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연초에 발표될 것으로 알려진 의대정원 증원 규모가 350명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왔다. 우선 의약분업 당시 줄어든 의대정원 350명 정도를 늘리고 이후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율하자는 안이다.
익명을 요구한 의학계 고위 관계자는 9일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대한병원협회 등 의료계와 의학계를 대표하는 단체들 모두 공통적으로 의대정원 350명 증원안을 정부 측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정부 측은 350명 증원안에 아직 최종적으로 합의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감안해 의대정원 350명을 증원한 다음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안에 어느 정도 공감대는 형성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정부와 의료계 윈윈 가능...의사인력 추계 연구기관 필요
350명 증원은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을 조율하기 위한 중재안이다. 단 1명도 늘릴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의 대한의사협회와 1000~3000명까지 늘릴 수 있다는 정부 입장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이 모색된 것이다.
특히 의료계와 정부 모두 의대정원이 단기간에 과도하게 늘어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공감대를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의대 쏠림 현상 가속화로 이공계 인재 공백 상태가 현실화되고 의대 교육의 질이 저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의학계 전문가들은 추후 과학적인 의사 수 추계를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 구조가 필요하다는 건의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네덜란드는 니블연구소(Nivel)라는 독립적인 연구기관을 통해 매년 의료계 경향과 의사 인력 동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다른 의학계 관계자는 "2025학년도에 350명 정원을 늘리고 그 이후엔 의사 인력 상황을 추계할 수 있는 독자적인 연구기관을 설립해야 한다.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추후 의사 수를 늘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의사 수를 얼마나 늘려야 하는지, 의사 수를 늘리면 얼마나 지역과 필수의료에 종사할지 예측할 수 없다. 과학적 추계 방법도 없다"라며 "시범사업식으로 의대정원 350명을 우선 늘리면 이 데이터로 과학적 근거를 만드는 것부터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병원계 관계자도 "우선 350명을 늘리고 늘어난 인력이 얼마나 필수의료 인력으로 이동할지 확인해야 한다. 질병 양상, 사회구조적 변화 등을 감안해 논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증원 규모를 조정하자는 안에 정부와 공감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의협회장 선거 앞두고 선방한 협상 vs 단 한 명도 허용 불가
의학계 전문가들은 350명 증원 후 단계적 정원 확대안이 확정되면 의료계와 정부 양측에 '윈윈'이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총선을 앞두고 의대정원의 대규모 증원을 강조했던 정부 입장에서 300명선 확대가 적어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의료계 반발이나 의학교육 부실화 등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2020년에 의료계와 합의하지 못했던 의대정원 확대 출발선을 끊었다는 상징성과 함께 추후 단계적으로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여지도 남길 수 있어 총선 표심 공략도 여전히 가능하다.
의료현안협의체에 참여 중인 의협 입장도 350명 증원이 확정되면 최선의 합의로 해석될 수 있다. 당초 정부가 의대정원을 1000명 이상 대규모로 확대하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 3월 의협회장 선거에 출마할 예정인 예비 후보들이 "필수의료 수가 정상화와 의료사고 형사처벌 특례법 등의 지원정책을 내놓기 전엔 단 한 명의 의대정원도 늘릴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가 의대정원을 최대 3000명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하다가 300명선에서 합의되면 현 의협 집행부가 선방했다고 비쳐질 수 있다. 반면 9.4의정합의는 물론 대의원회 결의에 따라 증원 인원을 0명으로 못박았던 만큼 책임론 역시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