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지난해 국내 최초로 원격의료만을 학술적으로 다루는 단체가 등장하면서 의료계와 학계, 산업계를 모두 놀라게 했다. 원격의료에 부정적이었던 그동안의 의료계 분위기 특성상 원격의료에 특화된 의료계 단체의 설립 자체가 이슈화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논란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원격의료학회다. 원격의료학회는 지난해 3월 학문 연구를 위한 연구회로 시작해 두 달 뒤 곧 바로 학회로 발전됐다. 현재 학회는 원격의료, 원격수술, 원격모니터링 등 각종 심포지엄과 국회 토론회 개최 등 활발한 학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학회는 집행부 구성에 있어 학계와 산업계가 절반씩 배치될 수 있도록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원격의료학회 박현애 초대 회장은 서울대 간호대 교수로, 세계의료정보학회 회장과 대한의료정보학회 회장을 역임한 의료 정보화 분야 권위자다. 그러나 그도 의료계 내부에서 최초로 원격의료 관련 학회장을 맡는 것에 대해선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한다. 의료계 내 반대 분위기가 아직 거세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세계적인 추세나 환자 니즈 등을 고려했을 때 원격의료의 확대는 점차 가속화될 것이라는 게 박 회장의 분석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원격의료를 통해 진료 파이 자체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의원급 의료기관에 정책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의료계 유인책과 법률적 제도 개선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봤다.
의료계도 원격의료를 통해 새로운 수익창출에 성공하고 정부도 궁극적으로 건강관리와 질병 예방을 통해 의료비 절감에 성공하는 윈-윈 모델이 정착돼야 진정한 의미의 원격의료 확대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원격의료 확대에 있어 큰 걸림돌로 지목되는 플랫폼 독점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미국 사례를 봤을 때, 오히려 플랫폼 독점이 아닌 플랫폼 세분화의 양상으로 흘러갈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박 회장은 아직 원격의료로 인한 의료의 질과 안전성 등을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 데이터 조차 나와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확대 주장은 옳지 않으며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 기업들의 원격의료 시장 진출로 인한 변수 등 우려할 점도 많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국원격의료학회 박현애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국내에서 최초로 원격의료 학회가 만들어진 취지와 설립 관련 뒷이야기가 있다면?
원격의료의 확대 흐름 속에서 관련 데이터와 세계적 트렌드를 학술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강대희 서울의대 교수와 황희 전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등이 주축이 돼 원격의료 스터디 그룹을 만들기로 하면서 6개월 정도 연구 활동이 진행되다 원격의료학회의 전신인 원격의료연구회가 2021년 3월 만들어졌다.
연구회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 코로나19 이후 원격의료가 본격 도입되면서 의료계 내부적으로 굉장히 예민한 시기였다. 이 때문에 직접적 당사자인 의사보단 의료정보학 전문가인 제가 회장을 맡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초대 회장을 맡게 됐다.
첫 발족부터 의사단체 등 의료계의 굉장한 반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해 부담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창립 총회 당시 원격의료 반대를 주장하는 의사들의 저지활동이 염려됐지만 오히려 300명이 넘는 전문가들이 창립 총회에 참여하는 등 의료계와 산업계 모두에서 굉장한 호응이 있었다. 많은 이들의 관심에 힘입어 연구회를 학회로 발전시키게 됐다.
전반적인 임원급 조직은 학계와 산업계 인사들이 반반씩 포진돼 있다고 보면 된다. 학계에선 전문과목별, 산업계에선 분야별로 위원회가 나눠져 있다. 실질적인 회원은 약 200명 정도 되는데 학계에선 학생들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전체 구성원 비중을 따져보면 80% 정도가 학계라고 볼 수 있다.
Q.원격의료 바라보는 학회 내부 의견은?
학회는 기본적으로 학술적인 부분과 연구를 위한 단체다. 특히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원격의료가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입장을 발표할 때도 굉장히 중립적인 시각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학회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정책적 방향성을 제시할 뿐이지, 정치적으로 당장 원격의료를 도입하자는 식의 급진전인 주장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다만 학회 구성원 개개인을 보면 원격의료 도입이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는 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Q. 코로나19를 계기로 전화처방과 상담 등이 한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현재 비대면진료 추진 상황을 평가한다면?
어떤 잣대를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양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전화상담과 처방 건수가 320만 건을 넘었고 참여 의료기관도 많다. 소비자인 환자들도 80% 이상 만족한다는 점을 봤을 땐 나쁘지 않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의사들의 만족도가 낮다는 점과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 분야인 만큼 양적인 수치 이외 질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원격의료 실시로 인한 의료의 질과 안전성의 관점에서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나 데이터가 아직 없다 보니 원격의료를 현재 시점에서 평가하긴 아직 시기상조라고 본다.
현재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주도로 관련 연구가 얼마 전 발주된 것으로 아는데, 해당 연구에선 만족도 이외에 대면과 비대면진료를 초진과 재진 환자를 나눠 의료의 질, 진료 시간, 안전성의 변화를 관찰하고 의료기관 종별에 따라서도 어떤 변화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Q. 원격의료 추진에 따른 의료계 내부 변화가 있다고 보는지?
의료계도 많이 바뀌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개원가를 대표하는 서울시의사회에서도 관련 연구회를 만든 것으로 알고 최근엔 은평성모병원 등 병원 경영자들끼리 원격의료 관련 조직을 만든다는 소식에 자문을 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학회에 관심을 갖는 의료계와 학계 회원들의 숫자를 보면 원격의료에 대한 큰 관심을 입증하는 것 같다.
원격의료라는 단어조차 예전엔 공개된 자리에서 쓰는 것이 금기 시 됐었는데 지금은 인식 자체도 많이 달라졌다. 산업계에서도 굉장히 많은 투자가 이뤄졌고 지금도 많은 투자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Q. 의료계 내부에서 원격의료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는 이들도 많다.
너무 좁은 의미에서만 원격의료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과거엔 아픈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와야 의료기관 입장에서 수익을 낼 수 있었지만 원격의료가 본격화되면 건강한 사람의 건강 유지를 위한 모니터링, 만성질환자 관리, 병원에 오기 힘든 환자 등 새로운 그룹의 유입이 이뤄지면서 오히려 전체적인 진료의 파이가 커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국가 전체적으로 봐도 중증 환자가 되기 전에 환자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니 전체 의료비가 줄어들고 국민들 입장에서도 건강을 지킬 수 있어 좋다.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원격의료 도입이 굳이 반대만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Q. 코로나19 이후 한시적으로 허용된 원격의료의 정책의 향방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지?
지금처럼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다. 세계적인 흐름을 보면 안다. 우선 해외 사례를 봤을 때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코로나19를 계기로 재진 환자만 허용했던 것을 초진까지 확대하고 원격의료 서비스 자체도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또한 환자들의 요구도 변하고 있다. 원격의료의 접근성, 편의성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원격의료를 갑지기 제한한다고 했을 때 큰 반발이 예상된다. 의료계 입장에서도 우려했던 환자 쏠림현상도 발생하지 않았고 현재 일차의료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전화처방이나 최근 확대되기 시작한 재택치료 모니터링 등이 끝나게 되면 수익이 코로나19 때보다 줄어드는 곳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오히려 의료 현장에선 원격의료 도입을 주장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Q. 현재 원격의료 관련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해당 법안들에 대한 평가는?
기본적으로 찬성한다고 학회 차원에서 의견을 냈다. 다만 해당 법안들에선 교도소나 도서지역을 위주로 지역을 한정하고 있는데 최근 원격의료 활용 통계를 봐도 도시에서 원격의료를 받은 환자들이 많았다. 도서지역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원격의료를 활용할 수 있는 절대적인 숫자 자체가 굉장히 적을 수밖에 없다. 제도는 도입됐는데 이용자가 거의 없다면 필요성이나 실효성 측면에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제한적인 부분부터 제도를 도입시켜 천천히 확대시켜 나간다는 측면에선 도서지역, 의원급, 재진환자부터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부분은 긍정적으로 본다. 다만 점진적으로 도시에서도 필요시 원격의료가 가능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또한 원격의료가 오히려 일차의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원격의료로 인해 의원급 만성질환 재진 환자부터 시작해서 주치의 제도처럼 일차의료기관에서 경증 환자를 꾸준히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제도가 정착된다면 보다 안정된 의료전달체계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Q. 법안 내용 중 정부 지원책이나 책임소재 문제도 포함돼 있다. 해당 부분에 대한 견해는?
당연히 장비 부분은 정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100% 지원은 못하더라도 일부 보조를 통해 의원급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향후 정부의 최대 과제다. 또한 원격의료가 가능하기 위해선 통일된 플랫폼이 필요한데 플랫폼 표준화를 위한 가이드라인과 프라이버시 문제 해결 등도 선결과제다. 의사의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정의하고 환자의 프라이버시 보호도 당연히 필요한 부분이다.
Q. 원격의료를 위한 플랫폼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플랫폼 독점을 우려하는 시각에 대해선?
플랫폼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다. 원격의료가 확대되면 당연히 플랫폼 기술은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등 세계적인 흐름을 보면 플랫폼 독점보단 오히려 분야별로 플랫폼이 세분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어 피부과는 피부 병변을 자세히 보기 위한 장비에 특화된 플랫폼이 존재하게 될 것이고 정신과는 환자와의 소통에 좀 더 중점을 두는 플랫폼이 정착될 것이다. 또한 교육도 원격의료에 포함되는 부분인데 한 번에 많은 의대생이나 전공의가 접속하고 실시간으로 다양한 화면이 전송될 수 있는 브로드밴드 기술이 필요한 분야엔 이에 맞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즉 오히려 원격의료가 확대되면 플랫폼 독점보단 플랫폼 특화가 일어난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만 현재 네이버나 카카오에서 디지털 헬스 부서를 만들어 원격의료에 뛰어들고 있다. 대기업의 헬스케어 진출이 원격의료 판도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대목이다.
Q. 산업계 변화 동향도 파악되고 있나?
변화가 시작됐고 앞으로도 굉장히 급격하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원격의료, 디지털 치료제 등 기술이 제대로 인가를 받아 보험이 적용되거나 하는 경우가 없다. 반면 미국에선 이를 하나의 의료 기술 혹은 기기로 취급해 수가도 책정되고 하나의 산업으로 정착되고 있다. 조만간 우리나라도 그런 흐름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국회에서도 디지털 치료제 등 시장 확대를 위해 규제를 축소하는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
Q. 원격의료 관련 해외동향은?
해외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 최근 연구들을 조사하고 깜짝 놀랐다. 코로나19 이후 미국에서만 원격의료 시행 숫자가 38배나 늘었고 원격의료 관련 투자가 2021년 상반기에만 총 147억 달러(17조6000억 원)에 달했다. 이는 2020년 전체 투자액인 146억 달러보다 많고 2019년 투자액(77억 달러) 대비 거의 2배 수준이다. 영국은 아예 국민의료보험인 NHS에서 정부 주도로 원격의료 플랫폼을 개발해 일반의들이 사용할 수 있게 제공하고 있다.
Q. 원격의료를 둘러싸고 선결과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와 의료계의 역할은?
의료계와 정부가 먼저 신뢰 관계를 회복하고 국민의 건강을 위해 원격의료가 하루 빨리 정착될 수 있도록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하루 빨리 시작해야 한다. 먼저 정부는 의료계 전문가들과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 원격의료 도입에 필요한 과제와 부작용 방지 대책 등을 빠르게 해결하고 장비 지원이나 플랫폼 등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원격의료의 안전성과 효과성을 입증할 수 있는 연구를 통해 근거 데이터가 확보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다.
의료계는 원격의료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허용 범위나 각 과별 특성을 구분해야 한다. 신경외과, 내과, 피부과, 정신과 등 전문과목별로 원격의료 도입이 용이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과도 있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원격의료를 이용한 정신과 의사 방문 빈도가 다른 과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과별로 원격의료 도입에 따른 선행과제가 다르고 허용 범위, 대상 질병 등도 다르다. 이런 부분은 정부에서 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문학회나 대한의사협회가 나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이에 따른 수가체계와 지원책도 구상해야 한다.
Q. 국내 원격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의료계 내 수익성이 담보돼야 의료기관들의 참여가 확대되고 빠른 도입과 확산이 이뤄질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원격의료 보험수가 현실화 등 어떻게 하면 원격의료를 통해 의료기관들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의사단체도 원격의료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확장해 전체 파이를 키워 수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상생 구조를 모색해야 한다. 원격의료를 확대하면서 오히려 파이가 커진다면 반대하는 의사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Q. 학회의 향후 행보는?
올해 4차례 심포지엄을 계획하고 있다. 원격재활과 원격정신의학, 원격진단, 원격간호가 주제다. 또한 스마트병원과 원격환자모니터링, 원격영양, 원격환자관리 등을 주제로 두 달마다 한 번씩 미래 의료포럼도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