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일선 의사가 사전에 휴진 신고 없이 14일(오늘) 파업에 참여했다면 법률적 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
개원의를 포함해 대다수 전공의와 전임의 등 병원계 파업까지 예견되면서 보건복지부는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의료계는 업무개시 명령이 내려져도 파업을 강행한다는 입장이어서 법률적 싸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에도 업무개시명령을 어긴 의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은 전례가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업무개시 명령에 대해 직접 수령이나 서명할 의무가 없고 휴가를 사용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법률전문가들도 의사들이 업무개시 명령을 수령하고 서명해야 할 의무가 없으며, 현실적으로 모든 의사들에게 소송을 제기하기 힘들다는 견해를 밝혔다.
공정거래법 위반, 업무방해 여부, 업무개시명령 위반 쟁점
의료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의사총파업과 관련된 법률적 논란의 여지는 3가지로 함축된다.
첫째, 대표적인 쟁점 중 하나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다. 대한의사협회가 의사들에게 휴업에 동참하라는 내용의 공문과 투쟁 지침을 전달하는 등 참여를 독려, 의사들의 휴업을 강요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혐의로 인해 의협이 의사들 사이에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했다는 점이 인정되면 공정거래법 제26조 제1항 제3호에 따라 파업이 부당한 공동행위로 인정될 수도 있다.
실제로 2000년 의약분업 파업 당시 법원은 "의협이 휴업불참 의원에 대해 파업을 설득하고 의쟁투에서 전국적 규모로 규찰대를 조직해 휴업에 참여하는 의사들을 감시했다"며 공정거래법 위반이 성립됐다고 봤다. 즉 의협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의료기관 간의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다만 1심이긴 하지만 지난 3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나온 판례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판부는 2014년 의료계 파업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사건을 맡은 김성훈 부장판사는 "의협이 휴업 결의를 홈페이지를 통해 게재하긴 했지만 직접 휴업을 강요하거나 불이익을 주지는 않았다"며 시장 제한에 대해서도 "파업으로 가격을 제한할 수 없다. 환자들이 불편을 겪을 가능성은 있지만 경쟁제한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둘째, 또 다른 법적 쟁점은 업무방해 여부다. 파업 과정에서 의협이 전공의 등 병원 의료인력에 대한 파업을 강요해 수련병원 외래환자 입원과 수술 등 진료를 방해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2000년 의약분업 파업 당시 법원은 의협이 전공의 파업을 주도해 수련병원 입원환자들의 진료에 물의를 일으켜 조기 퇴원 사태를 일으켰다고 봤다.
법원은 의협이 파업으로 인해 응급실과 중환자실, 수술실 등 필수의료 부서에 전문의와 의대교수만 진료케 함으로써 병원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방해한 것으로 보고 유죄를 인정했다.
셋째, 특히 주목되는 쟁점 사항인 업무개시명령 위반 혐의다.
전국의사 총파업을 앞두고 보건복지부는 지자체와 함께 의원급 의료기관에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일정 이상 의원급 휴진 비율이 높아지면 강제로 의료기관에 진료를 명령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 지자체는 의료기관에 휴진 4일 전에 의무적으로 휴진 여부를 보건소에 필수적으로 신고하도록 했다. 또한 휴진 의료기관이 전체 의원수의 10% 이상일 경우 업무개시 명령을 내려진다. 업무개시 명령에도 불구하고 파업에 참여할 경우, 의료법 제59조 제1항에 따른 진료명령 위반으로 14일 업무정지 처분과 형사고발이 가능하다.
법원은 2000년 파업 당시 업무개시명령이 적법하게 송달된 의사들에 대해서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업무개시명령이 적법하게 송달됐다고 인정되지 않은 사례에 대해선 대법원이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2020년 전국의사총파업, 법률 분쟁 향방은...강제성 없는 자발적 참여
3가지 법률 쟁점 모두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은 있다. 강제성이 아닌 자율적 파업 참여를 강조하고, 일선 의사들은 업무개시 명령을 제대로 받지 않은 상태로 휴가를 적극으로 활용하면 된다.
우선 공정거래법 위반과 관련해서는 노환규 전 회장과 방상혁 상근부회장이 무죄를 받은 최근 판례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사실상 법률적으로 의사 파업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의료전문 변호사 A씨는 "최근 2014년 파업을 주도했던 의협 전 집행부가 무죄를 받은 판례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며 "당시 법원은 의협의 파업 권고를 자율적 참여로 해석했고 의사들의 경쟁을 제한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 사실상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법률적으로 공식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0년 파업 당시 의료계도 처음이다 보니 법률적 준비에서 미흡한 점이 많았다"며 "그러나 이번 파업은 의협 집행부에서도 법률 자문을 제대로 받고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몇 가지 쟁점은 사태를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협이 업무방해 여부와 관련해서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전공의들과 투트랙 파업을 준비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앞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7일 젊은의사 단체행동이라는 이름으로 한차례 파업을 진행했다. 이어 파업에 불씨를 살려 14일 의협 총파업에 전공의가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수순으로 이뤄진다. 전공의 파업과 의협 총파업이 각기 다른 날짜에 진행되면서 의협이 전공의들을 강제로 파업에 동참시켰다는 주장을 면피할 수 있고 자유롭게 전공의들이 파업에 동참했다는 명분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전문 변호사 B씨는 "업무방해 혐의를 해소하기 위해 의협과 대전협이 별개로 파업을 추진했다는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다"라며 "결과적으로 7일과 14일 파업 날짜가 나뉘면서 대전협이 독자적으로 파업을 결정하고 추진했다는 근거가 생겼다"고 말했다.
변호사 B씨는 "파업에 참여하는 의사 입장에서 업무개시명령 위반 부분에 주의를 해야 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의사들에게 소송을 제기하기 힘들기 때문에 의사회 등 주요요직에 있는 의사들이 대표적 타깃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의협은 업무개시명령 위반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의사회원들에게 '정부조치에 대한 대처방안'을 발송했다. 해당 대처방안에 따르면 의협은 업무개시 명령이 있더라도 파업에 참여하도록 권고했다. 특히 보건소에서 행정 등기로 발송했다면 우편물을 개봉하지 말고 그대로 반송하도록 했다.
의협은 공무원이 직접 의료기관이나 자택으로 방문하더라도 직접 수령하지 말고 서명할 의무도 없다는 점을 명시했다. 특히 파업 기간에 휴가를 활용하는 것도 권고했다.
의협이 회원들에게 발송한 각종 문서를 살펴보면 의협은 대처방안 옆에 '권고사항'이라는 점을 명시해 강제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1차 전국의사 총파업 계획서에서 파업 범위가 지역별 필수 응급의료 유지를 원칙으로 하고 자발적인 참여가 원칙이라고 명시돼 있다.
변호사 A씨는 "이전 파업에서 업무개시 명령이 제대로 송달되지 않았다면 무죄라는 판례를 가지고 의협이 법률적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개시 명령이 송달되더라도 파업이 업무개시명령을 정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 사유에 해당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