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붕괴되고 있는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선 의사들의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우려를 해소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7일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 주최로 의료현안 연속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1차 토론회는 의료행위에 대한 징벌적 접근을 주제로 진행됐다.
의사 1인당 연평균 기소율 일본·영국 대비 256배·895배
발제자로 나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은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나라가 유독 의료과실에 대한 형벌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검찰에 입건 송치된 의사는 연 평균 752.4명으로 같은 기간 40만명 중 56명에 불과한 일본과 10배 이상 차이가 났다. 우리나라(14만명)에 비해 일본(40만명)의 평균 활동 의사 수가 크게 높은 것을 고려하면 형별화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소까지 이어지는 비율 역시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의사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 기소율은 44.6%에 달하는 반면 일본은 26.2%로 일본이 20%가량 낮았다. 이는 미국, 영국 등과 비교해도 유사한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우 소장은 “우리나라는 의사 1인당 연평균 기소율은 일본 대비 265배, 영국 대비 895배에 달한다”며 “삐끗하면 교도소에 갈 수 있는 게 대한민국 필수의료 의사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대생들도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의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 전공으로 꼽고 있다”며 “필수의료 형사처벌을 면책하는 필수의료 특례법 제정, 검찰과 경찰 내 의료사고 전담부서 설치 및 기소권 남용 제한 등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무과실 분만 국가 배상 100%…분만 외 모든 분야까지 확장해야
의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자신의 법안 제정 경험을 기반으로 의료행위에 대한 징벌적 처벌의 대안을 제시했다.
신 의원은 지난해 무과실 분만사고 배상액을 국가가 전액 부담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며, 해당 법안은 지난달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존에는 국가가 배상액 70%를 부담하고 나머지 30%를 의료기관이 분담했는데, 의료계는 과실이 없는 의료기관이 배상액을 일부라도 분담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문제 제기를 이어왔었다.
당초 해당 법안은 통과가 불투명했으나. 법안에 부정적이었던 기획재정부가 입장을 선회하며 극적으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신 의원은 “필수의료가 붕괴 직전이라는 공감대가 있어 정부와 국회가 움직였고, 그 과정에서 의료계도 적극적으로 설득에 나섰다”며 “앞으로는 분만 외 모든 무과실 의료사고로까지 확대가 가능하도록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신 의원은 이 외에도 응급처치에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을 때 응급환자가 사망하더라도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내용의 착한 사마리아인 법(응급의료법 개정안), 의료인을 폭행한 이는 피해자와 합의 여부에 관계없이 형사처벌하는 의료현장 반의사 불벌죄 폐지법(의료법 개정안)도 통과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감경 및 면제, 국가 보상체계 강화 ▲모든 국민이 필수의료 동등하게 제공받을 권리 규정 ▲필수의료 정의와 범위 규정 ▲필수의료 살리기 위한 국가와 지자체 책무 규정 ▲필수의료 종사자 양성 및 전공의 수련비용 국가 지원 ▲ 3년마다 필수의료 실태조사 실시 ▲필수의료 종사자 전문성 향상, 근무환경 개선, 합리적 보상체계 기전 논의 체계적 진행 등의 내용을 담은 필수의료제정법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다.
신 의원은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 강화를 넘어 궁극적으론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가 회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목동사건 영향 소아과 전공의 지원 감소…의료사고 감소 자구 노력 부족 지적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김지홍 이사장은 “소청과 전공의 지원이 바닥에 도달했는데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이라며 “이대목동 신생아 사망사건으로 당시 의료진이 구속됐다.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무죄를 판결했지만 그간 의료진의 고초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렇지 않아도 20%에 달할 정도로 낮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가운데서도 전공의들이 응급실이나 신생아실 진료 자체를 굉장히 꺼린다. 전공의 지원 기준 중 하나가 '자신이 신생아 중환자실을 프라이머리로 당직서야 한다'는 조건이 있으면 지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면 병원이 민사소송에선 어느 정도 부담해주지만 형사적 문제에선 의사 본인이 다 책임을 져야한다“며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 확대는 필수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환자안전학회 이재호 회장은 “의료행위는 그 자체로 위험한 수술을 하거나 약물을 사용하기 마련인데, 다른 분야와 동일하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잣대를 적용하면 진료를 할 수 없게 만든다"라며 “그래서 다른 국가에서도 의료행위에 대해 형사처벌로 기소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소비자시민모임 황선옥 선임고문은 “의료사고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은 소신 진료를 막아 결국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한 의료계의 자구 노력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의료사고 다각적 접근 필요…선결해야 할 문제 있어"
복지부는 의사가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은 중요하다면서도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복지부 박미라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의료사고에 대해선 의료인과 일반 국민들 사이에 지식과 정보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의료사고 발생시 의료인과 환자가 모두 균형된 공격과 방어 수단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전제 하에 형사처벌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가령 현재 의사에겐 설명의 의무가 있지만 행위별 수가 제도에서 많은 환자를 진료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또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그 재원은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한 준비도 부족한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박 과장은 “물론 최종적으론 의료인이 소신을 갖고 의료행위를 펼치는 게 맞지만, 그 전에 일반 국민 모두가 이 의료행위를 믿고 나가도 될 지에 대해 큰 그림이 필요하다”며 “의료분쟁조정법이 시행된지 10년이 넘었는데, 현행 법안에는 당시 사회적 합의가 되지 못했던 입증책임 전환, 충분한 배상 등에 대한 전제 조건들이 빠져있다”고 했다.
이어 “이런 부분을 포함한 논의가 이뤄져야 현재 닥친 필수의료 붕괴에 대해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온다”라며 “앞으로 의료인의 의료사고 부담을 완화하는 동시에 의료사고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동시에 검토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