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생명을 위협하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에 대한 생물학적 치료제 '두필루맙'이 허가되면서 새로운 치료의 길이 열렸지만, 정작 고위험군 환자 상당수가 치료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가의 약값과 급여 미적용 등이 치료 접근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월 30일 개최된 '어르신 숨 쉴 권리 보장을 위한 COPD 정책 토론회'에서는 COPD의 심각성과 치료 환경 개선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COPD는 기도나 폐포의 이상으로 인해 공기의 흐름(기류)이 제한되며, 이로 인해 만성적인 호흡기 증상(숨참, 기침, 가래)을 보이는 비가역적 폐 질환이다. 흡연이나 대기오염 등을 원인으로 하며, 기도에 만성 염증이 생기고 폐 조직이 파괴돼, 점차 호흡이 어려워진다.
COPD는 전 세계적으로 약 4억명이 앓는 흔한 질환으로, 향후 30년간 약 23%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고령일수록 유병률이 높아진다. 실제로 국내 COPD 환자 10명 중 9명이 60세 이상이다.
2024년 기준 국내 40세 이상 성인의 유병률은 12.7%며, 65세 이상은 25.6%에 달한다. 하지만 인지율은 2.3%, 치료율은 1.2%에 그친다. 조기 진단 없이 악화된 후 병원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사망률도 높다.
이러한 COPD는 삶의 질을 저하하고, 사회경제적 부담을 높인다. 한국에서 COPD로 인한 연간 직·간접비용은 1조4000억원에 달한다. 1인당 경제부담 역시 허혈성심질환 대비 3배, 당뇨병과 천식 대비 각각 5.5배, 6배 높다.
대한노인회 송재찬 사무총장은 "많은 고령자가 숨찬 증상을 노화로만 인식해 병을 키우고 있다"며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시점에 치료할 수 있도록 예방 중심의 진단 체계를 국가가 주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림대강동성심병원 박용범 교수는 "건강한 노인은 숨이 차지 않는다"며 "나이 탓으로 여기고 방치하지 말고, 폐기능 검사를 국가건강검진에 포함해 조기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COPD의 조긴진단과 악화를 막는 치료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3월 현행 치료법으로 조절되지 않는 혈중 호산구 수치가 증가된 제2형 염증성 COPD 고위험군 환자를 표적하는 치료제 두필루맙이 허가됐다.
두필루맙은 표준 치료에도 악화 위험이 높은 제2형 염증 동반 COPD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2건의 대규모 3상 임상시험에서 중등도 이상 연간 급성악화 위험을 최대 34%까지 유의하게 감소 시켰으며, 폐 기능 및 삶의 질 등 모든 지표에서 현저한 임상적 개선을 입증했다.
현재 세계만성폐쇄성폐질환기구(GOLD) 및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KATRD) 등 국내외 진료지침은 혈중 호산구 수치가 300 cells/μL 이상의 급성악화 고위험군 환자에게 두필루맙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보험 급여 미적용과 엄격한 기준 등으로 실제 사용하는 환자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박 교수는 "현재 생물학제제의 보험 기준이 해외보다 훨씬 엄격해 실제 임상에서 사용하기 힘들다"며, 환자에게 효과가 입증된 논문을 기반으로 급여 기준을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두필루맙이 약이 급여가 돼도 환자 부담이 월 40~60만원에 달할 수 있다"며 "고령이고 소득이 낮은 COPD 환자들에게는 사실상 그림의 떡"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산정특례가 없다면, 급여가 되더라도 상당수 환자가 경제적 이유로 약을 쓰지 못할 것"이라며 "적어도 호흡기 장애인 등록 환자처럼 명확한 기준을 갖춘 중증 환자에게는 산정특례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림대성심병원 황용일 교수는 "COPD 치료 환경은 지난 20년간 거의 변화가 없었고, 여전히 질환 인식도 낮은 상태"라며 "두필루맙은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약제로, 현재 사용 중인 환자들 사이에서도 급성 악화가 줄어드는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COPD의 질병 부담과 조기진단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건강보험 재정이라는 현실적 제약 속에서 급여 결정에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평원 김국희 약제관리실장은 "효과가 있는 약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적절한 환자에게 신속하게 급여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심평원은 COPD가 간병비나 사회적 부담이 큰 질환임을 인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두필루맙) 약제에 대한 보험 급여 원칙과 방향은 '효과가 있는 약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적절한 환자에게 신속하게 급여'하는 것"이라며 "이런 목표를 가지고 복지부와 공단, 심평원은 급여화를 추진했다. 지난해 8월에는 혁신신약에 대한 경제성 평가를 진행해 비싸더라도 탄력적으로 수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희귀질환과 중증질환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대비 늦은 도입에 "외국과 한국의 보건의료 체계가 다르다. 외국의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국내 여건에 맞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COPD의 치료 필요성과 환자 접근성 문제를 함께 고려해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김연숙 보험약제과장은 "고령화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전체 진료비 중 약제비 비중이 커지고 있어 재정적 고민이 크다"며 "중증·희귀질환은 더 충분히 보상하고, 우선순위가 낮은 약제는 재조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약이 있는데도 치료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국가가 가진 숙제고 과제다. 국회에서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은 희귀질환, 신약에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특히 한정된 재원 속에서의 정책 결정은 항상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약이 있다 하더라도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작으면 정책으로 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인식 전환을 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일반인이 인식하기 쉬운 용어로 정리할 것을 제안했다.