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비대면 진료 제도화 논의 과정에서 ‘의료’의 본질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가운데 안전성과 임상적 효과는 도외시 된 채 산업적 측면만 지나지게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6일 온라인으로 열린 ‘비대면 의료서비스 적용 전략 포럼’에 참석한 각계 전문가들은 지난 30년 간의 지리한 비대면 진료 도입 논의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부분들이 빠져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동아대병원 응급의학과 권인호 교수는 “비대면 진료와 관련해 항상 안전성 문제가 언급되는데, 지금까지 시범사업을 통해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한 적이 없다”며 “이는 결국 복지부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 대통령 당선인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겠다는 얘기를 의료진이 아니라 플랫폼 업체를 만나서 이야기했다 제도화시 일어날 일에 대해 의료진과 한 마디 상의도 없었는데 이는 심각한 문제”라며 “복지부가 더 주체적으로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비용 지불에 대한 문제도 언급했다. 권 교수는 “비대면 진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가는 진찰료가 전부”라며 “진찰료를 갖고 플랫폼 업체들이 수익을 나눠야 하는데 수익성이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다. 국내에서 비대면 의료를 제도화하는데 가장 큰 난관은 결국 누가 비용을 지불할지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의료접근성 높은 국내선 임상적 효과 차원서 논의해야...단순 전화상담∙처방 방식은 한계
유비케어 최준민 상무이사는 미국, 중국 등 영토가 큰 나라들은 의료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대면 진료가 필요하지만 국내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짚었다. 비대면 진료를 왜 도입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상무이사는 “임상적 효과 측면에서 접근하는 게 우리나라 상황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며 “(그 동안 비대면 진료 논의는) 수익, 또는 환자의 편의성과 관련된 얘기들만 해왔을 뿐 정작 의료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연장선상에서 정부가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전화상담∙처방 형태의 비대면 진료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의사에게 제한적 정보만 제공되는 전화상담 형태의 진료가 과연 환자들에게 임상적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최 상무이사는 “촉진, 타진, 청진, 검사 등과 같은 대면진료의 일반적 프로세스가 생략된 상황에서 의사들이 얼마나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며 “지난 30년간의 시범사업을 통해 이런 부분을 고려할 수 있는 기술적, 환경적 여건이 됐음에도 실제론 적용하지 못했다”고 했다.
고대안암병원 내분비내과 유승현 교수도 단순 전화상담∙처방 형태의 비대면 진료는 되레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전화처방이라는 제한된 형태의 서비스가 오히려 환자들에게 약물 위주의 질환 관리 인식을 고착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특히 노인, 의료급여 대상자들은 비대면진료를 지속적으로 이용하다보면 원래 이들에게 제공됐어야 할 적정한 의료서비스와 개입이 이뤄지지 못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진료라는 현상에만 집중하다보면 오히려 진료의 질적 수준이 더 낮아질 수 있다. 단순히 진료를 위한 수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모니터링과 환자 플래닝을 위한 수가에 중점을 두고 제도를 설계해야 비대면을 통한 환자관리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교수는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단순한 진료가 아니라 디지털 헬스이고, 이 과정에서 기반이 돼야 할 것은 정확한 통계와 분석”이라며 “환자의 예후를 개선하지 못하고 제도를 위한 제도, 서비스를 위한 서비스에 매몰되면 환자들이 약만 먹고 합병증은 증가하게 되는 비극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건산업진흥원 의료서비스혁신단 김종엽 책임연구원은 비대면 진료가 궁극적으로는 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의료를 제공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최근 ICT기술 발달로 데이터 중심 의료가 각광받고 있는데 비대면 진료도 이 범주에 속할 수 있다”며 “특정 환자들에게서 나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환자의 상태를 분석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맞춤형 의료를 제공하는 모형을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데이터의 정확성 등을 담보할 수 있는 기술적 부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비대면 진료 시행 시 활용될 수 있는 각종 기술들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와 가이드라인 마련 등의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비대면 진료에 대한 의료인과 환자 대상 교육 등을 준비할 수 있는 거버넌스도 구축돼야 한다”며 “특히 고령 환자 등 디지털 기술 활용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이들을 어떻게 교육할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전달체계 붕괴 우려엔 의견 갈려...복지부는 '재진∙의원급 중심∙대상 제한' 강조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문석균 실장은 비대면 진료가 제도화 될 경우 우려되는 점으로 의료 쇼핑과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꼽았다. 비대면 진료 이용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잇는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제도화를 성급하게 추진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문 실장은 “비대면 진료 시스템 하에서는 A라는 의사를 만나고 마음에 안들면 이후로도 무한정 다른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게 가능하다”며 “이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국민들 보험료가 오를 수밖에 없다. 의료 쇼핑을 방지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비대면 진료로 지역 등의 제한이 없어지면 결국 대형 병원과 업체들만 살아남고, 일차의료기관은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그렇게 시스템이 망가지면 정말 중증의 환자를 상급 병원에서 컨트롤하기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제한된 정보만 제공되다보니 환자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고, 이에 의사들이 법적 처벌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에 문 실장은 “비대면 진료의 장점도 있지만 보수적으로 대면진료의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보조 수단으로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김광준 교수는 비대면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봤다.
그는 “고령층 환자들은 거동이 불편해 대면 진료를 받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에게 비대면 진료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며 “물론 모든 질환군의 모든 환자에게 비대면 진료가 대안이 될 순 없다. 하지만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했다.
이어 “이런 분들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시행해보면 뭔가 답이 나올 것이다. 물론 사전에 미리 예상되는 문제를 검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시행도 해보지 않고 탁상공론만 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가 의료전달체계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대학병원에서는 비대면 진료를 활성화할 구조가 절대 나오지 않는다. 특히 우리병원의 경우, 외과계 의료진은 월 수익을 거두려면 30분 진료에 12만원을 받아야 수가가 맞는다”며 “과연 누가 이런 진료를 받겠느냐”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정책적 관점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할 것임을 명확히 하며 재진, 의원급 중심, 대상 환자 제한 등을 언급했다.
복지부 고형우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우리도 전화상담이 비대면 진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팬데믹 상황에서 모든 기준을 설정해 시행하기 어려워 전화상담까지만 풀어놓은 것”이라며 “향후 실제 비대면 진료 시행 시에는 환자뿐 아니라 의사들에게 비대면 진료 매뉴얼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복지부는 플랫폼 업체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고, 보건의료정책적 차원에서 제도화하려 한다”며 “초진환자보단 재진환자 대상, 의원급 중심이 될 것이고. 대상자도 도서지역∙취약지역 거주자나 거동불편 환자, 만성질환자 등으로 제한하며 의료계의 우려를 최소화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 과장은 “지난 2년간 비대면 진료는 470만건, 코로나 재택 환자 비대면 진료까지 합치면 1000만건 정도가 이뤄졌다. 아직 이를 통한 진료 질 향상 측면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안전성에서는 크게 문제는 없었다”며 “이를 감안해 제도화를 할 텐데 그 과정에서 의료계, 환자단체, 시민단체, 전문가들의 의견을 잘 반영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