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대한개원의협의회가 비대면 진료 본사업을 앞둔 정부의 규제 완화 논의가 기존에 합의한 4대 원칙을 사실상 무너뜨릴 수 있다며 반발했다.
정부가 의료계와 재진 중심·의원급 시행·전담기관 금지·대면 진료의 보조 수단이라는 대원칙을 세웠음에도, 초진 허용 범위와 처방일수 등을 둘러싼 논의가 이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개협은 11일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2026 대한개원의협의회 제38차 추계연수교육 학술세미나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히고, 본사업 시행 전에 환자 안전을 위한 제한을 하위법령에 명확히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개협 “4대 원칙 합의했는데 초진 다시 열어…30일 처방 반대”
이날 박근태 회장은 정부와 합의했던 비대면 진료의 기본 방향이 최근 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재진 중심, 의원급, 전담기관을 하지 말고 보조로 하자는 4대 원칙이 이미 결정됐는데 갑자기 기류가 바뀌었다”며 초진 허용과 처방일수 제한을 완화하는 방향의 논의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박 회장에 따르면 대개협은 당초 처방일수를 7일 정도로 제한할 것을 정부에 건의했고, 정부도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제한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평생 한 번 정도 30일 처방을 허용’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현호 의무부회장은 비대면 진료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높이더라도 환자 안전을 위한 규제가 약화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산업 활성화 목적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결합하면 제도가 상업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조 부회장은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를 대체하는 새로운 진료 방식이 아니라 대면 진료의 보조 수단이어야 한다”며 초진 금지와 재진 중심 시행,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 운영, 전담기관을 통한 상업적 악용 방지를 강조했다.
그는 대면 진료에서는 활력징후 측정과 진찰, 필요한 검사 등을 통해 환자 상태를 확인하지만, 비대면 진료에서는 이러한 평가가 제한돼 오진하거나 급성·응급·중증질환을 놓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환자의 처방 요구가 반영되는 과정에서 약물 오남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우려했다.
조 부회장은 “의료 분야는 규제가 한 번 완화되면 다시 복원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국민의 편의성을 위해 환자 안전 규제를 완화하거나, 산업 활성화를 위해 상업적 규제를 완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30일 처방 허용 논의에 대해 회원들의 거부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그는 “30일이라는 기준을 어떻게 정하든 대한개원의협의회와 대한의사협회는 반대 입장”이라며 “이를 진행할 경우 회원들에게 30일 처방을 하지 말라고 거부 선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처방일수 기준에 대한 협의가 진전된 것은 아니며, 현재도 정부와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정부가 제시하는 초진 허용 범위 등을 확인한 뒤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에 대해서는 공동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초진에서 처방을 제한할 약물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박 회장은 항생제·스테로이드·면역억제제 등 초진에서 처방을 허용해서는 안 되는 약물을 정부에 제안했지만, 정부가 이를 다시 논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진 중심 원칙에 대해서는 절대로 흔들릴 이유가 없다”며 “입법화할 때 분명히 네 가지 원칙에 합의했는데도 초진을 이렇게 연다면 회원들에게 하지 말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30%·의사 1인당 500건’ 병행 제한 논의…“보조 수단 취지 지켜야”
비대면 진료 전담기관을 막기 위한 진료 비율과 건수 제한도 주요 쟁점으로 제시됐다.
박 회장은 비대면 진료 비율을 전체 진료의 30%로 제한하고, 의사 1인당 500건 제한을 함께 적용하는 방향으로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진료량이 많은 의료기관에 비대면 진료가 집중될 수 있다는 질문에는 두 기준을 동시에 적용하는 방식이라고 답했다.
그는 의사 1인당 500건을 25일 근무 기준으로 환산하면 하루 약 20건이라며, 비율과 의사별 건수를 함께 제한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야간·공휴일 진료를 제한 기준에 포함할지는 추가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한일반과의사회 좌훈정 회장은 처방일수와 진료 비율에 관한 논의를 비대면 진료의 당초 취지에 비춰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존에 다니던 동네 의원의 환자가 급한 사정으로 방문하기 어려울 때 임시로 진료와 처방을 받도록 하는 것이 비대면 진료의 출발점이었다는 설명이다.
좌 회장은 “30일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 거의 만성질환 처방에 해당한다”며 “만성질환 약 처방은 상황에 따라 보호자 대리처방도 가능하고 방문진료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말로는 일차의료와 지역사회, 방문진료를 활성화한다고 하면서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비대면 진료 비율에 대해서도 기존 환자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임시 처방을 받는 보조 수단이라면, 일반적인 동네 의원에서 비대면 진료 비중이 높아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반적인 동네 의원은 3%도 비대면 진료를 할 이유가 없다”며 “30% 이상을 요구한다는 것은 전담기관을 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좌 회장은 “30% 룰이나 30일 룰은 비대면 진료의 기본적인 원칙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