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지난해 뜨거운 감자가 된 '응급실 뺑뺑이' 사건의 후속대책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중증응급환자를 거부한 응급의료기관에게 어떤 이유가 있어도 환자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그 해법을 찾았다.
이제 병원들은 병상과 장비가 부족하고, 환자를 치료할 의사가 없어도 일단 환자를 받아야 한다. 앞으로 그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정부의 대책으로 안전해질 수 있을까?
병원 밖에서 사망해 문제된 '응급실 뺑뺑이' 후속대책은…'무조건 병원으로 이송'?
30일 의료계에 따르면 복지부가 응급환자가 일부 의료기관들로부터 수용 거부를 당한 사건인 일명 '응급실 뺑뺑이'의 후속대책으로 소방과 함께 '응급실 수용곤란고지 관리 표준지침안'을 최종 검토 중이다.
해당 표준지침안은 시설과 인력, 장비 등 응급의료자원 부족으로 응급환자 수용이 곤란한 경우라 하더라도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선정한 응급의료기관은 중증응급환자를 무조건 수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가 '왜 응급실이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보다는 응급환자를 수용할 능력이 없어도 무조건 환자를 책임지도록 해 환자의 치료 책임을 병원에 떠넘기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대구에서 발생한 '응급실 뺑뺑이' 사건 당시에도 정부는 응급환자의 수용을 직접적으로 거부한 '나쁜' 응급의료기관의 책임만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를 살리고 싶지 않았던 병원은 없었다. 병원들은 당시 해당 환자의 위중도를 정확히 알지 못했고, 경증과 중증 환자들로 꽉 찬 응급실에 새로운 환자를 받을 역량이 없어 환자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응급실이 환자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응급실의 수용 가능 여부를 무시한 채 환자를 이송하는 이송체계와 경증과 중증 구분 없이 응급실을 이용하는 환자문화 등으로 인한 '응급실 과밀화'가 있지만 정부는 해당 문제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 진짜 이유는 '응급실 과밀화'…병원 전 단계에서 환자 흐름 조절 안 돼
응급의료기관들이 응급환자를 받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의료계에 따르면 일부 지역에서는 현장에 도착한 119구급대가 환자의 중증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무조건 환자가 원하는 병원으로 이송하거나 해당 병원의 자원 현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환자를 이송하면서 119와 응급실 간의 갈등이 벌어지는 사례도 있다.
응급의료 전문가들은 그간 '응급실 뺑뺑이' 사건의 근본 원인이 한정된 응급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응급의료시스템에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응급의료는 '적절한 환자를,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주 핵심이지만 우리나라에 이러한 체계가 돌아가도록 하는 시스템은 전무하다.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유인술 교수(전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는 "응급실을 이용하는 전체 내원환자의 2~30%만이 응급환자로 추정되고 있다. 나머지 7~80%의 이용자는 비응급환자로 야간이나 휴일에 이용할만한 의료기관이 없거나 빨리 치료받고 싶거나, 입원대기를 위해 응급실을 이용한다. 이러한 비응급환자의 응급실 이용은 응급환자에게 투입돼야 할 의료자원의 분산을 유발해 응급환자 치료에 악영향을 미치고, 응급실 과밀화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2021 중증응급질환 응급실 내원 현황 보고서'에서도 2021년 전국 센터급 이상 응급의료기관 165개소에 내원한 환자 중 급성심근경색, 허혈성뇌졸중, 출혈성뇌졸중, 중증외상 등 4대 중증응급환자의 비율은 7.2%로 나타났다.
이렇게 응급의료의 최종 치료기관인 권역응급의료센터조차 경증과 중증환자가 뒤섞여 대기환자로 꽉 찬 '응급실 과밀화' 현상은 당장 치료가 필요한 중증응급환자의 적절한 치료를 방해하는 주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유 교수는 "응급의료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병원 전 단계인 환자 흐름을 조절하는 이송이 중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119구급대인데 소방은 대부분은 중증도 분류나 현장 응급조치도 없이 일단 환자를 병원을 이송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며 "이번 수용지침안도 병원밖에서 환자의 사망으로 인한 비난을 피하고자 일단 환자를 병원안으로 떠넘기겠다는 대책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현장의 119구급대는 정말 고생을 많이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문제는 소방의 시스템이다. 실적 중심이고, 민원을 두려워하는 상부로 인해 119구급대원들은 환자들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경증 환자도 태워서 환자가 요청하는대로 대형병원으로 이들을 이송한다"고 지적했다.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조석주 교수도 "우리나라는 환자들이 119구급차 이용 부담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경증환자들도 119구급차를 이용해 응급실을 이용하고 있다. 이 경증 환자 중에는 외래의 긴 줄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응급실을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대형병원 입원병상이 부족할 때 응급실 병상을 대체제로 이용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근본부터 해결하려면 경증환자를 애초에 대형병원 응급실이 아닌 중소병원으로 유도하는 것이 적절한 대책이다. 경증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에 가지 못하도록 처음부터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의료계는 환자가 발생하고 119로 신고가 된 후 병원으로 이송하는 '병원 전 단계'에 해당하는 응급의료 이송시스템을 고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병원 전 단계에서 환자의 흐름을 적절하게 조절해 중증응급환자를 위한 시설과 인력을 365일 확보할 수 있다면, 언제 어디서 중증응급환자가 발생해도 병원들은 이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종치료 능력없는 병원에 환자 밀어넣기…의료진은 환자 사망 시 민형사처벌 부담까지
하지만 정부는 이 환자 흐름을 조절하는 이송체계 개편 대신, 가장 쉬운 방법으로 응급환자를 일단 의료기관에 강제 이송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현재 정부의 최종 지침안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1월 복지부는 '응급환자 수용곤란 고지 관리체계 마련'의 내용을 포함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 한 바 있다.
해당 내용에 따르면 119구급대는 중증응급환자 발생 시 전화, 무선통신을 이용해 응급의료기관의 수용능력 확인을 요청하게 되는데, 이때 의료기관은 ▲시설, 인력, 장비 등 응급의료자원의 가용 현황에 비춰 응급의료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 ▲그 밖의 통신‧전력마비, 화재‧붕괴 등 재난 등의 상황 시 응급환자 수용곤란 의사를 통보해야 한다.
문제는 지역의 모든 의료기관이 응급환자 수용곤란 의사를 통보했을 때다. 이때 119구급상황관리센터는 임의로 이송병원을 선정해 해당 중증응급환자를 이송할 수 있으며, 배정받은 의료기관은 천재지변이 없는 이상 아무리 시설, 인력, 장비 등 응급의료자원이 부족할지라도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이렇게 해줄 것이 없는 상황에서 환자를 받은 병원은 어떻게든 환자를 살려야 한다.
실제로 해당 지침에는 무리하게 환자를 받은 의료기관에 대한 책임소재 면책에 대한 내용은 물론 최종 치료가 불가능해 재이송한 데 대한 책임마저 병원에게 묻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정부는 응급실이 수용곤란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하며 아무런 대책도 없다. 대신 의료기관에 강제로 환자를 수용하도록 하고 있다"며 "응급실이 환자를 수용할 수 있도록 상급병원의 과밀화를 해결하고 최종치료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종치료를 제공할 수 없는 병원에 일단 환자를 수용케 하면, 그 환자는 병원 밖보다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라고 꼬집으며 "단순히 환자가 병원 밖에서 사망해 논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단 환자를 병원에 밀어 넣는 법이다. 이는 무너져가는 응급의료를 더욱 망가뜨리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최근 의료소송 등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들로서는 해당 지침안이 시행될 경우 환자의 악 결과에 대한 수억원 대 소송은 물론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병원은 환자를 살리는 곳이다. 어떤 의사도 죽어가는 환자를 모르는 척 하지 않는다. 하지만 환자를 살릴 수 있는 환경은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라며 "최종치료가 불가해도 환자를 이송하겠다면 억지로 환자를 맡게 된 병원 의료진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전면 감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