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집행부가 보건복지부와 진행한 의정간담회를 두고 의료계 내부에서 투쟁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의협 집행부가 의약분업 이후 최대의 투쟁을 한다면서 의료개혁쟁취투쟁위원회를 만들더니, 다시 전략 없이 협상을 하는 모습으로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은 지난 11일 최대집 회장과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만나 의정협의 재개와 국민건강 및 환자안전, 의료전달체계 개선 등 현안 해결을 위한 의정 간담회를 개최했다. 양측은 추석연휴 이후에 보다 구체적인 의료 현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의협 집행부는 4월 4일 의쟁투 발족을 통해 진찰료 30% 인상과 처방료 부활등의 주장을 관철시키고 의약분업 이후 가장 강력한 투쟁에 나선다고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회의로 실제적인 투쟁 계획이 나오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러자 의협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는 6월 15일 회의를 통해 의협 집행부에 의쟁투 해체와 범의료계 차원의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권고를 만창일치로 의결했다. 하지만 의쟁투 위원장을 자처한 최대집 회장은 같은달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앞으로 의쟁투 조직을 더욱 확대·재정비해 부족한 부분을 강화해 나가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대정부 투쟁에 더 박차를 가하겠다"라며 운영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쟁투는 7월 2일 청와대 앞에서 의쟁투 대정부 투쟁 선포 및 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그리고 나서 최대집 회장 등 집행부의 2주간 단식투쟁으로 투쟁 열기를 고취시켰다. 그리고 나서 총파업 등을 결의하겠다며 8월 18일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열었다.
최대집 회장은 "특히 8월과 9월이 의료개혁 총력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다. 늦어도 8~9월에 총파업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자 9~10월로 연기됐다.
하지만 전국의사 대표자대회에서도 이렇다할 총파업 이야기가 없자 의협은 슬그머니 연말부터 내년4월까지 단체행동을 위한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며 다시 말을 바꿨다.
의협은 "지난 8월 26일 열린 의쟁투 연석회의에서 올 연말과 내년 4월에 두 단계로 나눠 투쟁을 추진 하는 것을 바탕으로 투쟁 로드맵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고 밝혔다.
의협은 투쟁 열기를 이어가겠다며 8월 30일 문재인케어의 전면적 정책 변경을 촉구하기 위해 청와대 앞 철야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오는 18일 복지부 앞에서 진행할 예정이던 철야시위는 의정간담회 이후 불투명한 상태다.
이에 대해 A산하단체 임원은 “최대집 회장 집행부는 투쟁을 하겠다는 이유로 뽑아줬는데 투쟁에 대한 준비는 말만 앞서고 있다”라며 "임기 시작 이후에 투쟁을 말하다가 다시 협상의 길로 돌아서고, 진찰료 30%인상이나 문재인 케어 전면적 철회 등에 대해 언제까지 답변을 주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식의 표현을 했다. 실상은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다”고 말했다.
B산하단체 임원은 “협상을 하려면 원하는 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정해서 이를 투쟁으로 쟁취할 수 있도록 하는 분명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라며 “현재로는 투쟁도, 협상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지역의사회 임원은 “의쟁투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협상을 하고 왔다고 한다. 의쟁투 위원들이 그대로 협상팀으로 참여하면 투쟁 대신 협상으로 방향이 쏠렸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라며 "투쟁은 위협적이어야 하고 협상은 의료계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담아야 한다. 하지만 투쟁을 한다고 했다가 협상을 한다고 했다가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 모습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의협은 투쟁을 분명히 준비할 것이며 추석연휴 이후에 구체적인 현안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의협 박종혁 대변인은 "의정간담회를 진행한다고 해서 총파업 등 투쟁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시도의사회장단과 대의원회가 의정 대화를 통해 복지부와 대화 채널을 확보하고 협상을 병행하라는 요구가 있었고, 의협 집행부가 이를 신중하게 판단해 의정 대화를 재개하게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