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지난해 강병원·최혜영 의원(더불어민주당)에 의해 발의된 비대면진료 확대와 관련한 의료법 개정안이 매우 불합리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법률적 모호성이 많을 뿐더러, 부작용이 많고 어떤 방향이 됐든 의료인에게 법적인 책임을 과도하게 전가시키는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는 취지다.
고대안암병원 유승현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지난 20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계간의료정책포럼에서 이같이 밝혔다.
비대면진료 개정안, 대상 질환 범위 제한·책임소재 예외조항 문제 있어
우선 유 교수는 개정안이 원격의료의 대상 질환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재 발의안에 따르면 고혈압과 당뇨병, 부정맥과 같은 질환에 국한해 비대면진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한했는데 이 부분이 법률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대상 질환의 범위 제한은 환자의 진료선택권과 건강권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양상으로 위임 입법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원격모니터링과 관련해서도 '관찰'과 '상담' 등 책임을 정의하는 조항에서 '진료'로 혼용해 사용하는 등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개정안은 책임 소재와 관련해서 다양한 예외조항을 뒀는데 이 부분도 문제로 지적됐다.
유 교수는 "환자가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다거나 장비의 결함, 통신 오류 등이 예외조항으로 거론됐다. 그러나 환자의 책임을 의료법으로 규정한 사례를 외국법에서 찾기 어렵다"며 "장비결함은 귀책사유에 따라 제조자에게 일정부분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경우가 있어 의료과오책임이 아니라 의사의 책임을 면제하는 사유로 의료법에서 다루기 적절치 않다"고 질타했다.
이어 그는 "현재의 법조항을 보면, 본인 확인의 절차에 대한 내용이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초・재진에 대한 제한이 없고, 의사의 판단에 따라서 안전성의 확보가 되는 경우에 시행할 수 있다고 해 의료인에게 법적인 책임을 과도하게 전가시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즉 향후 어떤 방향이든 의사가 대면진료와 다른 제한된 환경에서 진료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많은 의무와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유 교수의 견해다.
취약층 대상 원격의료 적절한가?…불필요한 비대면진료 수요도 막아야
발의된 개정안에서 비대면진료를 의료소외지와 의료취약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대상자들이 우울감과 무력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고 이들이 오히려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동기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적절한 최선의 진료 기회를 놓치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고혈압과 당뇨병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유병 기간과 동반 질환에 따라서 환자가 가진 질환의 중증도는 크게 다를 수 있다"며 "반복적으로 안정적인 약물을 처방 받아온 만성질환자의 경우라도 누적된 위험요인들로 인해 예기치 못하게 갑자기 악화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만에 하나, 환자들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원인이 되는 질환에 대한 검토의 시기를 놓치고 증상을 감소하기 위한 약물 처방에 의존하다가 오히려 적기 치료의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유 교수는 "의료취약지 의료접근성 문제는 오히려 대면진료의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국가가 정책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며 "사회경제적 곤란과 신체・정신적으로 움직이기 어렵다고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게 되면, 오히려 역차별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다양한 문제들로 인해 단순히 기존 의료법 하나를 개정하는 것 보단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유승현 교수가 내놓은 해답이다.
그는 "단순히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범위와 책임을 명시한 기존 의료법의 개정으로 접근하는 것보단 건강보험법과 배상을 다루는 법령들을 포함한 포괄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의료가 갖는 속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한 합의가 필요하고 의료사고 주체의 다양화로 새로운 유형의 의료사고의 발생을 예상해 책임분배를 위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그는 "비대면 진료 제도 추진을 위해선 의료계와의 합의를 통한 분명한 원칙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가이드라인의 개발과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위해서라도 불필요한 비대면 진료 수요를 유발하는 요인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선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