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타격을 입은 공공병원들의 정상화가 여전히 요원해 정부의 지속적 지원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왔다. 필수의료 위기와 관련해선, 정부가 필수의료 국가책임제의 핵심 요소로 강조하고 있는 ‘공공정책수가’ 외에도 다양한 정책들이 병행돼야 한단 의견이 제기됐다.
국립중앙의료원 이흥훈 전략기획센터장은 26일 국회박물관 2층에서 열린 ‘공공보건의료 회복과 필수의료 국가책임 강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던 공공병원들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제안했다.
환자 줄고 재정 악화 '공공병원'...손실보상금 지급 기간 연장 등 대책 시급
이 센터장에 따르면 지난 3월31일 기준, 지역거점공공병원들의 감염병 전담병원 평균 지정기간은 629일이다. 1년 9개월여에 달하는 기간동안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운영돼왔던 공공병원들은 의사 인력, 진료건수, 수술건수, 필수진료과 개설율 등 모든 측면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자연스레 재정 상황도 크게 악화됐다. 특히 국립대병원들의 평균 의료수익은 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과 2020년이 비슷한 수준인 반면, 같은 기간 국립중앙의료원과 지방의료원, 적십자병원의 평균 의료수익은 약 28%나 감소했다.
하지만 이들 공공병원은 진료하는 코로나 환자 수 증가에 상응하는 손실보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국립대병원 대비 국립중앙의료원과 지방의료원의 코로나 환자 수 대비 손실보상금은 2020년 대비 올해 증가율이 환자수 증가에 상응하지 못했는데 이는 올해부터 병상 종류별 보상 배수가 상급종합병원에 유리하게 개정됐기 때문이란 게 이 센터장의 지적이다.
이 센터장은 “올해 1인당 손실보상금을 비교하면 국립대병원은 지난해와 유사하게 지급받은 반면, 국립중앙의료원은 150만원, 지방의료원은 70만원 하락했다”고 했다.
이 센터장은 이날 지방의료원과, 국립중앙의료원이 2019년 수준의 진료실적을 회복하기 위한 소요시간을 추계한 결과를 공개했다. 해당 결과에 따르면 지방의료원의 경우 4.3년(52개월)이 걸리며 국립중앙의료원의 경우, 2031년은 돼야 의료이익으로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이 센터장은 “2022년 하반기와 2025년까지 손실보상금 지급 기간 연장이 필요하다”며 “병상이용률 등 진료기능 회복 정도를 감안해 병원별로 기준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손실보상금을 지원해야 한다. 병원별로 지난해 지급받은 손실보상금을 기준으로 매년 일정 비율을 감소시켜 가며 받는 방안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이 센터장은 ▲국가 재정운용계획에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 반영 ▲공공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조속 구성 및 운영 ▲지방의료원 신∙증축 국고지원 상한 확대 ▲국립중앙의료원-지역책임의료기관 간 순환근무체계 도입 ▲지방의료원 통합수련제도 추진 ▲초과 사망 대응 위한 지역책임의료기관 역량 강화 ▲지방소멸대응기금 등 새로운 재원 활용 ▲공공의료의 사회적 가치 검증 연구 진행 등을 필요한 정책으로 꼽았다.
공공정책수가는 민간 부문 중심 필수의료 확충...지역 간 필수의료 격차 심화 우려
두 번째 연자로 나선 경상의대 예방의학교실 정백근 교수는 ‘필수의료 국가책임을 위한 공공정책수가제의 바람직한 도입 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정 교수는 우선 윤석열 정부가 필수의료 국가책임제의 핵심 요소로 강조하고 있는 공공정책수가에 대해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음압병실, 중환자실, 응급실 설치 및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 교육훈련비를 공공정책 수가로 지급하고 중증외상센터, 분만실, 신생아실, 노인성 질환 치료시설에도 순차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 교수는 “공공의료의 양적 확충 대신 민간 부문 중심의 필수의료를 확충하겠다는 것”이라며 “필수의료 공급 역량을 가진 민간병원은 제한적일뿐 아니라 수익성 때문에 필수의료 공급 중지하는 상황에 대한 통제가 어렵기 때문에 민간주도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심화시킬 수 있다. 공공정책 수가를 적용할 민간 병원 선정 기준도 현재로선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 공공의료 양적 확충 목표가 축소되고 있다”며 “지난해 발표된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게획에서 신축, 이전신축, 증축 대상 지역거점 공공병원 20개가 목표였지만 올해 복지부 새 정부 업무계획에선 지방의료원 신축 5개, 증축 7개로 설정됐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공공정책수가가 현존하는 지역 간 필수의료 격차와 필수의료∙공공보건의료의 민영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공공정책수가로 민간병원이 몰려있는 수도권과 대도시에 지원이 집중될 것”이라며 “민간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공공정책 수가는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지역 간 필수의료 불평등을 심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 정부 역할을 줄이거나 민간의 역할을 증가시키는 조치를 민영화라고 본다면 필수의료∙공공보건의료 민영화가 심화되는 것”이라며 “이는 현 정부의 전반적인 민영화 기조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했다.
이에 정 교수는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공공정책 수가 외에도 공공병원 확충 등 다양한 방안들이 함께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정책수가는 민간병원 선정 기준을 명확히 해야하며, 공공병원 확충도 함께 갈 필요가 있다”며 “이 외에도 취약지 필수의료인력배치, 의료취약지 가산 수가의 획기적 인상 등 지역 필수의료 격차 완화 정책과 병행하거나 직접적으로 격차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재정 지원 수단도 공공정책수가로 한정하지 말고, 일반예산, 기금 활용 정책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며 “또, 권역 및 중진료권의 책임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하는 공공보건의료 협력체계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공공정책수가 제도를 기획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방의료원, 인력난∙임금 체불 걱정...인력 유인∙경영 효율화 인식 전환 필요 지적도
이어진 토론에서도 공공병원과 필수의료가 처한 위기 상황과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제언들이 나왔다. 먼저 지방의료원 원장들은 의사인력 부족과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정부의 지원을 촉구했다.
충주의료원 윤창규 원장은 “팬데믹 이후 환자가 크게 줄었는데, 환자가 내원하더라도 필수과 의사가 없어 걱정이 많다. 내가 받는 월급에 두 배 이상을 준다고 해도 오질 않는다”며 “돈 뿐만 아니라 자녀 교육과 삶의 질 등 여러 측면에서 지방으로 오는걸 꺼린다. 누구나 편하고 쉽고 돈을 잘버는 일을 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인데 이를 어떻게 막겠느냐. 단기간에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문제는 지금 충북 북부에 의료가 잘 안 된다고 ‘충북대병원 분원을 세운다’, ‘서울의 대학병원을 유치한다’라는 얘기들이 나오는데 어리석다고 느낀다”며 “지금있는 의료원에 대학병원 유치에 들어가는 에산의 4분의 1만 줘도 충분히 병원을 잘 운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속초의료원 용왕식 원장은 “작년엔 손실보상금을 통해 나름대로 흑자가 나오고 있었는데, 3~4개월 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며 “앞으로 4년은 어떻게 재정을 확보해서 직원들의 임금을 줘야 할지 걱정이다. 이렇게 공공업무를 수행하다 된 부분들에 대해선 조세를 투입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원주의료원 권태형 원장은 “공공정책수가로 민간병원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부가 공공병원 등과 같은 직접적 정책 수단을 확보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필수의료만큼은 일차적으로 공공병원이 역량을 강화해야 하며, 장기적으론 공공병원들이 민간병원을 이끄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한국보건의료포럼 장성인 부대표(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는 공공병원의 인력 부족 문제, 경영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기관뿐 아니라 인력 당사자의 입장에서 그들이 유입될 만한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며 “국공립기관에서 일한다고 해도 사람은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게 당연하다. 그 자리를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것이 더 필요할지 당사자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립중앙의료원의 수익 대비 인건비가 99.6%에 달했다는 걸 보고 놀랐다”며 “ 이렇게 높은 인건비 지출에도 인력이 유인되지 못했다면 왜 그런 것인지, 보상이 문제가 아니라면 금전적 부분 외에 조직∙문화적, 사회 인식적 문제 등을 전문적 경영 평가를 통해 진단하고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부대표는 또 “위탁운영이나 공공-민간 협력 또는 전문적인 경영인에 의한 경영이라고 해서 민영화로 판단해 무조건 배제할 일은 아니다. 중요한 건 이런 특성의 자원을 지속가능하게 유지해 필요시에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한 쪽으로 극단적 전환보다 필요 요소의 차용을 검토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공공정책수가는 우리나라 의료자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민간병원을 좀 더 공적인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요소”라고 했다.
복지부, 필수의료 최우선은 중증∙응급...'사후보상' 등 새 지불제도 도입도 고민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지원과 관련 중증∙응급 분야, 분만∙소아 분야 등이 우선 순위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공공병원과 관련해선 양적 확충보단 기능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 질병정책과 김한숙 과장은 “어디까지 필수의료로 봐야하는가하는 문제가 있는데 내부적으론 결국 시급성을 다투는 분야를 우선순위에 올릴 수밖에 없다”며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둬야 하기 때문에 중증응급 분야가 최우선이고, 두 번째로 인구 구조 변화 때문에 민간 투자가 어려운 분만, 고위험 산모, 소아 영역을 지원하려 한다”고 했다.
공공병원에 대한 정부차원의 재정 지원 요구에 대해선 “그 동안에도 정부차원의 재정지원이 없었던 게 아니다. 하지만 재정지원을 하면서 인프라를 신경써도 결국 인력이 확보가 안 돼 내부는 텅 비어있단 얘기가 있다”며 “돈만 쏟아붓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 시점에서 필수의료 대책은 공공병원의 양적 확충보다는 현재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취약한 분야를 해결할 수 있게 기능적 부분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김 과장은 끝으로 새로운 지불제도 도입 가능성과 인력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필수의료 지원은) 단순한 행위별 수가 인상으로 그치진 않을 것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며 “최근 공공어린이병원에서 사후보상 방식의 지불제도 시범사업을 하면서 수익성이 낮더라도 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필수의료 역시 이런 지불제도 등을 모두 포함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인력 문제는 고민이 많다. 시급한 개선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며 “특히 코로나를 겪으면서 공공병원에서 인력 유출이 많았다. 이런 부분도 현재 논의 중인 필수의료 대책에 담으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