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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 속 미래 준비하는 소아과…韓 주도로 아시아 소아연구 부활

    14년 만 국내서 ASPR 국제학술대회 개최·34개국 1300여명 참석…국제 공동연구 확대·젊은 의사 육성 모색

    기사입력시간 2026-10-21 15:40
    최종업데이트 2026-10-21 15:45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김한석 이사장이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전공의 부족과 의료진 이탈로 위기에 처한 소아청소년과가 국제 학술대회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이 침체됐던 아시아 소아 연구 네트워크에 주도적으로 활력을 불어넣으며, 젊은 의사들에게 소아청소년과의 미래 비전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21일 서울 롯데호텔월드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날부터 23일까지 열리는 제19차 아시아소아청소년과학연구회(ASPR) 국제학술대회와 제76차 추계학술대회의 개최 의미 및 향후 발전 방향을 설명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34개국에서 약 1300명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연구자가 참석하며, 총 529편의 연구 초록이 발표된다. 미국, 유럽, 일본 소아연구 관련 학회 수장들도 참석해 국제 공동연구와 차세대 연구자 양성 방안을 논의한다.
     
    ASPR은 2005년 일본 주도로 출범한 아시아 지역 소아 연구 네트워크다. 한국에서는 2012년 처음 개최됐으며, 이번이 14년 만의 국내 개최다. 코로나19 팬데믹 등을 거치면서 활동이 위축됐다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국제 연구협력 재활성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김한석 이사장은 "소아의료를 둘러싼 환경이 만만치 않지만 언제까지나 어려운 현실에 대한 이야기만 할 수는 없다"며 "학회 본연의 역할인 학술과 연구에도 소홀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올해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고 했다.
     
    이어 "소아 연구는 앞으로 국제화하지 않으면 발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미국과 유럽 소아연구학회에서도 아시아와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희망하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가 국제 공동연구와 협력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창원 학술이사는 이번 ASPR 개최를 침체됐던 아시아 소아 연구 네트워크의 부활이라고 평가했다. 최 이사는 "소아청소년과는 질환이 다양하고 개별 질환 환자 수가 적어 한 의료기관이나 국가가 단독으로 연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공동연구가 특히 중요한 분야"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국내에서는 주로 미국과 유럽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진료해 왔지만 아시아는 유전적 특성과 질병 양상, 사회적 환경 등에서 서구와 차이가 있다"며 "저출산과 같은 공통의 문제도 있는 만큼 아시아 지역의 소아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히 "이번 ASPR 2026은 한국이 아시아 소아 연구 네트워크를 주도하고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진료 부담에 연구 여력 없지만…명맥 이어가는 국내 소아 연구
     
    문제는 국내 소아청소년과의 연구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공의 부족으로 대학병원 교수들이 직접 야간 당직까지 담당하면서 연구와 교육에 투입할 시간과 역량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우리나라 소아청소년과는 일상적인 진료 부담이 너무 크다 보니 연구할 여건을 갖춘 곳이 많지 않다. 특히 지방에서는 연구 자체를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인 곳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과거에는 소아 연구에 대한 연구비 자체가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찾아보면 확보할 수 있는 재원이 어느 정도 있다"며 "문제는 연구비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진료 여건이 너무 어려워 연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학술대회에 참석한 교수들 가운데는 전날 밤 당직을 선 뒤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행사장을 찾은 이들도 있었다.
     
    최 이사는 "과거와 달리 전공의가 부족하다 보니 교수들이 직접 당직을 서는 경우가 많다. 밤새 당직을 서고 학술대회에 와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교수들도 있다"며 "의료인력 부족으로 학문적 활동 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학회는 국내 소아 연구의 경쟁력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이번 학술대회 연구 발표자와 세션 연자의 약 3분의 2가 국내 연구자다.
     
    최 이사는 "소아청소년과 연구 역량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국내 소아 연구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연구의 명맥이 끊길 정도는 아니다. 여전히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고,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국내 연구자들이 충분한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학회는 의료기관 간 공동연구와 국제협력 확대가 현실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신생아네트워크(KNN)다.
     
    김 이사장은 "일본은 개별 의료기관의 환자 수가 많지 않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네트워크와 레지스트리를 구축해 공동연구를 발전시켜 왔다"며 "우리나라도 KNN을 통해 신생아 분야 연구 성과가 비약적으로 늘었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와 국제 공동연구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지방의대는 교수 1~2명만 남기도…학문 연속성 지킬 골든타임 지나
     
    다만 학회는 지방 의과대의 소아청소년과 교육·연구 기반 붕괴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문진수 기획이사는 "소아청소년과에는 소아소화기, 소아내분비, 신생아, 소아혈액종양 등 9개 공식 세부분과가 있는데, 이들 분야의 교수진을 모두 갖춘 의과대학은 전국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라며 "일부 지방 의대는 정식 교원이 한두 명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수가 두 명밖에 없으면 자기 전공이 아닌 분야까지 포함해 소아청소년과 전체 강의를 담당해야 한다. 일부 의대는 사실상 교육체계가 붕괴된 상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며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곳도 있다. 이제는 CPR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촉구했다.
     
    소아청소년과 세부분과 전문의 부족도 심각하다. 김 이사장은 소아혈액종양 등 일부 분야에서 기존 전문의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후임자를 확보하지 못해 지역 거점병원의 진료체계 유지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가 줄면서 세부분과 전임의로 진출하는 사람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며 "전공의뿐 아니라 전임의 과정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경배 회장도 "지방에서는 이미 진료 영역부터 무너지고 있다. 교수들이 진료에 매달리다 보면 연구자로서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고, 여기에 학생 교육까지 담당해야 하니 한계를 느끼는 것"이라며 "의대 증원과 휴학생 복귀로 학생 수가 늘어난 상황에서 임상실습 단계에 진입했을 때 제대로 교육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어려울수록 학회 본질 찾아야"…젊은 의사들에 미래 비전 제시
     
    학회는 이런 위기가 오히려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해야만 하는 이유라고 판단했다. 젊은 의사와 의대생들에게 소아청소년과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문 이사는 "이번 국제학술대회에는 전국 의대생들과 전공의들도 많이 참석했다"며 "진료뿐 아니라 연구와 교육에서도 미래의 비전을 보여줘야 소아청소년과에 들어오는 젊은 의사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최 이사도 "어려울 때일수록 본질을 찾아야 한다. 학회는 결국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후속 세대가 들어올 수 있도록 소아청소년과의 미래와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학회는 이를 위해 이번 국제학술대회에 의대생들이 무료로 등록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며, 앞으로 젊은 연구자에 대한 연구비 지원과 학술상 수여 등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학술대회 운영 방식 역시 일반 연제 발표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전문 분야를 아우르는 미니 심포지엄 중심으로 개편했다. 입원전담전문의 등 변화하는 의료인력 구성에 맞춰 새로운 교육 수요에도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김 이사장은 "지금까지는 전공의 교육에 집중하고 연구 지도는 개별 대학이나 병원에 맡겨온 측면이 있다"며 "앞으로는 40세 미만 젊은 의사와 연구자들이 학술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