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의료산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에서 잘 나갑니다. 향후 몇 년간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한국 의료수준도 최고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10년 뒤에도 잘나갈까’에 대한 물음에 자신이 없습니다. 네이버 역시 한 발 늦은 감이 있지만 기술 기업으로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상헌 네이버 전 대표이사는 15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진화하는 데이터’를 주제로 열린 대한의료정보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전 대표는 변호사 출신으로 LG전자 부사장을 거쳐 2009년 4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네이버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는 네이버 경영고문과 국립극단 이사장, 우아한형제들 사외이사, 네이버 사내카페 대표이사 등을 맡고 있다.
세계는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기회는 많아
김상헌 전 대표는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의 기회를 많이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외국에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무작정 들여오는 것만으로는 성공 기회를 잡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김 전 대표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놓고 보면 그 나라의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잘될 수 있는 환경이 있다”라며 “네이버 초기에 지식인을 통한 질의응답이 성공적이었지만, 네이버 설립 당시(1999년 6월) 검색해볼 수 있는 한글문서가 5만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를 뛰어넘어야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병원 정보 조회부터 예약까지 가능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시도를 해보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네이버 서비스로 의료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김 전 대표는 “머신러닝이나 빅데이터 기술, 인프라 발전 등에 따라 의료정보 분석에 소요되는 시간이 급격히 단축되고 있다”라며 “이런 기술이 나온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기술의 발전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다”고 했다.
김 전 대표는 “앞으로 5년, 10년, 15년 뒤에서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 말 한마디로 송금을 하거나 구글 딥마인드의 새 인공지능 '알파고 제로'가 일상에 다가올 수 있다”라며 “의료 분야의 여러 책을 보면('의료, 미래를 만나다'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등) 국제학술지를 25억달러에 볼 수 있거나, 유전체 분석기업 23앤드미의 서비스를 99달러에 활용하는 등 기술이 일상에 깊숙히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스마트헬스케어 시장의 잠재력을 확인한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 진출과 투자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알리바바,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인텔, IBM 왓슨 등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고, 미국은 헬스케어에 두 번째로 높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밝혔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구축과 협업이 관건
김 전 대표는 “아무리 뛰어난 기술 기업이라도 신뢰성 높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다면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라며 “네이버가 어렵게나마 이 싸움에 뛰어들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외부에서 데이터에 접근하기 어려운 의료정보 특성상 글로벌 기술기업들은 의료기관과 적극적인 협업관계를 구축하고 있고 네이버도 그렇게 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가 제시한 예시를 보면, 구글은 미국의사협회(AMA)와 데이터 공유를 통한 솔루션 확보에 나섰다. 일본 보험사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실리콘밸리로 진출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는 영국 NHS(National Health Service, 국가보건서비스)에서 급성신장 손상(AKI)에 긴급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네이버 역시 의료기관, 스타트업과 긴밀히 협업해 미래 핵심기술 확보에 돌입했다. 김 전 대표는 “의료기관 외부에 데이터를 둘 수 있도록 허용됐다. 데이터가 중요하다고 해서 의료기관이 개별적으로 데이터를 구축하기는 매우 어렵다”라며 “네이버는 분당서울대병원, 대웅제약과 일단 데이터를 모아보자고 했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여러 기관과의 협업 체제에 클라우드 서비스와 비즈니스 플랫폼이 들어갈 수 있다. 유전자 분석 서비스도 포함될 수 있다”라며 “네이버는 유전체분석 기업 신테카바이오와 손잡고 인공지능(AI) 기반의 유전자 분석 플랫폼도 개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한국이 보유한 세계 최대 수준의 의학기술과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미래 기술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라며 “네이버 인공지능 플랫폼 클로바, 네이버 클라우드 플랫폼 등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의 데이터를 합치는 것이 앞으로 갈 방향이 아닌가하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10년 뒤 경쟁력, 한국만의 강점 살리는 방향에서 찾아야
김 전 대표는 네이버와 한국 의료산업의 유사점을 몇 가지 꼽았다. 그는 “적어도 죽을 때까지 한번은 병원에 갈 것 같다. 네이버도 사용할 일이 꼭 있다”라며 “또한 돈을 쓰는 사람과 내는 사람이 다른 비즈니스다. 돈은 보험회사가 내듯이, 네이버도 검색하는데 돈을 내지 않는다. 제3자 지불 모델같은 것이다”라고 했다.
김 전 대표는 “네이버와 한국 의료산업은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에서 잘나간다. 향후 몇 년간은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10년 뒤에도 잘나갈지에 대한 자신이 없다”라고 했다.
김 전 대표는 “2016년 알파고 첫 공개 당시는 물론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을 보면서 충격을 받고 좌절을 했다. 기술 발전이 너무 빠르고, 네이버는 여기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라며 “그 이후에 네이버는 현재 전체 매출액의 24%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기술 기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점점 글로벌 기업과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 보인다”고 했다. 글로벌 기업의 시가총액을 보면 2016년 기준 중국계 기업이 절반, 미국 기업이 절반을 차지하고 네이버는 순위권에서 사라질 정도였다. 네이버는 국내 인터넷검색 시장의 점유율을 75% 차지하고 있지만, 전 세계에서는 0.17%에 불과했다.
김 전 대표는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없어지고 있다. 우리끼리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의 꿈'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현실이 그렇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선 기술 역량을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앞으로 기술 싸움이 관건”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지역색을 살리거나 해외로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산업의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강점을 살려볼 것을 제안했다. 미국 CNN은 2014년 한국의 강점으로 신용카드, 기술 문화, 성형수술, 회식, 소개팅, 야근, 승무원, 여자 골프, 스타크래프트 등을 꼽았다.
김 전 대표는 “한국이 잘하는 것에서 잘하는 것이 나올 수밖에 없다”라며 “요즘 화장품 회사가 대단하다. 온라인 게임도 많이 하는 나라인 만큼 게임에서 대박이 나오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한국은 역시 하던 것을 해야 잘하는 것이 나온다”라고 밝혔다.
이어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잘될 수밖에 없는 요인은 산업적으로 인프라가 있어서다. 청소년에서 가장 되고 싶은 꿈은 아이돌이라고 말한다. 세계에서 한국처럼 특정 도시에 인구가 많이 밀집해있는 나라가 없다. 한국(서울)의 인구밀도는 미국의 17배에 달했다”라고 했다.
이를 토대로 보면 스크린 골프는 미국에 없다. 미국은 집 근처가 골프장이다 보니 스크린 골프 시장이 잘 될리 없었던 것이다. 김 전 대표는 “우리나라는 신용카드를 모두 하나씩 갖고 있어서 알리페이(중국 온라인 결제 시스템)가 잘 될 수가 없었다”라며 "원격의료(의사와 환자간 스마트폰을 활용한 진료)가 안 되는 것은 법으로 금지해서가 아니다. 이미 집 앞에 병원이 널려있고, 병원을 싸게 이용할 수 있어서 굳이 원격의료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김 전 대표는 “우리나라는 과거에 기술이 많이 앞섰다가 상당히 늦춰졌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업계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 중국 등이 상당히 위협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산업에 대해 상세히 알지 못하지만, 여기에도 분명한 시사점이 있다고 했다. 김 전 대표는 “문화적인 조건이나 주체적 조건과 특성 등의 다양한 기회를 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강점을 토대로 기회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네이버 검색 트렌드 '데이터랩' 적극 활용해볼 것
그는 의료계 관계자들에게 네이버의 검색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랩(https://datalab.naver.com/)’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볼 것을 제안했다. 네이버는 질병의 예방부터 진단 치료 경과 사후 식이요법까지 의료의 모든 과정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있다.
김 전 대표는 “네이버의 3000만명 이상의 사용자가 매일 500만번 이상의 의료정보를 검색한다”라며 “검색 키워드의 흐름을 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용자들의 관심을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거나 불편해하는 것이 담겨져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작년대비 키워드 검색이 많이 늘어난 것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라며 “대부분 연예인이 해당 질병에 걸렸을 때 많이 검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1~5월 네이버 10대 검색어는 대상포진, 갑상선 기능 저하증, 장염, 치질, 우울증, 편도결석, 족저근막염, 갑상선기능항진증, 공황장애, 구내염 등이다. 또한 전년대비 급상승한 검색어 순위를 보면 메니메르병, 갑상선기능저하증, 크론병, 우울증, 질염, 모공각화증, 심근경색, 파킨슨병, 다낭성난소증후군, 역류성식도염 등이다.
가령 25~29세 여성의 모바일 검색 키워드를 추이를 확인해 보면, 특정 연예인이 우울증으로 자살했을 때 우울증에 대한 검색이 많았다. 25~29세 기준의 남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여성이 남성보다 사건 이후에도 해당 질환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는 경향이 있었다. 김 전 대표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자기 몸과 관련된 것이 검색해보고 병에 대한 관심이 유지되는 것을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데이터랩은 검색어 트렌드를 제공하고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것이 모토다”라며 “지역별, 기간별, 성별, 나이별 등의 검색 트렌드를 공개하고 있다. 만일 혈압계 등을 개발하더라도 검색어를 적절히 활용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검색 결과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의료정책의 수립이나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잘못된 의학정보가 인터넷에 넘쳐나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우려했다. 김 전 대표는 “네이버는 검증된 의료인의 조언을 통해 지식인에서 답변을 해왔다. 완전한 내용은 답변을 하기 어렵지만 급한 상황에서 참고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네이버는 신뢰할 수 있는 기관, 단체와의 제휴를 통해 다양한 의학정보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라며 “여러 기관들도 의료정보 활성화를 위해 네이버와 협업하거나 네이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볼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