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분만 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 재원을 정부가 전액 부담하는 법안 심의를 환영한다. 매년 약 30명의 산모 사망과 약 400명의 신생아 사망 사건 분쟁의 해결은 의료분쟁조정원이 아닌, 분만 산부인과와 합의하거나 소송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오는 6~7일 제1·2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과 이정문 의원이 각각 발의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 개정안’을 상정, 논의한다고 밝혔다.
신현영 의원 발의안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재원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으며, 이정문 의원 발의안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재원의 분담 관련 현행 규정을 삭제해 국가가 전액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현재 산과 무과실 보상 제도에 따르면 시행령 상의 보상비용 분담 비율은 국가가 70%, 분만의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30%를 분담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무과실 혹은 불가항력적 상황, 즉 의사의 책임이 없어도 의사에게 비용을 분담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민법상 '과실 책임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담금의 법적 성격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의료기관 개설자가 부담해야 할 30%는 법률 용어상 특별 부담금의 요소가 강한데, 이는 헌법재판소에서 규정하고 있는 부담금의 네 가지 요건(집단적 동질성, 객관적 근접성, 집단적 책임성, 집단적 효용성)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 또한 부담금의 경우 부과 요건, 산정기준,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규정되고 명시돼야 하지만, 이 법률에는 부담 주체만 규정하고 있을 뿐 다른 세부사항은 대통령령에서 규정하도록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있어 포괄위임입법금지의 원칙에도 반하고 있다.
산모·신생아 사망 대비 의료분쟁 조정 신청건수 저조한 건? 합의 또는 소송
2020년 신생아 수 연간 30만명이 무너지고 합계출산율이 충격적인 0.84로 집계되면서 대한민국의 실질 인구 감소가 시작됐다. 2020년에는 27만 2300명의 신생아가 태어났고 2021년에는 26만 562명의 신생아가 출생했다.
가임 여성(15~49세) 1명당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코로나 이전 2019년 0.92명에서 2020년 0.84명, 2021년 0.81명으로 감소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출생아 수 역시 19만2223명에 그쳐 합계출산율은 사상 처음으로 0.7명대로 25만명 내외 가능성이 많다. 2021년 연간 합계출산율은 0.81명에 불과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1.59명의 절반 수준으로, 도시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런 출생의 이면에는 분만하는 동안에 불가항력적인 분만 사고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0년 기준 국내 임신·출산 합병증 등으로 숨진 모성 사망비는 출생아 10만 명당 11.8명으로 OECD 가입 국 평균(8.9명)보다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실제로 2020년 출생아 수는 27만 2300명이라면 약 30명의 산모가 사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신생아 사망 자료를 살펴보면 영아사망률 통계청 자료는 출생아 1000명당 신생아사망률은 1.5명으로 최근 몇 년간 동일하다. 이는 산모사망과 같은 해 2020년 자료를 출생아로 환산하면 약 400명의 신생아가 사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의료분쟁조정원의 수년간 불가항력 분만사고 현황을 살펴보면 분만사고로 접수된 166건 중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령 제22조의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대상에 해당되는 사건은 80건에 불과했다. 구체적인 자료가 확인되지 않지만, 2016년에 12건의 신생아 사망 사건 조정신청이 있었다면 이후에도 그리 크게 증가 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산모 또는 신생아 사망건의 분쟁의 해결은 분쟁원이 아닌 분만 산부인과 의원과 합의하거나 소송으로 갔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
사라지는 분만 산부인과, 의사들은 의료사고 우려로 기피
현재 운영하고 있는 제도처럼 산부인과의사들이 과실이 없는데도 불가항력 분만사고에 보상 재원을 분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일반 출산 과정에서 태아 기형의 빈도는 2~3%, 조산의 빈도는 7~10%, 임신성 당뇨, 임신성 고혈압 질환의 빈도는 3~5%, 자궁 내 태아 사망의 빈도도 약 1/200의 확률로 존재한다. 더구나 이러한 병적인 상황들은 항상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사고가 발생하게 될 때 의료진과 산모의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더욱이 고위험 임신의 증가는 태아 이전에 산모의 건강권을 위협해 산모사망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조기 진통 △조기 양막 파열 △분만 후 출혈 △전치 태반 △임신중독증 등 '고위험 임신 8대 질환'으로 입원한 임산부는 지난 2009년 2만 7223명에서 2019년 7만 895명으로 급증했고 이는 자연히 '모성 사망'과도 연결된다.
분만 위험은 높아지고 있는데 저출산과 맞물려 분만 산부인과 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3년 1371개소이던 분만병원은 2021년 487개소로 64.5%나 줄었다.
한 해 분만 건수가 '0'으로 인프라가 붕괴 수준인 지역들도 적지 않다. 전국 20개 시군구에 산부인과가 없으며 산부인과는 있지만 분만실이 없는 지역은 43곳이다. 2017년 기준 강원과 제주의 모성 사망 비는 각각 10만 명당 33.5명, 19.9명으로 전국 평균(7.8명)보다 4.3배, 2.6배 높았다.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전국 산부인과 의사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한 전문의 중에서 분만을 담당하지 않는 경우는 절반 가까운 42.4%(684명 중 290명)로 조사됐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도 분만을 맡다 그만둔 이유로는 '의료사고에 대한 우려 및 분만 관련 정신적 스트레스'(38%)가 가장 많이 꼽혔다. '실제 의료사고 및 소송 발생 건을 계기로 분만을 접어야 했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분만을 할 수 있는 산부인과가 다 사라지기 전에 산부인과 의사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법률 개정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산모와 신생아의 안전을 위해 더 이상은 늦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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