 이를 가로막는 큰 맹점이 숨어 있다. 의무적으로 설치된 CCTV의 녹화를 병원이 거부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이 있는데, 수련병원 등의 전공의 수련 등 그 목적 달성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다.
우리나라 대학병원은 전국에서 환자들이 ‘저명한 교수님’께 직접 수술을 받기 위해 몰려드는 곳이다. 몇 달을 기다리고 몇 시간을 달려와서 저명한 교수님께 내 몸을 맡기고 싶지, 새파랗고 경험이 부족한 의사가 내 몸에 손을 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명한 교수’의 지도하에 ‘초보 의사’가 수련을 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 이 상황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으로 인해 하나의 가정이 생겨난다. CCTV 녹화를 하는데 전공의가 수술 집도에 일부라도 참여했다가 조금의 문제라도 생기면 바로 소송의 위험에 걸려들기 때문에 병원은 전공의 수련을 위해 CCTV 촬영을 거부해야 한다는 가정이다. 그럼 병원은 환자들에게 이렇게 직접 설명해야 한다.
“이 수술은 전공의가 수련을 위해 참여하는 수술이니, CCTV 촬영 녹화를 거부하는데 동의하셔야 합니다.”
그럼 환자, 보호자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네, 제 몸으로 열심히 수련하셔서 훌륭한 의사가 되세요”라고 얘기를 할까? 아니면, 조만간 유튜브에 “수술 받을 때 녹화 거부에 사인하시면 여러분은 새파란 의사들의 실습을 위한 마루타가 됩니다”라는 영상이 올라올까.
수술결과가 좋지 않을 때 수술실 녹화에 참여한 전공의들의 수술 참여를 트집 잡아 환자와 병원간의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지는 않을까. 수술실에서 메스를 한 번도 잡아 보지 못한 외과계열 전문의들이 쏟아져 나오지는 않을까.
어느 쪽이 됐든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갈등과 의료계의 손실이 이어질 것은 자명해 보인다. 부디 이 예상들이 모두 빗나가고 아무 일도 없었듯이 시스템이 잘 유지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 어느 국가도 하지 않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여차하면 의료시스템의 수준을 저하시키거나 불필요한 싸움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최초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한 대한민국 수련병원과 의료계의 미래가 부디 밝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