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지난해 강북삼성병원 고(故) 임세원 교수가 정신질환자에 피살되고 최근 진주 아파트 방화 및 살인 사건의 범인이 치료를 중단한 정신질환자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인 사법입원제도의 도입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법입원제도는 정신질환자 치료를 위한 입원의 경우 입원적합성심사를 대신하여 법원이 입원심사를 하고 계속 입원심사 역시 법원심사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이는 정신의학적 판단만으로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사법기관이 환자의 상태 및 가족의 지지환경을 고려해 입원 적절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정신장애인단체들은 사법입원제도를 담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정신질환자의 치료환경 개선에 대한 내용은 담지 않아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사법입원제도가 치료 사각지대에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고 강제입원결정은 사법적 심사를 통해 제도화 하므로 가족과 의사가 강제입원으로 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발행한 '이슈와 논점'에서 정신질환자 사법입원제도 도입 논의의 배경과 쟁점 및 과제에 대해 짚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치료 접근성이 떨어지고 인권 보장이 실패한 환경이 사법입원제도 도입을 촉발시킨 원인으로 꼽혔다.
입법조사처는 사법입원제도 도입과 관련해 입원심사를 주체할 기관과 임원심사 모델, 입원심사를 진행할 시기가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처는 제도가 실질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고 병원 치료와 지역사회 재활·복귀를 연계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치료 접근성 퇴보가 사법입원제도 도입 촉구
국회입법조사처는 사법입원제도 도입 논의가 촉발된 근원적인 이유로 우리 사회의 중증 정신질환 관리 수준을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심각한 치료적 접근성이 퇴보하고 환자의 인권보장이 실패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치료적 개입을 제도화하는 사법입원제도의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고 짚었다.
입법조사처는 중증 정신질환 관리 체계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환자들의 비자의 치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의견이 보장되는 공공 행정체계가 확보되어야 하고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재활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현행 중증 정신질환 관리 수준은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입법조사처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있는 상황에서 치료가 지연돼 급성기 병상이 붕괴돼 있다고 밝혔다. 또 장기간의 저강도 입원과 비치료적인 '사회적 입원'에 대한 대책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정신질환자들이 초발 및 재발 등 급성기 위기를 맞을 때 대응할 응급정신의료체계가 부족하므로 조기개입체계를 구축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입법조사처는 급성기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퇴원 후 지역사회에서 회복하고 사회 복귀를 할 수 있도록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고 회복까지 지원받는 복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법조사처는 정신질환자들이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커뮤니티케어'와 정신보건서비스를 결합한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와 더불어 정신보건예산을 OECD 평균 수준인 전체 보건의료 예산의 5%로 증액하는 조치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입법조사처는 중증 정신질환을 관리라는 법적 근거로서 '정신건강복지법'은 환자의 인권 보장과 치료적 접근성 제고라는 선택적인 입법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입법조사처는 이러한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법제도를 운영할 때 합리적인 동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가족 등 보호의무자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의 판단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현행법의 한계가 사법입원제도 도입 논의를 촉발했다고 했다.
첫 번째 쟁점, 입원심사는 법원 아니면 독립행정기구가 할 것인가
국회입법조사처는 사법입원제도의 도입과 관련해 입원심사의 결정 주체 또는 입원심사 모델이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사법입원제도는 법원심사 형태로 실시되고 있다. 사법입원제도의 핵심은 강제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기관이 법원이든 준사법기관이든 세계보건기구(WHO)의 '정신장애인 보호와 정신보건의료 향상을 위한 원칙(MI 원칙)'에 따라 강제입원의 적법성을 담보하기 위해 독립적인 기관이 사법적 심사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입원심사를 결정하는 주체에 관해서, 우선 독립적인 사법적 심사기구가 법원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독립행정기관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입법조사처는 WHO의 'MI 원칙'에서도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고 밝히며 미국과 독일이 법원심사 모델을 택한 이유는 헌법적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강제입원은 인신구금에 해당해 법원의 개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사처는 우리 법체계에서도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는 헌법 제 101조 제 1항에 따라 사법적 심사는 곧 법원 심사라고 덧붙였다.
입원심사 모델로는 법원심사 모델과 MHRT(Mental Health Review Tribunal) 모델이 제시됐다. 입법조사처는 법원심사 모델의 경우에 입원 여부 판단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제도적으로 확고해 적법절차 위반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재판의 형식을 취하므로 종국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환자에게 낙인을 찍고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으며 판사가 정신건강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가 의견에 좌우될 우려가 있다고 봤다.
반면, MHRT 모델의 장점은 정신건강 전문가가 입원심사에 직접 관여해 실질적 판단을 할 수 있고 환자에게 낙인이 되지 않도록 유연하게 설계하고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점으로는 전문가의 직접 개입이 이해관계로 연결될 우려가 있고 유연한 절차라는 장점은 적법절차의 요건 미달로 이어질 수 있는 점이 꼽혔다. 또 법원심사처럼 판단의 종국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두 번째 쟁점, 입원심사는 어느 시점에 진행할 것인가
국회입법조사처는 사법입원제도에서 입원심사의 시기 또는 방식이 또 다른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입법조사처는 입원심사 진행 시점이 쟁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독일이 택한 조기심사는 72시간 응급입원 후 1~2주 내 입원 심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조기심사는 적법절차 원칙에 충실하다.
하지만 이 방식은 거의 모든 강제입원이 최초 심사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심리 건수가 늘어나 인력 및 비용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또 심사자와 환자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해 강제입원율을 낮추지만 반면에 강제입원 요건이 충족되면 재원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미국 뉴욕 주와 영국, 일본이 택한 중기심사는 정신의료기관의 장이 일단 입원 결정을 하고, 상당기간(약 28일) 강제입원을 인정하다가 그 이후 계속입원 결정 여부를 법원 또는 준사법기관에 맡기는 방식이다.
중기심사는 계속입원 여부를 결정하기 전까지 퇴원시키는 별도의 심사가 없어 강제입원율이 다소 높아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심사 없이 퇴원이 용이하므로 재원기간이 짧아질 수 있고 절차에 따른 비용부담도 절감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혔다.
다만 이 방식은 강제입원의 사후승인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입법조사처는 약물치료 등 급성기 치료를 완료하고 치료 성공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략적인 기간, 즉 입원 2~4주에 심사기간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입법조사처는 사법입원제도의 사법적 심사에 대해 우선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상급기관에서 심사에 대한 불복이 가능하더라도 그 기관의 결정이 최종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짚었다. 이와 더불어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강제입원 과정에서 환자의 권리 고지, 입원 전 환자의 이의제기 보장, 절차보조인 등 국가가 선임한 자의 환자 지원 등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법조사처는 사법입원제도가 도입되면 기존의 입원심사 방식이었던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는 절차보조인에 의해 대체될 수 있고 보호의무자 제도의 폐지가 거론될 것이라고 봤다.
이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도입으로 인한 실제적 효과라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사법입원제도가 잘 정착하려면, 절차보조인 제도를 통해 환자 당사자의 인권 보장을 위한 투명성·공정성을 확보하고 병원 치료와 지역사회 연계서비스를 결합한 지역사회 정신건강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