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내시경 경험이 없는 내과 전공의, 한 번도 수술을 집도해 본 적 없는 외과 전공의. 개발도상국 전공의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나라 전공의들의 현실이다.
주 80시간 근무와 내실 없는 수련체계에 질린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증원과 맞물려 집단 사직하면서 전공의를 ‘수련의’로 바라보지 않는 우리나라 전공의 수련체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결국 정부가 양질의 전문의 양성을 위해 전공의 수련체계에 재정 지원을 함으로써 지도 전문의들은 충분히 교육에 힘쓸 수 있도록 해 전공의 수련·근무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다.
14일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의료인력전문위원회가 개최한 '전문의 수련 내실화 방안'을 주제로 공개토론회에서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진료 수익’에 매몰된 지도전문의, 인턴‧전공의 수련 뒷전…인턴 수련 전담 기구 필요
이날 발제를 맡은 대한의학회 박용범 수련이사는 정부의 지원 없이 수련병원에게 맡겨진 우리나라 인턴 수련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수련이사는 "우리나라는 인턴 수련프로그램을 수립하고 실행, 관리하거나 인증하는 기관이 없고 수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책임을 수련병원에게 묻고 있다"며 "그렇다 보니 수련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으며, 진로 탐색 또한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체계적이지 못한 인턴 수련환경으로 인해 임상 현장에서는 인턴 업무와 무관한 업무지시가 이뤄지고 있고, 그로 인해 인턴들이 주 80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하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수련이사는 "문제는 이처럼 인턴들이 수련 초기에 제대로 체계적인 사전 교육이나 충분한 연습 기회 없이 술기를 환자에게 시행하면서 환자 안전에 위협을 가한다는 점이다"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박 수련이사는 인턴에 관심이 없는 지도 전문의를 탓하기에는 지도 전문의들이 수련병원에서 하는 역할이 '진료'에 치중돼 있고, 그 외에도 연구, 논문, 학회, 전공의 교육, 학생 교육까지 할 일이 너무 많아 인턴 교육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박 수련이사는 "무엇보다 인턴 수련을 전체적으로 담당하는 전담 기구가 필요하다. 인턴이 내실 있는 수련 교육을 받으려면 적절한 교육과 평가 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다. 또 관행적인 잡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다만 수련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한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수련프로그램의 질이기에 그를 좌우하는 수련프로그램의 내용, 지도 전문의 평가 운영, 재원 지원 시스템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은 전공의 수련교육과 지도 전문의 지원에 약 22조원을 투여하고 있으며, 영국은 전공의 교육 훈련비와 책임지도전문의 교육비에 연간 2~3조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었다. 호주도 연간 인턴 수련 교육에 3000억원을 일본도 1000억원을 투자하고 있었다.
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에 양질의 수련 불가…정부 지원으로 적정 수련시간‧수당 확보해야
이어진 토론회에서 대한내과학회 김대중 수련이사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이 이슈가 되면서 주 80시간 근무를 주 60시간 근무로 줄이는 등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 지도 전문의들은 그간 상당수의 전공의에게 입원환자 진료를 의존해왔고, 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 및 근무 여건 개선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김 수련이사는 "학회로서는 전공의 근무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과연 그 시간 안에 내실 있는 교육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크다. 충분한 교육을 통해 양질의 전문의를 배출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큰데, 결국 미국의 제도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미국은 전공의를 철저하게 피교육자로 인식한다. 그 이유는 정부가 수련병원에 20조원에 가까운 돈을 지원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수련병원에 충분한 재원을 주고 전공의를 양질의 전문의로 양성하라고 하기 때문에 전공의는 이제 수련병원의 학생과 같은 신분이 되고, 그에 따라 철저히 교육적인 요소로 프로그램 세팅이 가능하다"며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대학병원 전체 의사의 30~40%를 차지하는 전공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다 보니 양질의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내과 전공의들은 전문의를 딴 후 개원할 수 있을 정도의 수련이 필요하지만, 상급종합병원에서 중증환자를 주로 본다. 이에 전공의들은 정작 내시경, 초음파 등 비교적 경증의 내과 환자를 경험하지 못해 교육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김 수련이사는 "결국은 전공의 수련 내실화 방안은 정부가 교육비를 전적으로 대고, 대신에 교육 학생으로서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도록 해야 한다"라며 "문제는 일선 학회와 교수들이 정부를 믿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돈을 얼마나 쓸 것인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했다.
인천사랑병원 김태완 이사장도 "규모가 큰 병원일수록 전공의 과정에서 특정 분야의 환자 또는 특정 과에 배치돼 세부 분야의 환자들을 많이 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전공의 때 배워야 할 술기, 외과 계열의 경우 수술 등에 대한 경험이 굉장히 빈약하다"며 "실제로 내시경을 몇 번 안해보거나, 외과 계열인데 집도 경험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전임의 제도가 생기면서 전임의에게 업무가 주어지다 보니, 전문의의 업무가 또 전임의에게 나눠져 전임의에게 조차 시술, 수술 기회를 안배하기 힘들다"며 "그런 차원에서 정부의 다기관 협력체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TO에 대해서는 다른 병원의 TO를 뺏어오는 게 아니라 특별히 TO를 확대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또 각 기관에서 전공의들이 일하다 생기는 사고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이들에 대한 월급 지불의 문제 등이 남는데, 다기관 협력체계가 자리를 잘 잡는다면 전공의에게도 좋고, 의료기관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인제대 일산백병원 이성순 원장은 "인턴 TO가 5명 이하인 병원은 없어져야 한다"며 "인턴 수련 병원은 적어도 10명 이상을 데리고 집중적으로 교육을 해야 수련의 질도 좋아지고, 전공의의 근무 조건이 더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그간 정부는 인력이 부족한 병원에 전공의 인력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전공의를 지역 병원에 보냈는데 이러한 방식은 지향해야 한다. 실제로 병원을 보면 연차별 정원이 1명인 병원이 수두룩하다"며 "전공의들이 주 80시간을 지키면서 당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마이너 과라고 하더라도 정원을 2명 이상은 줘야 전공의 10명이 제대로 된 교육도 하고 주 60시간 근무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