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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정안만 던져놓고 논의는 '유야무야'…"낙태법, 입법 공백 상태 답답하다"

    산부인과학회 학술대회 토론...법 부재 속 불법 낙태약물 팔리고 낙태광고 걸어둔 전문병원까지 등장

    기사입력시간 2021-10-02 20:34
    최종업데이트 2021-10-02 20:34

    1일 대한산부인과학회 제107차 학술대회에서 낙태법 폐지 이후 입법 공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헌법재판소의 낙태법 폐지 판결이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됐지만, 국회가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헌재의 낙태죄 관련 개선 입법 시한이 2020년 12월 31일부로 끝났지만 개선 입법이 되지 않아 현재 법률 공백 상태에 있어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안전한 의료시스템 안에서 낙태를 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갖추고 의사의 낙태 진료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이 진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의된 개정안만 7개, 입법 논의는 한발짝도 떼지 못해…의료현장 혼란 가중

    이화여대법학전문대학원 정현미 원장은 1일 오후 대한산부인과학회 제107차 학술대회 낙태법 정책세션에서 "현재 낙태죄와 관련한 입법 공백 상태가 됐다는 점은 법치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그러나 국회는 이에 대해 별 관심이 없고 학계도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정 원장은 "아무래도 학계에 남성이 많고 여성계도 최근에서야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회에서도 지난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 때도 큰 관심을 끌지 못했고 야당은 자리를 다 떠나버리는 사태도 연출됐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어떻게 이렇게 내버려 둘 수 있는지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헌재의 낙태법 헌법불합치 판결에 따라 현재 국회엔 형법 일부개정안과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 7개가 발의된 상태다. 

    대표적으로 정부안의 경우, 형법 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의사에 의해 의학적인 방법으로 1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고 15~24주 이내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 허용하자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과 정의당 이은주 의원의 안은 낙태죄 자체를 폐지하고 기존 모자보건법에 '태아가 모체 밖에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라는 허용 범위 조항을 삭제해 사실상 임신 전 기간의 낙태를 허용토록 한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문제는 법안이 발의만 됐을 뿐 이후 어떤 논의 과정 조차 거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현미 원장은 "낙태죄 관련 법적 근거가 부재하게 되면 여성 안전도 불안하게 되지만 의료 현장에서도 큰 어려움을 초래한다"며 "입법 공백이 커지면서 일부 여성계에선 낙태가 전면 자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헌재 취지를 보면 이는 의도적인 오도다. 법적인 허용범위 내에서 낙태가 이뤄지는 것이 현재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최안나 낙태법특별위원회 간사도 "입법 공백으로 현장의 혼란이 초래되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에선 불법 낙태 유도제가 버젓이 팔리고 있고 임신중절수술을 대놓고 광고하는 전문병원들도 생겨나고 있다"며 "하루빨리 낙태죄 관련 입법 논의과 사회적 합의가 진행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의사의 낙태 진료 선택권 법적 보장돼야…낙태는 10주 미만으로 한정

    낙태법 개정 방향에 대해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면서도 낙태를 실질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가장 큰 공감대를 이뤘다. 구체적으론 여성 친화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전이 마련되거나 의사 입장에서도 낙태에 대한 진료 선택권이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최안나 낙태법특별위원회 간사

    최안나 간사는 "산부인과 의사의 소임은 여성의 건강과 태아의 생명 보호다. 이 때문에 낙태 관련 의료행위 여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낙태 진료 선택권에 대한 법적 보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낙태 허용 주수에 대해 그는 "임신 10주까지 태아 장기와 뼈가 형성되고 태아가 성장할수록 낙태 합병증 위험이 증가함으로 사유의 제한 없는 낙태는 임신 10주 미만으로 한정해야 한다"며 "10주부턴 태아 DNA 선별 검사 등 각종 태아 검사가 가능해져 우생학적 이유로 아이가 낙태될 위험이 있고 이미 국내 낙태의 90% 이상이 10주 이내 시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간사는 "약물 낙태에 대해선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 도입 여부는 국내 임상 시험 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도입 후에도 의약분업 예외 약품으로 지정해 산부인과 병의원에서 직접 투약할 수 있도록 조치해 무분별한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며 "무자격자에 의한 낙태 처벌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환자중심 1차의료 산과 치료 필요…경제적 어려움 처한 여성도 도와야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위한 배려와 함게 전반적인 의료서비스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민건강연구소 젠더와건강연구센터 김새롬 센터장은 "현재 여성의 입장에서 임신중절이나 피임에 대한 급여화 요구가 있는 상태로 전반적인 의료서비스 질적, 양적 개선 요구가 많은 상황"이라며 "좀더 환자중심적이고 1차의료 예방 중심의 산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사례를 보면 꼭 의사와 환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산사, 간호사 등 다른 이들도 임신중절 문제와 연관된다. 연속성 있는 진료를 통해 환자와의 라포를 쌓고 한의학과 다양한 건강기능식품 등 안에서 근거 없는 상품소비가 이뤄지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과 이주여성 등 임신중절에 드는 100만원을 당장 내기 어려운 이들도 존재한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전문가 단체, 시민사회가 함께 모여 입법 개선에 기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장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정확한 의사결정이 가능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 손문금 출산정책과장은 "현재 복지부는 헌재 결정 취지를 존중하면서 정부안을 내놓은 상태로 현장 변화를 파악하고 의료 환경의 어려움을 모니터링, 의료인들의 임신중절 인식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도 보건사회연구원과 협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손 과장은 "정확한 정보 제공을 위해 산부인과학회와 임상가이드라인도 마련하고 임신중절 교육상담 수가도 신설했다"며 "산부인과 의사들과 성교육 강사가 함께하는 온라인 상담 등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